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오래]몇 날 며칠 모은 마스크를 아낌없이…그게 아버지 마음

중앙일보

입력 2020.04.15 15:00

[더,오래] 푸르미의 얹혀살기 신기술(18) 

아버지 병원 진료 시간과 사무실 회의 시간이 겹쳤다. 점심시간에 잠시 다녀올 생각이었는데, 아무래도 무리겠다 싶어 대전에 사는 언니1에게 SOS를 보냈다. 언니1이 흔쾌히 상경키로 했다. 뚜벅이인 내가 아버지를 모시고 갈 때는 버스와 지하철을 갈아타고 가야 했는데, 언니는 차로 모시러 와서 진료 마치고 집에 모셔다드리고 간다니 아버지에겐 더 잘된 일이다 싶었다. 병원 가는 것에 유독 걱정과 불안이 많은 분이라 큰딸이 함께하면 더욱 든든하리라.

아버지랑 살며 절실히 느끼는 것은 형제자매는 다다익선(多多益善)이라는 것이다. 힘든 일도 좋은 일도 집안 대소사도 함께 나눌 수 있어 좋다. 말도 마음도 잘 통하고, 기본적으로 동생을 안쓰러워하는 언니들이니 더욱 힘이 된다. 다만 서울과 대전, 부산, 강릉에 떨어져 살고 있어 언젠가 가까이 모여 살면 좋겠다 하는 소망이 있을 뿐 ‘언니들이 있어 정말 다행’이라고 느끼는 순간이 많다.

아버지 병원 진료 시간과 사무실 회의 시간이 겹쳐 걱정했는데, 다행히 대전에 사는 언니1이 흔쾌히 상경했다. 말도 마음도 잘 통하고, 기본적으로 동생을 안쓰러워하는 언니들이니 더욱 힘이 된다. [사진 piqsels]

아버지 병원 진료 시간과 사무실 회의 시간이 겹쳐 걱정했는데, 다행히 대전에 사는 언니1이 흔쾌히 상경했다. 말도 마음도 잘 통하고, 기본적으로 동생을 안쓰러워하는 언니들이니 더욱 힘이 된다. [사진 piqsels]

회의 마치고 휴대폰을 확인하니 언니1의 보고사항이 깨알같이 와 있었다. 대전에서 몇 시에 도착했으며, 아버지를 차에 모시고 병원에 도착해 접수한 뒤 선생님을 만나는 과정, 아버지 심리상태와 검사 후 기분, 심지어 피검사 때 주삿바늘을 몇 번 찔렀다는 것까지, 궁금해할 동생에게 세세하게 메시지를 보내놓았다. 결론적으로 언니1은 동생이 당부한 미션을 완벽하게 클리어한 것은 물론, 병원 오가는 길 벚꽃길 드라이브로 꽃놀이도 시켜드렸다. 게다가 김치와 밑반찬, 간식으로 먹을 홈메이드 쿠키와 약식까지 대전에서 챙겨와 부실한 우리 집 냉장고에 저장해 놓고 대전으로 돌아갔다.

집에 돌아오는 길, 강릉 사는 언니2로부터 전화가 왔다. 오늘 새집 청소하러 온 김에 집에서 저녁 먹고 가겠다고. (언니 2는 곧 과천으로 이사 올 예정이다) 아버지는 낮에 큰딸이 다녀간 데 이어 둘째까지 와서 함께 저녁을 먹겠다고 하니 병원에서 힘들었던 일은 금방 다 잊으시고 함박웃음을 지으셨다.

늘 혼자 혹은 둘이던 식탁에 언니2가 함께 하니 한 명 늘어났을 뿐인데도 집이 꽉 찬 느낌이었다. 식탁 위엔 언니 1이 담아온 신선한 열무김치와 밑반찬이 가득했다. 오랜만에 엄마가 해 준 집 밥을 먹는 느낌이랄까. 상황이 여의치 않아 갑자기 언니를 부른 것인데, 혼자 무리하지 않고 언니에게 도움 청하길 잘했다 싶을 정도로 결과가 좋았다.

저녁 식사 자리에서 아버지는 언니2에게 “이렇게 같이 밥 먹고 가니 얼마나 좋으냐. 반찬도 다 맛있구나” 하며 만족해하셨다. 언니는 기다렸다는 듯 아버지에게 말했다. “아빠, 저희는 어쩌다 한 번이지만 막내는 매일, 매끼 하고 있어요.” 침묵이 흘렀다. 얼마 전 ‘지난 10년간 유지해 온 효녀 심청 타이틀이 (언니 때문에) 위태롭다’고 썼던 글을 마음에 담아 뒀던 모양이다.

[더,오래]에 연재를 시작할 때는 미처 생각하지 못했던 일이 이곳저곳에서 발생하고 있다. 내가 무심코 쓴 글 한 줄, 단어 하나에 파문이 생긴다. 새 글이 공개될 때마다 언니들은 응원 메시지를 보내주지만, 각자 입장에서 느끼는 감정과 생각도 다를 수 있다. 내가 신경 쓰는 부분도 혹여 다른 가족 구성원 보기에 불편한 부분은 없는가다. 실명 대신 필명 ‘푸르미’를 쓰는 이유가 그것이기도 하고. 이번 호에선 쌍방의 시선을 함께 담아보고자 언니1의 4월 1일 자 일기를 이어 소개한다.

아버지와 함께 매주 4장씩 구매한 마스크의 행방을 대전에 사는 언니의 일기를 보고 알았다. 시골에선 마스크 사기 힘들지 않냐며 정확하게 반반 나눠 언니1과 언니2의 손에 들려 보내셨단다. [사진 pxhere]

아버지와 함께 매주 4장씩 구매한 마스크의 행방을 대전에 사는 언니의 일기를 보고 알았다. 시골에선 마스크 사기 힘들지 않냐며 정확하게 반반 나눠 언니1과 언니2의 손에 들려 보내셨단다. [사진 pxhere]

바쁜 김 자매 4호를 대신해 아빠 모시고 병원 검진을 가기 위해 친정에 갔다. 아빠는 집에 들어서는 나를 훑어보시고는 옷을 너무 얇게 입고 왔다며 나무라신다. 밖은 벌써 꽃이 만발한 봄이 건만 지천명에 듣는 잔소리가 참 좋다. 집에서 준비해 온 반찬을 냉장고에 넣으려는데 급하게 아빠가 말씀하신다. “마스크, 빨리 챙겨라.” 돌아보니 포장도 크기도 각각인 마스크가 여러 개. 시골에는 마스크도 구하기 어렵지 않으냐 하시며, (아빠, 저도 따뜻한 물 나오는 아파트에 살아요^^) 몇 날 며칠 두 어장씩 모았을 마스크를 챙겨주신다.

“아, 아빠, 마스크라니요!” 꽤 오랫동안 보길도 집을 달라고 졸랐으나 가서 살지도 않을 집이 왜 필요하냐며 사촌 언니에게 주어 버리신 아빠가 그 귀하디귀한 마스크를 내게 주시다니 순간 눈물이 났다.

병원 검사를 마치고 아침을 금식한 아빠를 위해 불고기를 사드렸다. 코로나로 지난 3주간 집에서 외출도 못 하고 계셨던 터라 입맛이 ‘역사적’으로 떨어졌다던 아빠는 그릇 바닥의 국물까지 싹싹 다 긁어 드셨다. 금식 탓인지, 늘 홀로 드시던 점심에 밥 동무가 생긴 덕분에 몸과 마음을 채운 아빠는 이제야 웃으신다.

추신: 마스크 행방에 대해 언니 일기를 보고 알았다. 매주 4장씩 구매하지만, 아버지가 거의 외출을 안 하셔서 여유가 있었는데, ‘시골에선 마스크 사기 힘들지?’ 하시며 여유분을 정확하게 반반 나눠 언니1과 언니2의 손에 들려 보내셨다 한다.

공무원 theore_creator@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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