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년 비공개” 약속하고 받은 ‘4.19 피의 증언’ 문화재 된다

중앙일보

입력 2020.04.15 16:25

업데이트 2020.04.15 18:16

연세대가 4 ·19 60주년을 맞아 마련한 특별전시회(‘청년학생의 힘’)에 참석한 옛 '4월혁명연구반' 주역 김달중·안병준 교수(왼쪽에서 넷째, 다섯째). 오른쪽은 당시 시위 열성 참가자로서 이번 전시회 도록 제작비를 부담한 김병철 동문. 당시 연세대학생 3000여명이 도심으로 진격했던 시위 경로 모형을 둘러보고 있다. [사진 연세대 박물관]

연세대가 4 ·19 60주년을 맞아 마련한 특별전시회(‘청년학생의 힘’)에 참석한 옛 '4월혁명연구반' 주역 김달중·안병준 교수(왼쪽에서 넷째, 다섯째). 오른쪽은 당시 시위 열성 참가자로서 이번 전시회 도록 제작비를 부담한 김병철 동문. 당시 연세대학생 3000여명이 도심으로 진격했던 시위 경로 모형을 둘러보고 있다. [사진 연세대 박물관]

60년 전 봄날에도 선거가 치러졌다. 대통령(4대)·부통령(5대)을 뽑는 1960년 3월15일 선거는, 그러나 보통‧평등‧직접‧비밀투표와 거리가 멀었다. 완장부대와 정치깡패가 활보하며 투표소의 야당 참관인들을 위협‧폭행했다. 대리투표가 만연하고 이미 기표된 투표용지가 무더기로 발견됐다. 광주‧마산 등에서 부정선거에 항의하는 시위가 벌어졌다. 경찰이 총기 발포로 대응한 시위대 가운데 마산상고 입학예정자 김주열이 있었다. 3·15 당일 실종 처리된 김주열은 4월11일 한쪽 눈에 최루탄이 박힌 시신으로 마산 앞바다에 떠올랐다. 훗날 4‧19 혁명으로 명명된 전국 반정부 시위의 도화선이다.

민주화 시위 속 "격변의 상황 기록해야"
연세대 4학년생 김달중·안병준 전국 돌며
185명 면담 조사 후 자료실에 은밀 보관
문화재청 '민주화 유산' 등록문화재 추진

당시 연세대 정치학과 4학년생이던 김달중‧안병준은 폭풍 같은 시위 속에서 “격변의 상황을 기록 자료로 남겨야 한다”는 사명감을 느꼈다. 학교의 일부 교수들이 이를 알고 힘을 실어줬다. 정국이 어찌될지 모르니 물밑 진행하되 예산 및 공신력 확보 차원에서 연세대 대학원 연구프로젝트로 진행하자고 합의했다. 이렇게 해서 단 두 사람의 ‘4월혁명연구반’이 만들어졌다. 이들은 면담자들에게 “10년 간 비공개할 것이니 신변 위협은 없을 것”이라고 약속하며 시위 기록을 남겼다. 뜨거웠던 4월의 함성‧울분‧슬픔‧희망이 그렇게 수기(手記)로 남았다.

정치학과 4학년 2명 '4월혁명연구반' 결성

은밀하게 채집된 60년 전 ‘피의 증언’들이 국가등록문화재가 될 전망이다. 최근 문화재청(청장 정재숙)은 ‘4‧19 혁명 문화유산’을 집중 발굴해 민주화 문화유산으로는 처음으로 국가등록문화재로 등록 추진한다고 밝혔다. 앞서 문화재청은 지방자치단체와 유관기관 추천을 받아 총 179건의 관련 유물을 발굴했고 이 가운데 총 7건을 등록 우선 추진대상으로 선정했다. 여기엔 연세대 4월혁명연구반 수집 자료 외에 부산일보 허종 기자(1924~2008)가 특종 보도한 김주열 열사 시신 사진도 포함됐다.

문화재청이 국가등록문화재로 추진하는 '연세대학교 4월혁명연구반 수집자료(4 ·19 혁명 참여자 구술 조사서)' 중 목격자 조사서. 사진 문화재청

문화재청이 국가등록문화재로 추진하는 '연세대학교 4월혁명연구반 수집자료(4 ·19 혁명 참여자 구술 조사서)' 중 목격자 조사서. 사진 문화재청

문화재청이 국가등록문화재로 추진하는 '연세대학교 4월혁명연구반 수집자료(4 ·19 혁명 참여자 구술 조사서)' 중 부상자 조사서. 사진 문화재청

문화재청이 국가등록문화재로 추진하는 '연세대학교 4월혁명연구반 수집자료(4 ·19 혁명 참여자 구술 조사서)' 중 부상자 조사서. 사진 문화재청

문화재청이 국가등록문화재로 추진하는 '연세대학교 4월혁명연구반 수집자료(4 ·19 혁명 참여자 구술 조사서)' 중 부상자 조사서. 사진 문화재청

문화재청이 국가등록문화재로 추진하는 '연세대학교 4월혁명연구반 수집자료(4 ·19 혁명 참여자 구술 조사서)' 중 부상자 조사서. 사진 문화재청

데모대원과 경찰이 충돌할 때 당신의 심정은?
“잔혹하고 가혹한 나머지 나에게 총이 없음이 안타까웠다”(26세 권대홍)
연행 도중과 고문 시위 감정
“정정당당하나 공산주의라는 누명 씌운 고문이 있을지 두려웠다”(21세 이자평)
부상 당시 목격한 그대로
“데모대가 북마산 파출소를 향할 때 데모대는 드람(드럼)을 굴리면서 방패삼아 들어갔다. 이때 총을 쏘기 때문에 뒤에 숨어서 들어갔으나 총탄에 맞아 의식을 잃었다. 두개골 관통상으로 9일간 의식불명…“(15세 김정희)

‘4월혁명연구반’의 기록 일부다. 김달중‧안병준은 서울뿐 아니라 대구‧마산‧부산 등지의 시위 참가자‧목격자‧부상자도 만났다. 4월23일 시작된 작업은 이승만 대통령 하야(4월 26일) 후에도 계속됐고 7월초 박충석 학우가 합세한 가운데 정리가 마무리됐다. 현재 전해지는 면담 기록은 부상자‧데모사항‧데모목격자‧연행자‧사후수습‧교수데모 등 9종에 걸쳐 총 185명에 이른다.

시위 당시 심경, 목격담 등 185명 구술 

당시 조사는 주관식 서술 외에도 선택된 예시 가운데 답을 고르게 하는 문항이 있는 등 최대한 객관적으로 기록을 남기려한 노력이 보인다. 다만 문항이 정교하지 못하고 각 면담자의 인적 정보도 정밀하지 않다. 일부 면담자는 가명을 쓴 것으로 추정된다. 그만큼 작업이 조심스러웠단 얘기다.

1960년 4·19 혁명 당시 경찰이 시위대를 진압하고 있다. 4월 19일부터는 교수와 직장인까지 시위에 참여했다. [사진 국가기록원]

1960년 4·19 혁명 당시 경찰이 시위대를 진압하고 있다. 4월 19일부터는 교수와 직장인까지 시위에 참여했다. [사진 국가기록원]

4월혁명연구반은 이밖에도 광범위한 자료 수집을 했다. 중앙지 혹은 지역신문사를 통해 입수하거나 개인으로부터 받은 시위 사진 등이 총 1100장에 이른다. 계엄사령관 명의로 내려진 각종 시책, 명령 등의 인쇄물도 수집했다. 비상계엄포고문 12종, 훈시문 1종, 공고문 3종, 담화문 2종 등 총 19종이다. 시위 현장에서 학생들이 차던 완장, 여기저기 나붙은 벽보 등도 모았다.

이들 기록은 어떻게 지금까지 전해진 걸까. 지난 14일 연세대 박물관 학예팀 이원규 학예사에 따르면 당시 한미재단을 통해 미국에 넘겨 보관하자는 제안도 나왔지만 결국 이들은 위험을 무릅쓰고 학내에 두기로 했다고 한다. 장소는 김달중 학생이 아르바이트로 근무하던 중앙도서관 귀중본열람실이었다, 일부 담당자들만 아는 가운데 기록은 그렇게 밀봉됐다. 이후 김달중‧안병준은 각각 국제정치학을 공부하고 모교 교수로 돌아왔다.

“1998년에 연세대에 국내대학 최초로 기록보존소(연세 아카이브)가 만들어지면서 귀중본실에 있던 이 자료들이 넘어옵니다. 그때부터 일반 열람이 가능해졌고 이를 활용한 연구도 간간이 이뤄졌습니다. 다만 아직 국내에서 기록학이 성숙하지 못해 이걸 본격적으로 학술자료화한 성과는 안 나왔어요.”(이원규 학예사)

이원규 연세대 박물관 학예사가 14일 전시중인 4.19 자료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권혁재 사진전문기자

이원규 연세대 박물관 학예사가 14일 전시중인 4.19 자료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권혁재 사진전문기자

'연세가 기록한 1960년 4월혁명 '청년 학생의 힘' 전시회에서 공개된 4월혁명연구반 실태조사서. 권혁재 사진전문기자

'연세가 기록한 1960년 4월혁명 '청년 학생의 힘' 전시회에서 공개된 4월혁명연구반 실태조사서. 권혁재 사진전문기자

연세대 박물관에 전시 중인 '연세가 기록한 1960년 4월혁명 '청년 학생의 힘'. 권혁재 사진전문기자

연세대 박물관에 전시 중인 '연세가 기록한 1960년 4월혁명 '청년 학생의 힘'. 권혁재 사진전문기자

이 학예사에 따르면 이들 자료는 시기적으로 4‧19 직후에 생생한 것인데다 서울과 지방, 연령대로는 10대부터 50대까지 포괄해 일반 시민의 목소리를 앙케이트 방식으로 기록했다는 의미가 있다. 문화재청 역시 조사 대상별 정치‧사회의식 등이 구체적으로 드러나 있다는 점, 여러 지역 시위 참가자를 대상으로 구술 조사한 자료로 현재까지 유일하다는 점 등이 등록문화재로서 가치가 있다고 판단한다.

60주년 기념 전시회서 관련 유물 첫 공개 

연세대는 4‧19 60주년을 맞아 이들 유물을 처음 공개하는 특별전(‘청년학생의 힘’)을 교내 백주년기념관에 마련했다. 지난달 30일 동문 및 관계자 일부만 초대한 행사엔 80대가 된 김달중‧안병준 두 주역도 참석했다.

“생명을 바쳐 싸운 사람들의 정신을 기려 우리에게 주어진 자유와 민주주의를 잘 가꿔야 한다”(안병준) “오늘날 젊은 사람들도 역사의 증인이 돼주길 바란다”(김달중) 등의 소회를 남겼다. 전시회는 7월까지로 예정돼 있지만 현재 코로나19로 인해 일반에 공개를 못하는 상황이다. 전시장 한쪽에선 4‧19 시인으로 불리는 김수영(1921~1968)의 주요 작품들도 함께 감상할 수 있다.

“자유를 위해서 비상하여본 일이 있는 사람이면 알지(중략) 어째서 자유에는 피의 냄새가 섞여 있는가를”(김수영 ‘푸른 하늘을’ 중에서)

4‧18 고대 부상자 명단, 이승만 사임서도 문화재 추진
“곤봉 엇개(어깨) 맞다”
“깡패에 다리 부상 7일 치료”
“머리 터지다”
“천일백화점 근처에서 깡패의 몽둥이로 후두부를 맞고 失神(실신)”

벽돌로 머리를 맞았다, 경찰봉으로 옆구리를 맞았다 등의 증언이 이어진다. 장소는 안암동, 천일극장앞, 동대문서, 국회의사당 등 제각각이다. 이들을 기록한 글씨도 빨간 가로 쓰기, 세로 쓰기, 한자 혼용 등 제각각이다.

이들은 ‘4‧19 혁명 참여 고려대 학생 부상자 명단’이라는 자료의 일부다. 4‧19 전날 벌어진 ‘4‧18 고려대 데모’를 중심으로 시위에 참가한 고려대학생 부상자 명단 초안 2종과 이를 정리한 정서본 (1종)이다. 학생들이 국회의사당까지 시위를 마치고 돌아오는 길에 정치깡패의 습격을 받은 상황과 부상 정도를 학과‧학년‧번호‧이름대로 꼼꼼히 작성했다.

이 자료도 민주화 문화유산 중 등록문화재로 우선 추진된다. 이밖에 자유당 부정선거 자료, 이승만 사임서, 마산지역 학생 일기, ‘내가 겪은 4·19 데모’(60년 4월 19일, 동성고 학생들의 4·19 시위 참여 경위가 기술된 동성고 이병태 학생의 일기) 등이다.

강혜란 기자 theother@joongang.co.kr

관련기사

ADVERTISEMENT
ADVERTISEMENT
ADVERTISEMENT
ADVERTISEMENT

Innovation Lab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