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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5면

박진석 기자 중앙일보 기획취재담당
박진석 사회에디터

박진석 사회에디터

아테네 거리의 소시지 상인이 정치 입문 제안을 받는다. 그에게 정치인의 공통된 특징, 즉 ▶미천한 출신 ▶장사 솜씨 ▶뻔뻔스러움 ▶막무가내 ▶온 가족의 무례함이 있다는 이유에서다. 권유자는 “어떤 사람이 지도자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하나? 비열하고 무지해야 하네”라고 강조했다.

거의 2500년 전에 나온 아리스토파네스의 희극 ‘기사’(hippheis) 중 한 대목이다. 민주정 하에서의 ‘정치인 비난하기’가 얼마나 오래된 유희인지를 여실히 보여준다.

정치인의 특징들이 가장 잘 표현되는 때가 선거철이다. 둘도 없는 공복인 것처럼 한껏 몸을 낮추면서 당선을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다. 로마 공화정 시절의 정치가 키케로는 “여론의 물결에 휩쓸리는 우리 같은 사람은(중략) 절대로 싫증 내지 말고 유권자에게 잘 보여야 할 것”이라고 역설했다. ‘포풀라레스’(populares·평민파)라 불린 당시의 선동 정치가들은 표를 얻기 위해 빈민의 말투까지 따라 해 빈축을 샀다. 현대 선거에서는 더 말할 것도 없다.

하지만 유권자도 늘 당당하지는 않다. 아테네 시민은 ‘민주주의의 아버지’ 페리클레스를 투표로 추방했고, 영국 국민은 2차 대전 종료 직전 총선에서 윈스턴 처칠을 버렸다. 처칠은 “위대한 민족은 언제나 그들의 위대한 지도자를 배신한다”고 한탄했다. 우리에게도 “투표한 손가락을 잘라버리고 싶다”는 말이 대변하듯 선택을 후회한 전례가 적지 않다.

하지만 표리부동할망정 여러 정치적 요구를 대변하는 후보자들도, 유권자의 잘못된 선택이나 ‘배신’도 모두 소중한 존재와 가치다. 이런 것들을 제대로 누리기 시작한 게 불과 몇십년 전이라는 사실을 우리는 종종 잊는다.

중국의 역사 평론가 이중텐(易中天)은 ‘현재까지는 가장 안 나쁜 제도’라고 민주주의를 찬양하면서 처칠이 한탄했던 ‘유권자의 배신’을 그 이유로 들었다. ‘배신의 자유’를 통해 언제라도 자신의 오류를 교정할 수 있는 제도라는 것이다. 단 한 번도 제대로 된 투표권을 행사하지 못했을 그의 입장에서 보면 얼마나 부러운 가치일까.

오늘은 국회의원 총선거 날이다. 상대가 누구든 지난 선거에서의 선택이 잘못됐다고 판단되면 주저하지 말고, 야무지게 배신하자. 민주주의는 유권자의 배신을 먹고 자란다.

박진석 사회에디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