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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SUNDAY 편집국장 레터] 강물은 배를 띄우지만, 뒤집기도

중앙선데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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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83호 면

독자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중앙SUNDAY 편집국장 김종윤입니다. 21대 총선은 더불어민주당(더불어시민당 포함)의 압승으로 막을 내렸습니다. 미래통합당(미래한국당 포함)은 참패했지만 그나마 개헌 저지선을 지켰습니다.

민주당과 통합당이 챙긴 전체 의석은 283석입니다. 이번 총선을 앞두고 개정한 선거법의 핵심은 표의 비례성을 높여 작은 정당들이 의회에 진출할 수 있도록 길을 닦자는 것입니다. 두 거대 정당이 위성정당을 앞세워 얻은 비례대표 득표율은 총 67.2%입니다. 하지만 두 당이 챙긴 의석은 지역구 포함해서 전체(300석)의 94.3%나 됩니다.

더불어민주당 이낙연-이해찬 상임선대위원장과 이인영 공동선대위원장(왼쪽 두번째부터) 등이 16일 오전 국회에서 열린 대한민국미래준비선거대책위원회의에서 총선 지지에 대한 국민께 인사하고 있다. 임현동 기자

더불어민주당 이낙연-이해찬 상임선대위원장과 이인영 공동선대위원장(왼쪽 두번째부터) 등이 16일 오전 국회에서 열린 대한민국미래준비선거대책위원회의에서 총선 지지에 대한 국민께 인사하고 있다. 임현동 기자

소선구제에서는 한 표라도 더 얻은 후보가 승리합니다. 낙선한 후보에게 간 표는 모두 사표가 됩니다. 이번 선거에서 지역구 득표율은 민주당 49.9%, 통합당 41.5%였지만 의석수는 163대 84였습니다. 유권자는 내 표가 사표로 사라지는 게 아니라 정당하게 대접받아 정치 세력화에 쓰이길 바랍니다. 이런 취지가 반영돼 준연동형 비례대표제가 나왔습니다.

비례의석 결과를 보시지요. 47개 비례의석 중 미래한국당이 19석(비례 득표율 33.8%)을, 더불어시민당이 17석(득표율 33.3%)을 가져갔습니다. 정의당(5석, 9.6%), 국민의당(3석, 6.7%), 열린민주당(3석, 5.4%)이 뒤를 이었습니다. 지역구를 사실상 싹쓸이한 거대 양당이 비례용 위성정당을 앞세워 비례의석도 양분했습니다.

만약 두 당이 위성정당을 내세우지 않고 자체적으로 비례대표 후보를 냈다면 의석수는 어떻게 됐을까요. 같은 득표율을 올린다는 가정 아래 여러 매체와 여론조사 기관의 분석을 종합하면 민주당 6~7석, 통합당 14석, 정의당 12~14석, 국민의당 9~11석, 열린민주당 6석 정도 나온다고 합니다.

정당별 비례대표 득표율. 그래픽=김경진 기자 capkim@joongang.co.kr

정당별 비례대표 득표율. 그래픽=김경진 기자 capkim@joongang.co.kr

비례 위성정당을 앞세워 민주당은 10석, 통합당은 5석 정도 작은 정당의 몫을 뺏어간 셈입니다.  사표를 줄이고 비례성을 강화해 유권자의 뜻을 제대로 반영한다는 대의는 연기처럼 사라졌지요. 오히려 거대 양당은 과점을 공고히 해 ‘적대적 공생’이라는 교묘한 생태계를 구축했습니다. 이러고도 정치 개혁을 외치고, 의회 다양성을 주장할 수 있을까요.

선거 전에 여야는 “선거가 끝나면 위성정당과 합당하겠다”고 말했습니다. 벌써 말이 바뀝니다. 독자 교섭단체 카드를 슬그머니 꺼내 저울질합니다. 더불어시민당과 미래한국당에 각각 세 석과 한 석을 보태면 위성 교섭단체(20석)를 구성할 수 있습니다. 국회 원 구성과 공수처장 후보 추천 등에서 요긴히 쓸 수 있기 때문입니다. 꼼수로 일관한 총선을 거쳐 이젠 국정의 중요 사안마저 꼼수로 처리하겠다는 야욕을 드러냅니다.

21대 국회에서는 선거법을 다시 손봐야 합니다. 열쇠는 과반 훌쩍 넘는 의석을 확보한 민주당이 쥐고 있습니다. 압도적 대승을 한 만큼 책임은 더 막중해졌습니다. 바뀐 선거법 무력화하고 재미 봤다고 오만하게 행동한다면 유권자는 어떤 생각을 할까요. 정당 정치의 근간을 무너뜨리는 선거 제도를 그대로 두겠다고 하면 유권자들이 가만히 있을까요. 연동형 비례대표제 취지에 맞는 전면적인 선거법 개정이 필요합니다. 강물은 배를 띄우기도 하지만 뒤집을 수도 있습니다. 이번에 '어떤 배'가 뒤집어지는 거 보지 않았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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