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이혼은 김희애처럼 하지 말라"…판결로 보는 '부부의 세계'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드라마 '부부의 세계'의 한 장면. 왼쪽이 지선우(김희애), 오른쪽이 이태오(박해준), 11일 방영된 6화에서 이태오는 지선우에게 복수를 다짐한다. [사진 JTBC]

드라마 '부부의 세계'의 한 장면. 왼쪽이 지선우(김희애), 오른쪽이 이태오(박해준), 11일 방영된 6화에서 이태오는 지선우에게 복수를 다짐한다. [사진 JTBC]

복수는 복수를 부른다. 12일 시청률 18.8%(닐슨코리아)를 기록한 JTBC '부부의 세계'의 1막은 그렇게 끝이 났다. 여다경(한소희 분)과 불륜 관계인 이태오(박해준)는 전 부인 지선우(김희애)에게 재산과 양육권을 빼앗긴 뒤 복수를 다짐한다.

유책주의·양육권·간통죄, 법원의 판단은

변호사들은 그래서 복수를 택했던 지선우의 극중 선택을 추천하지 않는다. 실제 이혼 소송 중의 복수는 실익이 없고, 또다른 복수를 부르는 경우가 많아서다. 드라마 '부부의 세계'에는 한국 이혼제도의 여러 쟁점들이 담겨있다. 가사전문 변호사인 양소영 변호사(법무법인 숭인)는 "이혼을 할거면 지선우처럼 맞바람은 안된다. 분노가 차올라도 차분해져야 한다"고 말했다.

지선우의 맞바람과 유책주의 

변호사들이 맞바람을 반대하는 이유는 한국의 이혼제도가 유책주의를 택하고 있기 때문이다. 한국 법원은 가정 파탄의 책임이 있는 배우자의 이혼 청구권을 인정하지 않는다. 배우 김민희와 연인 관계인 영화감독 홍상수가 청구한 이혼소송은 그래서 기각당했다. 현재 노소영 아트센터 나비 관장과 이혼 소송 중인 최태원 SK그룹회장도 노 관장과 합의없이 이혼은 쉽잖다. 두 사람이 아직 법적 부부인 이유다.

황수철 변호사(법률사무소 제이씨앤파트너스)는 "상대방이 불륜을 저질렀다고 나도 바람을 피면 둘다 유책 배우자가 된다. 쌍방 유책으로 위자료를 받지 못할 수도 있다"고 말했다. 극중에선 지선우가 맞바람을 폈지만 모든 재산과 양육권을 지키는 이혼합의서를 받아낸다. 현실은 그렇지 않을 가능성이 높다는 뜻이다.

드라마 '부부의 세계'의 불륜 커플, 이태오(박해준)와 여다경(한소희·오른쪽). [사진 JTBC]

드라마 '부부의 세계'의 불륜 커플, 이태오(박해준)와 여다경(한소희·오른쪽). [사진 JTBC]

유책주의에 반대되는 말이 유럽과 미국·일본에서 택한 파탄주의다. 이 나라들은 일단 가정이 파탄나면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민사소송과 별개로 이혼을 허가해준다. 개인의 행복추구권과 결혼 지속의 실효성을 중요하게 본다. 한국 대법원은 2015년 전원합의체 판결에서 한표 차이(7:6)로 아슬아슬하게 유책주의에 손을 들어줬다. 다른 여성과 15년간 살다 자식들에게 장기이식을 거부당한 남편에겐 이혼을 요구할 자격이 없다고 봤다.

가정법원판사 출신인 이현곤 변호사(법률사무소 새올)는 "1965년부터 시행 중인 유책주의는 경제권이 없던 여성을 보호해주던 제도다. 이젠 파탄주의로 바뀔 때도 됐다"고 말했다. 법조계에선 여성의 경제력이 상승하며 과거와 비교해 혼인 파탄의 책임이 여성에게 있는 경우가 늘어났다고 말한다. 여성의 행복추구권을 위해서라도 파탄주의가 나을 수 있다는 것이다.

이태오의 변명과 간통죄 

'부부의 세계'에서 이태오는 지선우와 다툰 뒤 "어쩔 수 없었어. 사랑이 빠진 게 죄는 아니잖아"라고 말한다. 이 말은 반은 맞고 반은 틀리다. 헌법재판소는 지난 25년간 다섯 차례의 심판 끝에 2015년 형법상 간통죄를 폐지했다. 그 전까지 법원의 간통죄 형량은 '징역 6월 집행유예 1년' 공식을 따랐다.

드라마 '부부의 세계' 이태오의 불륜 증거가 된 핸드폰의 모습 [사진 JTBC]

드라마 '부부의 세계' 이태오의 불륜 증거가 된 핸드폰의 모습 [사진 JTBC]

형법상 간통죄는 사라졌지만 법원은 간통행위를 민사상 불법행위로 본다. 피해자에게 위자료는 지급해야 한다는 것이다. '부부의 세계'에선 여다경의 아버지 여병규(이경영)가 지선우를 찾아가 "재판기록이 남는 상간녀 소송은 제발···"이라며 합의를 시도한다. 간통에 따른 민사상 손해배상 액수는 대략 1500만~2000만원 정도다. 재판 없이 합의를 시도했다면 억대의 돈이 오갔을 것이다. 손해배상을 받으려면 증거가 있어야 한다. 간통을 증명할 사진, 메신저 대화 내용, 카드지출 내역 등이다.

변호사들은 실제 이혼 소송 과정에서 '부부의 세계'처럼 지인이나 흥신소를 통해 상대방에게 불법 미행을 붙이는 경우도 많다고 말한다. 증거 때문이다. 황수철 변호사는 "친구가 도와준다는 것까지 막을 순 없겠지만 불법은 피해야 한다"고 말했다.

법원에선 역으로 간통 피해자가 불륜 상대방에게 손해배상을 해준 경우도 있었다. 2018년 서울북부법원은 남편의 연인이 다니는 회사에 '상간녀 000(이름) 축생일'이라 적은 케이크를 투명 유리창에 담아 보낸 A씨가 모욕행위를 했다며 손해배상금 100만원을 선고했다. 법원은 불륜 상대방에게도 "A씨에게 정신적 고통을 줬다"며 손해배상금 800만원을 선고했다.

드라마 '부부의 세계'에서 지선우(김희애, 오른쪽)이 아들 이준영(전진서)에게 함꼐 살자고 말하는 장면. [사진 JTBC]

드라마 '부부의 세계'에서 지선우(김희애, 오른쪽)이 아들 이준영(전진서)에게 함꼐 살자고 말하는 장면. [사진 JTBC]

양육권, 아이에게 강요하진 말라

지선우와 이태오가 아들 이준영(전진서)의 양육권을 두고 벌이는 다툼은 '부부의 세계'의 갈등 기폭제다. 여기에 재산 분쟁까지 더해지며 서로를 증오한다. 실제 이혼소송에서도 이 두 권리를 두고 부부들이 가장 치열한 다툼을 벌인다. 남편 박모씨와 이혼 소송 중인 조현아 전 대한항공 부사장도 아이들의 양육권을 두고 분쟁 중이다.

양소영 변호사는 극중 지선우가 아들을 가평의 한 댐 근처로 데리고 가서 "나와 살아야 한다"고 강요하는 장면을 문제삼았다. 양 변호사는 "아이에게 상처를 주며 강요하는 행위는 학대에 가깝고 이혼소송에서 불리하게 작용할 수 있다"고 말했다. 판사 출신인 이현곤 변호사는 "법원은 양육권을 아이의 관점에서 본다. 지선우가 의사라고 무조건 유리하지 않다"며 "그만큼 아이를 돌볼 시간이 부족한 측면도 있다"고 말했다. 양육권에서 아이의 의사도 중요하다. 하지만 법원은 부모에 의해 아이의 진술이 '오염됐을 가능성'을 배제하지 않는다.

재산 분할은 혼인 기간과 그 내용에 따라 개별적으로 판단한다. 이태오가 지선우에게 "네가 의사 수련의를 거치는 동안 아이는 내가봤다. 거기엔 내 몫도 있다"는 극중 대사는 실제 법정에서도 유효하다. 법원은 한 상대방에게만 재산을 몰아주는 판결은 지양한다. 이혼 판결은 큰 쟁점이 없어도 대략 1년은 걸린다고 봐야 한다.

드라마 '부부의 세계'의 한 장면. 1막이 지선우(왼쪽, 김희애)의 복수였다면 2막은 이태오(박해준)의 복수를 예고했다. [사진 JTBC]

드라마 '부부의 세계'의 한 장면. 1막이 지선우(왼쪽, 김희애)의 복수였다면 2막은 이태오(박해준)의 복수를 예고했다. [사진 JTBC]

아이 있다면 완전한 단절은 어렵다 

이혼 전문 변호사들은 '부부의 세계'보다 실제 사례가 더 극적인 경우도 많다고 했다. 이혼 사건 재연 방송 담당작가들이 "시청자들이 믿을리 없다"며 사건을 순화하는 경우도 있다고 했다. 그만큼 서로에게 상처가 많이 남는 것이 이혼이다. 그래서 변호사들은 가능한 서로에게 좋은 방향으로 관계를 정리하라고 조언한다. 아이가 있다면 결혼했던 부부의 관계는 완전히 단절될 수 없기 때문이다.

박태인 기자 park.taein@joongang.co.kr

ADVERTISEMENT
ADVERTISEMENT
ADVERTISEMENT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