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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서 본 요즘 한국···코로나 아닌 여혐·저출산에 주목했다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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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3.1절 100주년 즈음 서울 종로구 광화문 교보생명 빌딩 외벽에 부착되는 대형 태극기.한국의 과거와 현재, 미래에 대해 영국 이코노미스트가 스페셜 리포트를 내놓았다. [뉴스1]

지난해 3.1절 100주년 즈음 서울 종로구 광화문 교보생명 빌딩 외벽에 부착되는 대형 태극기.한국의 과거와 현재, 미래에 대해 영국 이코노미스트가 스페셜 리포트를 내놓았다. [뉴스1]

영국의 시사 주간지 이코노미스트가 최신호에서 한국에 주목했다. 4월11일자로 발행된 이 최신호는 12쪽을 한국에 할애했다. 이번 이코노미스트가 광고 포함 70쪽인 것을 고려하면 꽤 큰 기획이다. 기자의 이름과 e메일 주소 등을 공개하지 않는 이코노미스트의 원칙과 달리 서울지국장인 리나 쉬퍼가 썼다고 적시했다.

기사의 제목은 ‘Loosening up.’ 몸을 풀다, 또는 긴장을 풀고 있다, 정도로 해석된다. 부제는 “한국 사회는 사회적, 경제적으로 엄청난 변화를 겪고 있다. 그러나 변화는 여전히 미약하고, 코로나19 역시 도움이 되지 않는다”로 달았다.

이코노미스트 한국 스페셜 리포트 커버. [이코노미스트 촬영]

이코노미스트 한국 스페셜 리포트 커버. [이코노미스트 촬영]

이코노미스트는 우선 봉준호 감독의 ‘기생충’의 성공과,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의 창궐에 대한 한국 정부와 국민의 대응에 대해 주목했다. 봉 감독에 대해선 “괴짜 이미지의 감독”이라 표현하며 “기존 문법과는 다른 작품으로 대박을 터뜨렸다”고 전했다.

이어 신종 코로나 관련해선 “한국의 정부와 국민 모두가 위기에 잘 대응했다”면서도 “신종 코로나에 대한 한국의 성공적 대응은 옛 한국의 유산인 강하고 위압적인 정부와, 전체를 위해서라면 개인을 희생할 수 있다는 뜻의 결과로도 보인다”고 분석했다.

지난 2월 문재인 대통령이 청와대에서 ‘기생충’ 봉준호 감독과 오찬 중 웃고 있다. [청와대사진기자단]

지난 2월 문재인 대통령이 청와대에서 ‘기생충’ 봉준호 감독과 오찬 중 웃고 있다. [청와대사진기자단]

하지만 이코노미스트는 곧 6주기를 맞는 세월호 참사를 거론하며 당시와 이번 신종 코로나 사태에선 차이점이 느껴진다고 지적했다. “침묵을 강요했던 당시 정부와 달리 이번 신종 코로나 사태에선 사람들은 정부의 지시에 더 즐겁게 따르는 것으로 보였다”며 정보 공개의 투명성 등을 이유로 거론했다. 이어 “문(재인) 대통령의 정부 역시 나름의 스캔들이 있었고, (신종 코로나 사태) 초기엔 상황을 경시하는 듯한 태도로 비판을 받았다”며 “한 설문조사에서 한국인들은 청와대보다 질병관리본부에 더 큰 신뢰를 보냈다”고 지적했다.

제21대 국회의원선거를 이틀 앞둔 13일 오후 대전 4.15 총선을 알리는 현수막이 걸려있다.김성태 기자

제21대 국회의원선거를 이틀 앞둔 13일 오후 대전 4.15 총선을 알리는 현수막이 걸려있다.김성태 기자

이코노미스트는 신종 코로나 이후의 한국에 대해서도 주목했다. “신종 코로나가 물러간 후, 한국인들은 다시 옛 (사회) 구조에 대한 도전으로 돌아갈 것”이라며 한국의 정치 및 사회적 문제와 함께 양성 불평등의 문제 등을 깊이 있게 분석했다. 2018년의 한 설문조사 중 젊은 여성 응답자의 5분의2가 “(남편 또는 남자친구로부터) 폭력을 당한 적이 있다”고 답했다는 것과, "응답 여성 중 70%가 직장에서 성추행을 당한 적이 있다고 답했다"는 설문조사 결과도 언급됐다.

이코노미스트는 한국 남성과 여성의 갈등에 대해선 “전선(戰線)”이 형성돼 있다고 표현했다. 페미니스트 여성 2명이 운영하는 유튜브 채널도 소개했다. 이 채널이 4만명이 넘는 구독자를 보유하고 있으며 “명절에 남성 가족들을 위해 요리를 하는 의무에서 벗어나는 즐거움”을 다룬다고 소개했다. 이 채널 운영자들에 대해 “다소 과격한 (페미니스트) 타입으로, 이들은 남성과의 관계는 아예 끊겠다고 선언했다”고 전했다.

가해자가 여성이었던 '홍익대 누드모델 불법촬영 사건'에 2018년 실형이 선고된 반면, 가해자가 남성인 몰카 촬영 사건들에 벌금형이나 집행유예가 선고된 사례가 많다는 점에 착안해 만들어진 피켓. 이코노미스트는 남혐과 여혐, 양성불평등 문제 역시 한국이 극복해야 할 과제라고 지적했다. [불법촬영편파수사규탄시위 카페]

가해자가 여성이었던 '홍익대 누드모델 불법촬영 사건'에 2018년 실형이 선고된 반면, 가해자가 남성인 몰카 촬영 사건들에 벌금형이나 집행유예가 선고된 사례가 많다는 점에 착안해 만들어진 피켓. 이코노미스트는 남혐과 여혐, 양성불평등 문제 역시 한국이 극복해야 할 과제라고 지적했다. [불법촬영편파수사규탄시위 카페]

이어 다뤄지는 문제는 저출산. 쉬퍼 지국장은 “한국의 결혼한 여성에 대한 높은 기대감은 부담스럽다”며 “남편의 가족을 돌보고 시어머니의 의견에 따라야 한다”고 지적했다. 연세대 이도훈 교수는 이코노미스트에 “삶의 방식은 바뀌었지만 결혼에 대한 전통적 개념은 바뀌지 않았다”고 전했다. 이어 데이트 폭력 및 몰카 문제도 다뤘다. 한국 사회가 발전하기 위해선 양성 평등과 성폭력 엄단이 중요한 과제라고 지적한 것이다.

기사는 이 밖에도 한국 정치가 양극단으로 치닫는 문제와 북한 김정은 위원장이 “핵무기를 손에 쥔 신(神)과 같은 왕”으로 군림하는 이슈도 언급된다.

이코노미스트가 한국의 저력으로 언급한 BTS. [중앙포토]

이코노미스트가 한국의 저력으로 언급한 BTS. [중앙포토]

결론은 뭘까. 쉬퍼 지국장은 “한국의 사회 혁신은 많은 장애물을 만나게 될 것”이라며, “한국 정부들은 위기 상황에선 재벌에 의지하는 습관을 갖고 있는데, 현 정부는 다를지, 지금으로선 확실하지 않다”고 적었다.

이코노미스트의 마지막 문단은 이렇다.

“한국은 앞으로 몇 달 후 꽤 달라질 수 있다. 힘들게 얻어낸 사회적, 경제적 성과를 유지하기 위해 계속 투쟁하면서도 과거로 회귀하지 않고 미래를 다시 상상해 나가는 것, 그것이 (한국에겐) 도전이 될 것이다.” 

전수진 기자 chun.suji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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