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폴인인사이트]50년 된 인천 화학공장은 어떻게 ‘힙플레이스’가 되었나

중앙일보

입력 2020.04.13 06:17

업데이트 2020.04.13 18: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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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듯한 건물을 짓고 싶었습니다. 이 지역 어린이들에게 동네의 풍경을 바꿔주고 싶었어요.  

INTERVIEW 코스모 40 심기보 , 성훈식  

잘 만들어진 공간에는 공간과 어울리는 콘텐츠가 있습니다. 코스모 40 역시 그렇습니다. 화학공장을 리노베이션한 이 공간은 거대함, 웅장함, 변화 무쌍함을 무기로 전시와 토크쇼, 디제잉 파티와 스케이트 보드 대회가 경계없이 열립니다. 검증된, 인기 있는 콘텐츠를 차용하는 것이 아닌, 이곳에서만 볼 수 있는 이곳과 닮은 콘텐츠를 기획, 운영하는 것이죠. 복합문화공간으로 인천 서구 가좌동을 변화시키고 있는 신진말 심기보 대표와 에이블커피그룹 성훈식 디렉터를 만났습니다.

코스모 40을 이끌고 있는 리더들, 왼쪽이 신진말의 심기보 대표, 오른쪽은 에이블커피그룹의 성훈식 공동대표다. [사진 코스모40]

코스모 40을 이끌고 있는 리더들, 왼쪽이 신진말의 심기보 대표, 오른쪽은 에이블커피그룹의 성훈식 공동대표다. [사진 코스모40]

공장이었던 코스모 40을 처음 만났을 때가 궁금합니다.
심기보 코스모 화학 이전이 굉장히 빨리 진행되었습니다. 몇십 년 동안 민원을 받았던 곳이라 관청에서도 빨리 처리했어요. 2016년 공장과의 필지 문제로 연락을 받고 측량하러 처음 공장 안으로 들어갔습니다. 깜짝 놀랐습니다. 직감적으로 살리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죠. 그래서 지랩의 노경록 대표에게 연락해 오라고 했습니다. 노 대표는 너무 멋지지만, 절대 이곳에서 뭘 할 생각은 하지 말라고 했죠. (웃음) 저도 마찬가지였습니다.  

하지만 빈브라더스 대표님들을 만나서 달라졌습니다. 그분들은 여러 단체나 회사 등과 협업을 많이 하는데, 특히 창작자에 관한 이야기를 많이 했었어요. 창작자를 위한 공간으로 여기가 맞을 것 같다고요. 예를 들면 엔터테인먼트 회사의 상설 매장 같은 것 말이죠. 아이디어는 좋았는데, 운영에 자신이 없었습니다. 그러다 빈브라더스에서 직접 운영해보고 싶다고 해서 시작하게 되었죠.

화학공장이었는데, 거부감은 없었나요?
성훈식 제가 응용화학부 출신인데요. 병역특례로 공장에서 3년간 근무도 했습니다. 코스모 화학이 세계 점유율 2~3위의 큰 회사이기 때문에 공장 시설도 외국회사가 설계해서 골조가 튼튼합니다. 그래서 처음 들어갔을 때 압도당했죠. 그즈음에 제가 유럽으로 여름 휴가를 다녀왔는데요, 그때 공장을 리모델링해 바뀐 여러 장소를 봤습니다. 한국엔 왜 그런 게 없을까 생각하던 찰나에 공장을 보게 되었죠. 또 코스모 화학은 황산 정제시설인데, 황산은 강해서 바로 증발해버립니다. 방치기간도 오래 됐고요.
심기보 사실 전 화학공장 이미지가 부정적이었습니다. 하지만 처음 봤을 당시에는 이미 내부 시설이 다 철거된 상태로 뼈대만 남아 있었고, 화학물질보다는 쌓여 있는 먼지가 문제였습니다. 성훈식 대표가 전공이다 보니까 이 공장 시설에서 어떤 일을 했는지 알려주면서 이미지가 바뀌었고요. 어린 시절부터 기억에 남아 있는 곳이라 그다지 신경쓰이지 않았던 것도 같기도 합니다.
이 곳을 매입해 운영하자고 먼저 제안한 것은 누구였나요?

심기보 기억엔 빈브라더스의 박성호 대표님이 하자고 했던 것 같습니다. 규모가 너무 커서 '괜찮으세요?'라고 물으니, 그럼 같이 하자고 하더라고요. 빈 브라더스가 가좌동에 들어와서 자리 잡는 모습을 보면서 좋은 콘텐츠가 지역을 바꾼다는 것에 확신이 들었고, 옆에서 빈 브라더스의 성장을 봤기에, 저도 결심할 수 있었습니다. 회사와 지역민이 함께 한다는 것에 의미도 있었고, 규모가 크니까 경제적으로도 좋고요.
공장의 분위기를 그대로 살렸습니다. 그래서 사람들이 쉽게 볼 수 없는 공간이 만들어진 것 같고요.
성훈식 2014년 합정동 맥주공장 자리에 빈브라더스를 열었는데요. 당시 빈브라더스의 콘셉트는 수산시장이었어요. 건물이 좋아서, 인테리어가 멋있어서 가는 곳이 아닌, 좋은 회를 저렴한 가격에 먹으러 가는 수산시장처럼 커피도 리필해주고 로스터리도 같이 했어요. 오로지 좋은 커피를 제공하는 것을 목표로 했죠. 그래서 공장의 바닥도 그대로 쓰고 벽 합판도 가장 싼 걸 썼어요. 경제적인 이유로 인테리어가 만들어진 거죠. 그런데 그 시기에 인더스트리얼 인테리어가 유행하기 시작하며 매장이 더 유명해졌고, 인더스트리얼 공간이라는 프레임이 씌여지는 게 재미있었죠.
인더스트리얼 인테리어가 유행하기 시작하여 매장이 더 유명해졌고, 인더스트리얼 공간이라는 프레임이 씌여지는 게 재미있었죠. [사진 코스모40]

인더스트리얼 인테리어가 유행하기 시작하여 매장이 더 유명해졌고, 인더스트리얼 공간이라는 프레임이 씌여지는 게 재미있었죠. [사진 코스모40]

이런 경험이 있어서 해볼 만하다고 생각했어요. 그런데 차원이 다르더라고요. 그래서 여기에 참여하면 좋을 작가들에게 공간을 어떻게 꾸미면 좋을지 리서치를 했습니다. 다들 가능하면 꾸미지 말고 공간을 그대로 두는 것이 좋다고 하더라고요.

또 저는 옛날 속도감으로 만들어놓은 것들이 쓰임새가 사라지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인구 절벽 시대로 넘어가면서 수요자가 절대적으로 줄어들고 있으니까 부동산 정책도 10~20년 후를 보고 기획해야한다고 생각해요.

그런 의미에서 방치되고 버려진 오랜 건물을 다시봐야 합니다. 가능하면 살릴 것은 살려야죠. 이 건물도 골조를 세우려면 돈이 많이 든다고 합니다. 그렇다면 누군가는 이걸 살려야하지 않을까요. 당시, 땅을 사면서 건물은 그냥 받았습니다. 회사 입장에서도 철거비용이 절약된 것이죠.

심기보 비슷한 이야기일 수도 있지만, 처음 공장에 들어갔을 때 굉장한 충격을 받았습니다. 매일 보던 건물인데 겉이 너무 허름하니까 저도 모르게 무시했던 것 같아요. 그런데 안을 보니 단단하고 멀쩡했습니다. 그걸 부순다는 것 자체에 동의하기 어려웠어요. 지속될 수 있는 건물인데 그걸 왜 부숴야 하는지에 대한 의문점이 생겼습니다. 공장이 50년 정도 있었는데 순식간에 철거되는 게 아쉬웠고요. 그동안 피해를 봤다고 생각했는데, 한편으로 갑자기 사라진다는 게 괘씸하기도 했습니다. 우리 동네에 이런 공장이 있었다는 흔적을 남기고 싶었습니다.

우리 동네에 이런 공장이 있었다는 흔적을 남기고 싶었습니다. [사진 코스모40]

우리 동네에 이런 공장이 있었다는 흔적을 남기고 싶었습니다. [사진 코스모40]

코스모 40 기획에 대해 설명 부탁 드려요.
성훈식 처음엔 무엇을 하겠다고 정하지 않았습니다. 리모델링하면서 어떻게 하면 이 건물을 잘 사용할 수 있을지 고민하게 되었죠. 기본적으로 문화 공간을 만들고 싶었습니다. 지금에 와서 생각해보면, 콘텐츠가 하이엔드거나 서브컬처일 필요가 없다고 생각합니다. 한쪽으로 치우치지 않는 것이 중요할 것 같아요.

플랫폼으로 기능을 하는 공간으로 다양한 장르가 넘나드는 공간을 만들고 싶습니다. 추상적일 수도 있고 뾰족하지 않다고 생각할 수 있는데, 그런 방향이 지역과도 맞습니다. 서울에서는 뾰족한 한 가지 결로 가는 프로그램이 많은데, 지역민 입장에서는 전체적인 것을 보는 게 더 좋다고 생각해요. 인천은 애초에 문화 프로그램을 공급하는 플레이어 자체가 많지 않기 때문에 다양한 것을 보여주는 게 지역의 환경과 맞는 거죠.

두 번째는 내부에서 나온 의견입니다. 빈브라더스가 백화점에서도 해보고 다양한 공간에서 운영을 해봤는데 건축 디자인에 한계가 있었습니다. 주어진 공간 자체가 정해져 있어서, 공간을 활용하는 건 후순위로 밀립니다. 코스모 40의 1, 2층이 500평이고, 1층부터 4층까지 모두 연결되어 있습니다. 공간을 나누면 관리는 편하겠지만, 그렇게 하지 않았습니다. 공간 사용자에게 권한을 맡긴 거죠.

지금은 가벼운 건축이 가능한 시대라 가벽을 치거나 커튼을 쳐서 공간을 가볍게 나눌 수 있습니다. 공간의 한계를 넘어 프로젝트를 하는 기획자, 큐레이터, 작가들이 좀 더 창의적으로 공간을 이용할 수 있게 하고 싶었죠. 그러면 또 다른 것이 보이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1~2년 정도 여러 테스트를 하고 있습니다.

‘경계 없는 영감 있는 공간’이라는 콘셉트를 기준으로, 가능하면 여기에 해당하는 프로그램을 하려고 합니다. 특정 카테고리에 얽매이지 않거나, a와 b라는 각각의 개체가 중첩되지 않는 그런 프로그램을 만들고 싶습니다.

필요에 의해서 건축적으로 어떻게 리모델링할지 생각했습니다. [사진 코스모40]

필요에 의해서 건축적으로 어떻게 리모델링할지 생각했습니다. [사진 코스모40]

어떤 콘셉트로 공간을 디자인했는지 궁금합니다.  
심기보 콘셉트보다는 공간을 이해하려고 노력했습니다. 이걸 어떻게 사용할지 정한 다음에 어떻게 고쳐야 할지 고민했어요. 그 자리에 오래 있었던 건물이라 그런지 코스모40을 종종 사람처럼 인지하게 됩니다. 1, 2층에서는 문화공간을 하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F&B를 3층에 넣었어요. 사실 접근성이 좋은 1층에 넣어야 하는데 말이죠. 하지만 그렇게 만들면 물리적인 공간의 제약이 생기기 때문에 우리의 목적과는 맞지 않았습니다. 필요에 의해서 건축적으로 어떻게 리모델링할지 생각했습니다.
성훈식 옛 것은 옛 것 그대로 남기고 새 것은 새 것답게 만드는 것입니다. 일부러 빈티지하게 만드는 건 자연스럽지 않습니다. 신관과 구관이 분명하게 대비된다는 게 콘셉트이라면 콘셉트입니다. 신관과 구관이 억지로 조화를 이루는 것이 아니라, 자연스럽게 어울리면 했습니다. 리모델링할 때, 무엇을 남기고 없앨지를 정하는 게 어려운 문제였어요. 결국, 사용하기 위해 남긴다는 기준을 정하니 과감해졌죠.

또 운영하면서 계속 바꾸고 있습니다. 공사를 몇 차례에 나눠서 진행했는데, 문을 열고 사용하면서 개선할 점을 수정했어요. 외벽과 2층 바닥 공사를 추가했죠. 무엇을 보존할 것이냐고 묻는다면, 상징이나 이야기를 보존하는 것이 힘을 가진다고 생각합니다. 굳이 꼭 건물 그 자체를 보존하는 것이 중요한 건 아닙니다. 외벽은 디자인적으로 아쉽지만 방문객들이 너무 추워서 힘들어하는 모습을 보고 공사를 시작했어요.

보통 건축이라고 하면 기획하고, 설계하고, 짓는 건데, 리모델링은 조금 다릅니다. 리모델링의 가장 큰 장점은 운영하면서 점진적으로 고쳐갈 수 있다는 점이죠. 아직도 리모델링 과정이 남아 있습니다. 프로그램에 맞춰서 바꿔야 한다면 바꾸는 게 좋은 거 같습니다. (후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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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까지 읽은 이야기는 폴인의 〈공간 프런티어 : 도시를 바꾼 기획자들〉 스토리북 중 ‘3화. 코스모40은 50년 된 공장 건물을 왜 철거하지 않았나’의 일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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