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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일기]허무맹랑 공약 내고도 당선된 국회의원에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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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회의원에겐 큰 권한이 있지만, 모든 권한이 있는 건 아니다.”

 21대 국회에 입성할 여러분을 현장에서 지켜보며 하고 싶었던 얘기입니다. 강남 3구에선 야당은 물론 집권당 후보도 ‘종부세 감면’ 공약을 꺼냈습니다. 아마 스스로 더 잘 알 겁니다. 지역구 의원의 힘으로 실현 불가능한 공약이라는 것을. 공약을 접한 한 시민은 “국토교통부 장관과 대화나 한 마디 해보고 꺼낸 공약인지 모르겠다. 혼란스럽다”고 말했습니다.

‘○○○ 반드시 해내겠다’라거나 ‘○○○를 꼭 유치하겠다’는 공약은 선거철마다 나오는 얘기입니다. 앞뒤 따지지 않고 ‘일단 되고 보자’식 공약(空約)이 난무하지만, 올해 총선은 유독 심했습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 19) 이슈에 가려 공약을 검증할 기간이 짧았기 때문입니다.

GTX(수도권광역급행철도) 노선 유치 공약이 대표적입니다. 중앙선거관리위원회에 따르면 수도권 34곳에서 후보자 60여명이 GTX역 유치를 공약으로 앞세웠습니다. 하지만 GTX는 간단한 사업이 아닙니다. 천문학적 예산이 드는 데다, 각종 이해관계가 얽히고, 시간도 오래 걸리는 ‘고차 방정식’입니다. 혼자 해결할 수 없는 난제인 데다 아직 실체도 없는 사업을 미끼 삼아 유권자의 눈과 귀를 흐렸습니다.

눈을 돌리면 더 황당합니다. 북한과 인접한 경기 동두천·연천 지역구에선 비무장지대(DMZ)에 세계 각국의 신산업ㆍ자본을 유치해 평화공단을 조성하는 공약을 내걸었습니다(더불어민주당 서동욱 후보). 개성공단마저 문 닫은 상황에서 가능할지 묻고 싶습니다. 경기 수원정 지역구에선 홍종기 미래통합당 후보가 삼성전자를 끌어들여 삼성중ㆍ고 유치를 공약으로 내걸었습니다. 안양동안을 지역구에선 추혜선 정의당 후보가 애플 연구개발(R&D) 센터 유치를 공약했습니다. 모두 환경이 조성되지 않았거나 ‘상대’가 동의하지 않은 공약입니다.

한숨만 쉬기에 금배지의 무게가 참 무겁습니다. 임기 4년간 일반수당ㆍ입법활동비ㆍ특별활동비 등 세비와 의원실 운영경비, 보좌진 보수 등 의원 1명당 34억7000만원을 받습니다. 올해 정부 예산(512조3000억원) 기준 임기(4년) 동안 다루는 예산 규모만 2049조2000억원입니다. 허무맹랑한 공약을 내놓는 마음가짐으로 입법하다간 곳곳에서 예산이 줄줄 샐 겁니다.

그동안 선거에서 이기려 다소 무리수를 둔 것으로 믿고 싶습니다. 다만 유권자가 던진 한 표가 당신의 허무맹랑한 공약 때문이 아니란 것은 알아주십시오. 하루하루 법안을 만들 때마다 실현 가능성, 재원 조달 같은 상식을 되새기길 바랍니다. 당신이 더는 선거 후보자가 아닌 국회의원이기에 하는 얘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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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기환 경제정책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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