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썰명서] 따뜻했던 겨울이 남도 차밭에 미치는 영향

중앙일보

입력 2020.04.17 08:00

차의 계절이 돌아왔다. 막 돋은 저 작은 잎이 웅숭한 맛을 내는 녹차가 된다. [중앙포토]

차의 계절이 돌아왔다. 막 돋은 저 작은 잎이 웅숭한 맛을 내는 녹차가 된다. [중앙포토]

오는 19일이 봄의 마지막 절기 곡우(穀雨)다. 비가 내려 백곡(百穀)이 기름지게 된다는 날이다. 예부터 곡우가 되면 한 해 농사를 시작했다. 곡우를 기점으로 차(茶) 밭도 부산해진다. 곡우를 즈음으로 차 값이 열 배씩 들썩거려서다. 무슨 사연이 있는 걸까. 차에 관한 궁금증을 모았다.

곡우와 차는 무슨 관계일까?

곡우 이전에 따는 차를 우전(雨前)이라 한다. 우전의 ‘우(雨)’가 곡우의 ‘우(雨)’다. 원래는 곡우 닷새 전에 딴 차를 우전이라 했는데, 요즘엔 곡우 즈음에 딴 차도 우전이라 한다. 우전은 맛과 향이 가장 빼어난 차로 통한다. 상품(上品) 대우를 받아 다른 차와 가격 차이가 크다. 열 배 넘게 차이가 나는 경우도 있다.

우전이 왜 좋은 차일까?

차를 마시는 건, 차나무의 어린 찻잎과 새싹을 우려낸 물을 마시는 것이다. 봄이 되면 차나무에서 잎이 올라온다. 돌돌 말린 잎이 창처럼 돋는데, 그 잎이 이윽고 펴진다. 그걸 딴다. 하도 작아서 일일이 손으로 딴다. 커 봐야 손가락 첫 마디만하다. 하여 차밭의 노동은 고되고 지루하다. 겨우내 응축된 차나무의 기운이 이 어리고 여린 잎을 통해 올라온다고 다인(茶人)은 믿는다.

세작·작설·죽로는 뭐지?

가운데 잎이 창처럼 솟았고 다른 두 잎이 옆을 지킨다. '일창이지'의 모습이다. [중앙포토]

가운데 잎이 창처럼 솟았고 다른 두 잎이 옆을 지킨다. '일창이지'의 모습이다. [중앙포토]

차는 이름이 많다. 차를 세작(細雀) 중작(中雀) 대작(大雀)으로 구분하곤 하는데, 잎의 크기에 따른 분류다. 물론 세작이 잎이 가장 작고, 가장 비싸다. 작설(雀舌)이란 ‘참새 혓바닥’이란 뜻이다. 그 만큼 잎이 작고 가늘다는 의미다. 잎의 모양에서 나온 이름이다. 죽로(竹露)는 ‘대나무 이슬을 먹고 자란 차’를 가리킨다. 상품 중의 상품으로 친다. 경남 하동 쌍계사 주변의 야생 차밭은 대부분 대나무 숲이 에두른다. 새순을 땄다 해서 ‘첫물차’도 있고, ‘일창이지(一槍二枝)’란 표현도 있다. 가운데 오롯이 서 있는 찻잎 양 옆으로 두 이파리가 받쳐주는 모습을 이른다. 모두 상품 차를 형용하는 수사다.

우전 아니면 맛이 없나?

경남 하동에 국내 최대의 야생차밭이 조성돼 있다. 산기슭이 죄 차밭이다. [중앙포토]

경남 하동에 국내 최대의 야생차밭이 조성돼 있다. 산기슭이 죄 차밭이다. [중앙포토]

입하차도 좋은 차다. 입하(5월 5일)까지 딴 차를 이르는데, 우리나라의 다도를 집대성한 초의선사(1786~1866)가 “우리의 차는 곡우 전후는 너무 빠르고 입하 전후가 적당한 때”라고 말한 바 있다. 차 재배가 비롯된 중국 남부 지역보다 우리나라의 기온이 낮으니 곡우보다 보름 정도 뒤에 찻잎이 제대로 올라온다는 뜻이다. 일부 대형 다원이 억지로 우전을 만들려고 차나무에 농약이나 비료를 주다 문제가 된 적도 있다. 굳이 비싼 우전을 찾을 필요는 없다는 말씀이다.

입하까지 기다리라고?

유난히 포근했던 지난겨울을 기억하시나. 겨울이 따뜻해서 찻잎도 빨리 올라왔다. 올 봄 남도의 다원은 곡우 1주일 전인 13일부터 수확을 시작했다. 예년보다 1주일 정도 빠르다고 한다. 잎이 일찍 나오기도 했거니와 수확량도 많을 것으로 기대된단다. 겨울이 계속 따뜻하면 초의선사의 말씀도 수정되어야 할지 모른다.

다도는 복잡하다던데?

무쇠솥에서 차를 덖는 장면. 400도가 넘는 온도에서 차를 덖는다. 고된 작업이다. [중앙포토]

무쇠솥에서 차를 덖는 장면. 400도가 넘는 온도에서 차를 덖는다. 고된 작업이다. [중앙포토]

우리의 전통 다도(茶道)는 복잡하지 않다. 일본 다도가 잘못 적용된 것이다. 편하고 여유롭게 차의 향과 맛을 음미하면 된다. 우리 차는 80도 정도 뜨거운 물에서 1∼2분 우려낸 다음 마시는 게 가장 좋다고 한다. 옛 선승의 게송에 ‘끽다거(喫茶去)’라는 게 있다. ’차나 한 잔 하시게’라는 뜻이다. 이 짧은 말씀에 우리 차의 철학이 배어있다.

차는 어떻게 만드나? 

차는 만드는 과정이 길고 복잡하다. 일본 차가 찐 차고, 영국 차가 발효 차(홍차)라면 우리 차는 덖음차다. 우리 차는 덖는다. 뜨겁게 달군 솥에 찻잎을 넣고 볶는 과정을 이른다. 한 번 덖은 차는 말렸다 다시 덖는다. 이 작업을 여러 번 되풀이한다. 구증구포(九蒸九曝)라는 말이 있다. ‘아홉 번 찌고 아홉 번 볕에 말린다’는 뜻이다. 요즘엔 구증구포의 제다법을 따르는 다인이 드물다지만, 차를 만드는 일은 여전히 고단하다. 차의 품질은 외려 차를 만드는 과정이 좌우한다.

차가 바이러스를 물리친다고?

차를 마시는 도구, 즉 다기다. 80도의 뜨거운 물에서 우려낸 찻뭇을 마신다. [중앙포토]

차를 마시는 도구, 즉 다기다. 80도의 뜨거운 물에서 우려낸 찻뭇을 마신다. [중앙포토]

차의 떫은 맛을 내는 성분이 카테킨이다. 카테킨은 바이러스 억제 및 차단 효과가 탁월하다고 알려져 있다. 카테킨 성분만 추출한 의약품이 수두룩하다. 감기 기운이 있으면 뜨거운 차를 마시라고 권하는 까닭이다. 다만 지나친 것은 늘 안 좋다. 차는 하루 한 잔에서 세 잔 정도 마시는 게 제일 좋다고 한다.
 손민호 기자 ploveso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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