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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씨 좋으면 보수정당 유리' 美속설, 한국에서도 통할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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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상청은 15일 제21대 국회의원 선거일 날씨가 맑을 것이라고 예측했다. 사진은 13일 충남선관위 관계자들이 부여 궁남지에서 투표 참여를 호소하는 퍼포먼스를 하는 모습. [연합뉴스]

기상청은 15일 제21대 국회의원 선거일 날씨가 맑을 것이라고 예측했다. 사진은 13일 충남선관위 관계자들이 부여 궁남지에서 투표 참여를 호소하는 퍼포먼스를 하는 모습. [연합뉴스]

‘리퍼블리칸 블루(Republican blue)’
미국 선거의 오랜 격언 중 하나다. 선거 당일 날씨가 쾌청하면 상대적으로 민주당 지지성향이 강한 젊은 층이 투표를 게을리 해 공화당이 유리하다는 뜻으로 쓰인다. 날씨와 투표율, 그리고 정당 유불리 간에 일정한 상관관계가 있다고 주장할 때 나오는 말이다. 여의도에서도 “날씨가 좋으면 20대가 투표를 하지 않고 나들이를 많이 나가 투표율이 낮아진다”는 속설이 있곤 했다.

기상청은 제21대 국회의원 총선거일인 4월 15일 전국이 대체로 맑을 것이라고 예측했다. 기온은 아침 최저기온 1∼12도, 낮 최고기온 17∼24도이고 미세먼지 농도는 일평균 ‘보통’ 수준을 기록하며 대기상태도 괜찮을 전망이다.

역대 선거 결과를 보면 날씨와 투표율의 연관성을 찾기 어려웠다. [뉴스1]

역대 선거 결과를 보면 날씨와 투표율의 연관성을 찾기 어려웠다. [뉴스1]

맑은 날씨는 정말 보수 정당에게 유리할까. 역대 총선 결과와 투표율을 보면 날씨와 큰 상관성은 찾기 어렵다. 1996년 15대 총선부터 2016년 20대 총선까지 여섯 번의 선거 투표율을 비교해 보면 ▶15대 63.9% ▶16대 57.2% ▶17대 60.6% ▶18대 46.1% ▶19대 54.2% ▶20대 58.0%의 흐름을 보여왔다.

기상청 지상관측 자료를 바탕으로 날씨를 살펴본 결과 15·16·17대 선거일은 전국이 대체로 날씨가 맑았고 18·19대 선거일에는 비가 내렸다. 20대 선거일 당시는 오전에 비가 조금 내렸다가 오후에 그쳤다. 비가 조금 내렸던 20대 선거 때 투표율이 날씨가 맑았던 16대 때보다 다소 높게 나온 셈이다.

날씨가 좋으면 20대가 투표소 대신 나들이를 많이 나가 젊은 층 투표율이 떨어진다는 식의 주장도 딱 떨어지진 않았다. 날씨가 맑았던 17대 선거일 당시 20대 투표율은 44.7%로 비가 온 18·19대 선거일의 20대 투표율 28.1%, 41.5%보다 오히려 높았다. 선거 별 20대 투표율은 16대 36.8%, 17대 44.7%, 18대 28.1%, 19대 41.5%, 20대 52.7%로 날씨와 뚜렷한 상관관계를 찾기 어려웠다.

기온을 비교해보면 가장 많은 투표율을 기록한 15대 선거일 당시 주요 도시(서울·인천·대전·광주·대구·부산)의 일 평균 기온은 5~8도로 상대적으로 추웠다. 나머지 다섯 번의 선거일 때 같은 도시의 일 평균 기온은 11~17도로 날씨가 따뜻하고 맑다고 투표율이 올라가지 않았다.

비가 내린 18대 총선 때는 보수 정당인 한나라당이 과반을 달성했지만 날씨가 맑았던 17대 총선에서는 진보 정당인 열린우리당이 과반을 얻었다. 날씨가 맑으면 보수 정당이 유리하다는 통념이 깨진 셈이다. [중앙포토]

비가 내린 18대 총선 때는 보수 정당인 한나라당이 과반을 달성했지만 날씨가 맑았던 17대 총선에서는 진보 정당인 열린우리당이 과반을 얻었다. 날씨가 맑으면 보수 정당이 유리하다는 통념이 깨진 셈이다. [중앙포토]

투표 결과도 날씨와 상관이 적었다. 2008년 4월 실시한 18대 총선 때는 비가 내렸지만, 결과적으로 보수 정당인 한나라당(미래통합당 전신)이 총 299개의 의석 중 153석을 차지해 반수 이상을 얻었다. 통합민주당은 81석에 그치며 선거에 패배했다.

반면 날씨가 맑았던 17대 총선 때는 더불어민주당 전신인 열린우리당이 총 의석 299석 중 152석을 차지했다. 당시 보수 정당인 한나라당은 121석만 얻었다. 날씨가 맑으면 보수 정당이 유리하다는 미국의 통념이 우리나라에는 통하지 않은 셈이다.

궂은 날씨가 일부 지역에서 투표율에 영향을 미친 적은 있다. 비가 내린 18대 선거일에 전라남도 일부 지역 주민이 투표하지 못했다. 당시 전남도선관위는 해남·완도·진도 724명, 여수 76명, 무안·신안 143명 등이 높은 파도로 투표소가 설치된 인근 섬으로 이동하지 못해 투표를 못 했다고 발표했다.

신율 명지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우리나라는 미국과 비교해 국가 면적이 작고 투표소까지 접근성이 좋아 날씨 영향은 거의 없다”며 “오히려 정권에 대한 호감도나 분노 등이 투표율에 영향을 끼친다”고 말했다. 그는 “26%가 넘게 나온 사전투표율을 보면 이번 총선은 코로나19로 인한 투표율 감소도 없을 것이다”고 덧붙였다.

이태윤 기자 lee.taeyu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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