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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오래]'우리 나갈 길~멀고 험해도~' 봄날, 조용히 불러본다

중앙일보

입력

[더,오래] 배은희의 색다른 동거(22)

봄꽃이 피었다. 제주도 구석구석 꽃이 지천으로 피었다. 놀이터에서 뛰어노는 은지 머리 위로 후두둑 꽃비가 내렸다. 은지는 떨어진 꽃잎을 주워 다시 뿌리면서 뛰어다녔다.

코로나19로 모두가 몸을 사리고 있는데 꽃은 여전히 피고 지고, 해는 다시 떠오른다. 예전 같으면 당연하게 생각했을 일이 요즘은 너무 고맙고 감사하다. 꽃 피는 것도 새롭게 보이고, 그걸 당연하게 생각한 나 자신도 돌아보게 된다.

집으로 오는 길에 은지가 벚꽃을 보더니 강아지처럼 뛰어 다녔다. 코로나 19 때문에 방콕 생활을 하고 있는 요즘, 당연하게 생각했던 일들이 고맙고 감사하다. [사진 손어진]

집으로 오는 길에 은지가 벚꽃을 보더니 강아지처럼 뛰어 다녔다. 코로나 19 때문에 방콕 생활을 하고 있는 요즘, 당연하게 생각했던 일들이 고맙고 감사하다. [사진 손어진]

출근길이었다. 운전대를 잡고 시동을 켜니까 라디오에서 ‘클래식 FM’이 흘러나왔다. 진행자는 ‘방구석 클래식’을 소개했다. 코로나 때문에 공연을 할 수 없는 연주자가 방구석에서 공연하고 온라인으로 소통한다는 설명이었다. 참신한 아이디어에 나도 빙긋이 웃었다. 그날은 바리톤 이응광의 노래가 소개됐다. ‘개인 연습실에서 노래한 것’이라 음질이 좋지 못하다는 양해의 말에 나도 별 기대 없이 습관적인 운전을 하며 흩날리는 벚꽃 길을 달렸다.

잠시 후 무반주로 굵직한 첫음절이 들렸다. “저 들에 푸르른 솔잎을 보라” 순간, 소름이 쫙 돋았다. ‘이게 뭐지?’ 분명 익숙한 노랜데, 너무나 다르게 들렸다. ‘도대체 이게 뭐지?’ 신호등 앞에서 오른발에 힘을 꽉 주고, 볼륨을 높였다.

저 들에 푸르른 솔잎을 보라.
돌보는 사람도 하나 없는데
비바람 맞고 눈보라 쳐도
온 누리 끝까지 맘껏 푸르다

서럽고 쓰리던 지난날들도
다시는 다시는 오지 말라고
땀 흘리리라 깨우치리라
거칠은 들판에 솔잎 되리라

우리들 가진 것 비록 적어도
손에 손 맞잡고 눈물 흘리니
우리 나갈 길 멀고 험해도
깨치고 나아가 끝내 이기리라
- 상록수

“와!” 입이 다물어지지 않았다. 공연장도 아니고 개인 연습실에서 부른 노래, 잡음이 섞인 듯 음질도 안 좋은 그 노래엔 절절함이 담겨 있었다. 날것 그대로의 진심은 완벽한 무대가 아니어도, 좋은 음향 시설이 아니어도 충분했다.

예술을 떠나,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는 건 ‘진심’이 아닐까? 진심을 전할 때 어떤 일이 일어나는지 나는 알고 있었다. 하지만 아는 거로 그치니까 아무 변화도 보지 못했다.

‘나는 뭐 하고 있지?’, ‘내 글엔 진심이 있나?’ 한동안 반성하며 나를 돌아봤다. 이미 만들어진 노래를 부르는 사람도 절절한 마음을 담아 부르는데, 글을 쓰는 나는 뭐하고 있는 건가 싶었다. 더욱이 위탁엄마로서의 이야기를 쓰면서 방구석에서 끙끙대던 진짜 이야기는 왜 내보이지 못하는지….

나는 평범한 사람이다. 위탁엄마로 오해와 편견을 느낄 땐 포기할 마음도 먹었었다. 처음엔 가족들이 같이 돕겠다고 해서 결정했는데 시간이 지날수록 내 몫이 커졌다. ‘내가 왜 이러고 있나? 제정신인가?’ 자책한 날도 있었다. 초등학교에 방과 후 수업을 나가야 하는데, 은지 봐 줄 사람이 없는 날은 급하게 시급 만 원에 아이 돌보미를 이용하기도 했다. 나도 누군가에게 은지를 맡기고 싶었다. 내 자유를 되찾고 싶었다. 수 없이 갈등하면서 엄마가 돼갔다.

은지를 만난 2015년 3월엔 내 학업을 포기했다. 두 아이를 다 키우고 조금 여유가 생겨서 공부를 더 하고 싶었던 때다. 학비를 내고 새 학기가 오길 기다리고 있었는데 은지를 만났다. 육아와 학업을 병행할 수가 없어서 결국 내 것을 포기했다.

그 후에 지역신문사랑 인터뷰를 하는데 “학업을 포기하고…” 하면서 나도 모르게 목이 메었다. 내 것을 포기하는 게 그렇게 어려웠다. 지금도 내 시간, 내 돈, 내 에너지가 온전히 내 것이었으면 좋겠다. 아니, 더 많았으면 좋겠다.

해맑은 얼굴로 활짝 웃는 은지의 눈동자에서 나를 본다. 은지를 키우면서 이렇게 나를 볼 수 있다면, 조금씩 성장할 수 있다면, 이만한 선물도 없다고 다시 고개를 끄덕인다. [사진 손어진]

해맑은 얼굴로 활짝 웃는 은지의 눈동자에서 나를 본다. 은지를 키우면서 이렇게 나를 볼 수 있다면, 조금씩 성장할 수 있다면, 이만한 선물도 없다고 다시 고개를 끄덕인다. [사진 손어진]

그렇게 1년, 2년, 벌써 6년 차다. 내가 평범한 사람이라서 더 버거워했는지 모르겠다. 이젠 은지도 일곱 살이 됐고, 스스로 하는 게 많아져서 나에게도 조금의 자유가 생겼다. 포기했던 학업은 다시 시작했다. 지금은 온라인 수업으로 집에 있지만, 지난 학기엔 일주일에 두 번 학교에 가는 날이 제일 피곤하면서도 가장 설레는 날이었다. 은지를 봐 줄 사람이 없는 날은 데리고 가서 출석체크만 하고 온 적도 있다.

하지만 내가 아무리 노력해도 색안경을 끼고 보고, 아무리 포기해도 더 완벽한 잣대를 들이민다. 육아보다 더 힘든 게 편견이다. 나는 ‘책임과 의무’는 다해야 하고, ‘법적 권한’은 전혀 없는 위탁엄마다. 아직 갈 길이 멀다.

오늘도 “엄마!” 하고 달려와서 내 앞에 서는 은지. 해맑은 얼굴로 활짝 웃는 그 눈동자에서 나를 본다. 은지를 키우면서 이렇게 나를 볼 수 있다면, 조금씩 성장할 수 있다면, 이만한 선물도 없다고 다시 고개를 끄덕인다.

코로나19에도 햇빛은 여전히 찬란하고, 꽃은 지천으로 피었다. 떨어진 꽃을 주워 귀에 꽂은 은지가 씨익 웃었다. 꽃비가 내렸다. 노래하고 싶은 봄날이다.

“우리들 가진 것 비록 적어도/ 손에 손 맞잡고 눈물 흘리니/ 우리 나갈 길 멀고 험해도/ 깨치고 나아가 끝내 이기리라”

위탁부모·시인 theore_creator@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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