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여행썰명서] 품질 차이 없다? 명품소금 천일염 '송화'의 배신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보석처럼 영롱한 소금 결정. [중앙포토]

보석처럼 영롱한 소금 결정. [중앙포토]

전남 신안에서는 소금꽃이 피어야 봄이 왔다고 믿는다. 염전에 소금이 맺힐 때 비로소 봄이라는 뜻이다. 소금에도 제철이 있을까? 있다. 4월이 되어야 전국의 염전은 농사를 시작한다. 바로 이맘때다.

바닷물에 꽃이 핀다?

바닷물이 소금이 되려면 적어도 20일이 필요하다. 저수지와 증발지를 거친 뒤, 결정지에서 소금 알갱이로 태어난다. [중앙포토]

바닷물이 소금이 되려면 적어도 20일이 필요하다. 저수지와 증발지를 거친 뒤, 결정지에서 소금 알갱이로 태어난다. [중앙포토]

겨우내 잠들어 있던 염전이 잠에서 깨는 건 4월 초에 이르러서다. 염전에 앉힌 바닷물이 포근한 햇볕과 산들바람에 말라들면서 이른바 소금꽃이 맺힌다. 그렇게 4월부터 10월까지 소금 농사가 이어진다. 염부들이 소금을 거둬들이기 시작했다는 건, 갯마을에도 봄이 왔다는 가장 확실한 증거다.

소금도 제철이 있을까?

생산량은 5~6월이 가장 많다. 바닷물을 염전에 가둬 소금으로 만들기까지 대략 20일이 걸리는데, 여름엔 햇볕이 강해도 비가 잦아 생산량이 고르지 못하단다. 지난해 기준 20㎏짜리 한 자루가 산지에서는 6000~1만5000원 수준에 거래됐단다.

천일염에도 명품이 있다?

송화(소나무 꽃가루)가 내려 앉은 태안의 염전. 결정을 맺고 나면 노란빛이 사라진다. [사진 태안군]

송화(소나무 꽃가루)가 내려 앉은 태안의 염전. 결정을 맺고 나면 노란빛이 사라진다. [사진 태안군]

‘송화(松花) 소금’을 아실는지. 봄바람에 실려 온 소나무 꽃가루가 들어간 소금이다. 5월 초순께 전북 부안 곰소염전이나, 충남 태안 만대염전에 가면 하얀 염전에 노랗게 내려앉은 송화를 볼 수 있다. 1년 중 딱 열흘만 생산되는 귀한 몸이다. 그 덕에 ‘명품 소금’ ‘고급 소금’으로 알려졌지만, 사실 품질에는 큰 차이가 없단다. ‘송화’를 앞세워 두세 배 더 비싼 값을 부르는 천일염이 있다면, 일단 의심해볼 일이다. 곰소염전 남선염업의 유기성 생산부장은 “육안으로는 일반 소금과 구분도 어렵고, 영양소에도 큰 차이가 없다”고 말한다. 사실 천일염은 간수를 뺐느냐, 안뺐느냐에 따라 가격차가 크다. 간수의 농도가 짙은 천일염은 저렴한 반면, 쓴맛이 강해 바로 먹지 못한다. 1~3년가량 천일염을 묵히는 수고로움을 덜어내려면, 소금 생산 과정에서 간수를 뺀 천일염을 구하는 게 낫다.

염전이 사라진다?

전남 신안 증도 소금밭 전망대에서 본 태평염전 전경. 2013년의 모습이다. [중앙포토]

전남 신안 증도 소금밭 전망대에서 본 태평염전 전경. 2013년의 모습이다. [중앙포토]

2018년 기준 전국 염전 면적 4614㏊ 중 77%가 전남에 몰려 있다. 그 가운데 절반 이상이 전남 신안의 염전이다. 전남 영광과 무안, 전북 부안, 충남 태안, 경기도 화성 등도 이름난 염전 고장이다. 한데 염전은 해마다 줄어들고 있다. 환경이 달라져서가 아니다. 돈벌이가 안 돼서다. 값싼 수입 소금의 유입, 저염식 식문화의 확대 등의 이유로 소금 소비가 확 줄면서 문을 닫는 염전이 많아지고 있다. 신안 증도 태평염전의 박형기 반장(62)은 “최근 1~2년 사이에 30%가량의 염전이 사라지고 태양광 시설이 들어섰다”고 말한다.

염전은 사진 맛집?

전남 영광군 염산면 칠산염전의 일몰 풍경. [중앙포토]

전남 영광군 염산면 칠산염전의 일몰 풍경. [중앙포토]

신안 증도 태평염전, 부안 곰소염전 등은 봄마다 사진 동호인이 뻔질나게 드나드는 명소다. 염전은 짠내 풍기는 삶의 현장인 동시에, 자연의 멋이 담뿍 흐르는 장소다. 느릿하고도 평온한 노을 풍경, 하나하나 보석 같은 소금 결정, 대파질 하는 염부의 분주한 몸동작 등등 어느 것에 초점을 맞춰도 소위 그림이 된다. 소금꽃이 투명하게 빛나는 오전, 염전이 붉게 물드는 일몰 때 특히 좋은 사진을 건질 확률이 높다. 코로나19 사태가 정리되면 한 번쯤가볼 만하다. 염전 주변에 천일염으로 맛을 낸 맛깔스러운 식당과 젓갈 집도 흔하다.
 백종현 기자 baek.jonghyun@joongang.co.kr

관련기사

ADVERTISEMENT
ADVERTISEMENT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