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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원고 2학년은 대학 졸업반이 됐다 "4월만 되면 몸이 아파요"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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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일 오전 세월호 희생자 유가족이 등이 전남 진도 맹골수도 참사 해역을 찾았다. [연합뉴스]

16일 오전 세월호 희생자 유가족이 등이 전남 진도 맹골수도 참사 해역을 찾았다. [연합뉴스]

어느덧 6년이 지났다. 2014년 4월 16일, 진도 앞바다 맹골수도에 구명조끼도 없이 뛰어든 단원고 2학년 학생은 이제 사회인이 될 준비를 하고 있다.

시간은 지났지만, 트라우마가 사라지거나 아픔이 익숙해지지는 않는다고 한다. 숙명여대 미디어학부 4학년 김도연(24)씨의 얘기다. 김씨는 "세월호 안에 있던 승객들은 구조가 진행되지 않았다는 것을 모두 알았을 거다, 여전히 진상규명을 외치는 이유"라고 말했다.

김씨는 참사 당시 우연히 3층 갑판에 머물다 탈출에 성공했다. 김씨의 기억에 구조는 없었다.

기울어진 선체에서 소파에 몸을 기대고 수십분을 버티다 보니 물이 차올랐다. "내가 나가야만 살 수 있다"는 확신이 들었다.

열여덟 여학생이 바다에 뛰어들었다. 구명조끼를 입지도 못했다. 근처에 있던 구명보트는 다가오지 않았다고 한다.

김씨와 친구들은 2인 1조로 어깨동무를 하고 구명보트까지 허우적 대며 다가갔다. 수영도 헤엄도 아닌 살기 위한 몸부림이었다. 김씨는 "그때 물을 마시러 3층 식당 로비에 오지 않고 4층 숙소에 있었다면 그렇게라도 해서 살아남지 못했을 것"이라며 "구조가 아닌 탈출이었고 사고가 아닌 사건"이라고 강조했다.

“뉴스 보고 놀랍고 무서워”

검찰 '세월호 참사 특별수사단'이 지난해 11월 22일 여수해경 선박을 압수수색 했다. [연합뉴스]

검찰 '세월호 참사 특별수사단'이 지난해 11월 22일 여수해경 선박을 압수수색 했다. [연합뉴스]

김씨는 14일 기자와 인터뷰를 하면서도 "그만하자" "지겹다" "시체팔이다"라는 댓글이 눈에 보이듯 예상된다고 했다. 하지만 세월호에 대한 이야기를 멈출 수 없는 이유는 조사가 진행되며 나오는 새로운 사실들 때문이라고 한다.

지난해 11월 사회적참사 특별조사위원회는 세월호 사건 당시 맥박이 뛰는 채로 구조된 고(故) 임경빈군의 헬기 이송 지연 의혹에 대해 검찰에 수사를 의뢰했다. 당시 임군을 이송할 수 있는 헬기가 있었지만 임군은 배를 옮겨타며 이송돼 4시간 41분만에 병원에 도착했고 숨을 거둔 것으로 조사됐다. 특조위는 "현장 헬기에 임군 대신 김석균 해경청장 등 고위직이 탔다. 임군을 헬기로 옮겼다면 20~30분만에 병원에 도착했을 것으로 보인다"며 김 청장 등 해경 지휘부 4명에게 업무상 과실치사 혐의가 있다고 밝혔다.

김씨는 "뉴스를 보고 놀랍고 무서웠다"며 "당시 영상을 보면 구조자들이 '왜 아이를 헬기 이송하지 않느냐'고 따지는 모습이 나온다. 그게 인간적이고 당연한 건데, 어떻게 이런 비인간적인 일을 다수가 진행할 수 있는지 예상을 뛰어넘는다"고 했다. 이어 "한 명의 생존자를 살릴 수 있었다는 건 더 많은 생존자를 살릴 수 있었다는 걸 의미한다"며 "아직도 왜 그 많은 친구들이 구조되지 못했는지 이해가지 않는다"고 말했다.

"욕설 댓글 힘들지만"

숙명여대 미디어학부 4학년 김도연(24)씨가 지난해 친구들에게 나눠준 세월호 물품. [사진 김도연씨]

숙명여대 미디어학부 4학년 김도연(24)씨가 지난해 친구들에게 나눠준 세월호 물품. [사진 김도연씨]

세월호 참사 관련 업무상과실치사상죄, 직권남용죄의 공소시효는 1년 남았다. 그는 "지겹다는 댓글은 6주기에 등장한 게 아니라 1주기 때부터 반복됐다"며 "그 사이에 무엇을 알았고 무엇이 지겨워진 것일까. 욕설 섞인 댓글은 아무리 봐도 익숙해지지 않는다"고 말했다.

김씨는 "사람들은 뉴스를 통해 한정된 정보를 제공 받기 때문에 '저렇게 생각할 수도 있구나' 이해하려 한다"고도 말했다. 이어 "저는 가해자도 범죄자도 아니지만 세월호를 얘기하는 것에 대한 부담감이 있었다"며 "상대방이 부정적인 반응을 보여도 나에겐 아무런 영향이 오지 않는다고 되새기며, 오류가 있다면 바로잡을 수 있도록 이야기를 하고 있다"고 말했다.

김씨는 매해 4월 세월호 스티커 등을 만들어 친구에게 나눠줬다. '기억해달라'고 말하는 대신 자비를 들여 나눔을 택하는 본인만의 트라우마 극복이다.

올해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로 캠퍼스에서 4월을 보낼 수 없게 돼 나눔 활동은 대학 마지막 학기인 2학기에 할 계획이다. 그동안 적십자 등 단체와 함께 해외 봉사활동을 다녀온 것도 김씨에겐 따뜻한 기억으로 남았다. 부정당하는 존재가 아닌 아닌 환영받는 자가 되는 경험, 받는 게 아닌 나눠주는 경험이 마음에 난 생채기에 그나마 딱지를 앉혔다.

"4월이면 몸이 참사를 기억한다"

김씨는 "해마다 4월이 되면 면역이 약해지면서 위염에 걸리는 등 몸이 먼저 참사를 기억한다"고 말했다. 친구들에 대한 그리움뿐만 아니라 참사를 겪고 탈출하는 과정에서의 기억이 몸에도 마음에도 남아있다고 한다.

다른 생존 학생들도 비슷한 일을 겪고 있다는 게 김씨의 이야기다. 김씨는 "우리 사회가 안전에 대한 경각심을 가져 다시는 참사가 일어나지 않았으면 한다"며 "참사가 일어나더라도 사회가 대응하는 방식이 세월호와 같지 않았으면 한다. 언론도 참사보도에 있어 정확하고 진중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정은혜 기자 jeong.eunhye1@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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