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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사설

싱가포르도 방심했다 비상, 생활방역 논의 신중해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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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지난 10일 보건 당국이 이번 주말쯤 생활방역으로의 전환 여부를 검토하겠다고 밝혔다. 같은 날 “부활절과 총선만 잘 넘기면 ‘생활방역’으로 전환할 수 있을 것”이라는 대통령의 SNS 발언과 딱 맞아떨어진다. 하루빨리 일상으로 돌아가길 바라는 것은 온 국민의 심경이다. 그러나 생활방역은 전 세계적인 팬데믹 상황이 어느 정도 안정된 이후에만 가능하다.

거리두기 소홀했던 스웨덴 한달 사이 100배 증가 #“물리적 거리두기 멈추면 한달 뒤 확진자 4만여명”

어제 미국에서만 누적 사망자가 2만 명을 넘어섰다. 확진자는 52만 명에 달한다. 전 세계 환자 수는 일주일 새 116만 명(5일)에서 172만 명(12일)으로 여전히 가파른 증가세를 보이고 있다. 지금 한국의 일시적 소강상태는 날씨가 개고 있다는 착각을 안겨줄 수 있다. 그러나 현 상황은 언제 다시 폭풍이 몰아칠지 모르는 ‘태풍의 눈’에 있다고 하는 게 더 맞다.

방역 모범국으로 불리다 위기 상황을 맞은 싱가포르는 우리에게 반면교사다. 순간의 방심이 더 큰 위험을 불렀다. 지난달 23일 초·중·고교 개학을 강행한 싱가포르는 감염세가 확산되자 2주 만에 다시 학교 문을 닫았다. 그사이 확진자는 10배 늘었다. 현재는 마스크 미착용 시 대중교통 이용을 금지하는 등 고강도 물리적 거리두기 대책을 실시 중이다.

거리두기 대신 집단면역과 같은 느슨한 방역을 해 온 스웨덴도 최근 입장을 바꿨다. 한 달 새 감염자가 100배 이상 늘면서 단체 모임을 금지하고 재택근무를 권고했다. 급기야 스웨덴 외무장관은 “우리는 집단면역을 목표로 하는 전략을 전혀 갖고 있지 않다”(8일)며 ‘커밍아웃’하기도 했다.

이런 상황에서 대통령의 생활방역 발언은 사태 해결에 전혀 도움이 안 된다. 오히려 그동안 참아왔던 시민들의 긴장을 늦춰 2차 파동을 부르는 촉매가 될 수 있다. 가뜩이나 주말 도로는 행락객으로 넘치고, 유명 관광지는 꽃구경을 나온 상춘객들로 붐빈다. 일부 지자체는 특단의 조치로 주차장을 봉쇄하고 꽃밭까지 갈아엎는 상황에서 섣부른 안도감은 더 큰 화를 부른다.

전문가들의 연구 결과도 아직은 생활방역 단계로 나아갈 때가 아님을 보여준다. 지난 10일 발표된 국립암센터의 연구보고서에 따르면 지금의 거리두기를 멈출 경우 한 달 뒤 확진자가 최대 4만여 명에 이를 것으로 예측된다. 반대로 현 상태를 유지하면 5월 9일 기준 하루 확진자가 27명 선에서 머물 전망이다.

자가격리자만 아직 5만 명이 넘는다. 매일 수십 명씩 신규 확진자가 나온다. 더워지면 마스크를 멀리해 확산세가 되살아날 가능성도 있다. 정부는 ‘곧 종식’과 같은 ‘희망고문’의 실책을 되풀이하지 말고 신중하게 대책을 세워 국민을 설득해야 한다. 순간의 방심이 지금까지 모두의 노력을 수포로 만들 수 있다. 아직은 안도의 촛불을 켤 때가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