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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사설

궤멸적 참패 통합당, 뼈를 깎는 개혁으로 환골탈태하라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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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보수의 대표 정당이자 제1 야당인 미래통합당이 총선에서 궤멸 수준의 참패를 당했다. 건국과 산업화를 주도해 온 보수 정당은 늘 여당 아니면 제1 야당으로 우리 정치의 중추 역할을 해 왔다. 총선마다 부침은 있었지만 상대 당의 독주를 막을 수준의 의석은 늘 획득해 왔다. 그러나 이번 21대 총선에선 개헌 저지선(100석)을 겨우 넘기는 수준으로 참패하면서 여당인 더불어민주당이 얼마든지 단독으로 법안을 처리할 수 있는 무대를 열어줬다. 20대 총선과 2017년 대선, 2018년 지방선거에 이어 4연패를 기록한 데다 집권당 심판론이 우세해 지려야 지기 힘든 정권 3년 차 총선에서 참패해 충격이 더하다.

전대미문의 참패 책임은 하나부터 열까지 통합당에 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20대 국회 첫해에 박근혜 대통령 탄핵을 당하고도 3년 내내 누구 하나 진심으로 반성하며 물러난 사람이 없었다. 친박은 비박 탄핵 세력을 ‘배신자’라 몰아붙이고, 비박은 비박대로 당권 투쟁을 일삼아 ‘도무지 희망이 없는 당’ 이미지를 고착시켰다. 정책 면에서도 소득주도성장이나 탈원전, 남북 화해 등 정부의 노선을 비판하기에 급급했을 뿐 국민이 납득할 만한 구체적 대안을 제시한 적이 한 번도 없다. 총선 전략도 엉망이었다. ‘사천’ 논란을 부른 돌려막기식 공천에다 ‘한선교의 난’, 차명진 막말 등 실소조차 나오지 않는 막장 드라마가 연일 터지면서 중도층이 손아귀 속 모래처럼 빠져나가 ‘양남(영남·강남)’ 말고는 기댈 곳이 없는 신세를 자초했다.

통합당은 뼈를 깎는 자성과 개혁으로 환골탈태해야 한다. 상황이 절망적이지만은 않다. 정당 투표에서 통합당의 위성정당 미래한국당은 가장 높은 득표율(33.84%)로 더불어시민당을 2석 앞선 19석을 확보했다. 또 부산·경남에선 4년 전 잃었던 의석 상당수를 되찾았다. 이에 따라 통합당은 미래한국당과 합당하면 103석, 자당 출신 무소속 당선자들까지 합류할 경우 107석가량의 의석을 갖게 된다.

이런 자산을 바탕으로 통합당은 모든 기득권을 내려놓고 재창당의 각오로 새 판을 짜야 한다. 정권 코드에 맞춰진 검경 수사권 조정이나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장 임명에는 원칙을 갖고 맞서되 코로나 관리 등 민생 현안엔 협조해 수권 정당 자격을 입증해야 한다. 이번 총선에서 황교안 대표를 비롯한 대권 주자급 후보들이 죄다 낙선한 건 지금의 인물들로는 안 되니 백지상태에서 재출발하라는 민심의 명령이다. 능력 있는 새 인물을 전면에 내세우고 성장과 복지의 선순환, 안보도 평화도 놓치지 않는 대북정책 등 시대와 함께 호흡하는 정책으로 승부하라.

86세대가 60대로 진입하면서 ‘진보 노인’들이 늘어가는 시대다. 노년층 표에만 매달리는 불임 정당에서 벗어나는 것도 시급하다. 민주당만 쳐다보는 젊은층의 마음에 적극적으로 다가가 그들의 시선을 붙잡는 대안 정당으로 거듭나려는 노력만이 그들의 살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