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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릴러냐 판타지냐, 이혼을 다루는 두 가지 방법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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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6면

공교롭다. 진부한 주제 ‘이혼’을 다룬 드라마 두 편이 동시에 출발, 동시에 인기몰이 중이다. JTBC 금토드라마 ‘부부의 세계’와 KBS2 ‘한 번 다녀왔습니다’. 각각 지난달 27, 28일 처음 방송한 두 드라마는 11일 시청률 18.8%, 26%를 기록하며 지상파·종편 등 전 채널을 통틀어 이날 방송된 모든 프로그램 중 시청률 톱2를 차지했다.

시청률 1·2위 주말드라마 대결 #김희애의 복수극 ‘부부의 세계’ #이혼 터부시하는 사회 헤집어 #오윤아의 ‘한 번 다녀왔습니다’ #이혼 쿨하게 감싸는 가족애 그려

두 드라마 모두 이혼 문제를 전면에 내세웠지만 다루는 방식은 사뭇 다르다. ‘부부의 세계’의 이혼이 복수의 수단이자 파국의 예고라면, ‘한 번 다녀왔습니다’에선 이혼이 갈등 해소와 새 출발의 실마리로 한층 가볍게 소화된다. 이를 두고 공희정 드라마평론가는 “이혼을 바라보는 우리 사회의 다양한 스펙트럼이 드라마에서도 반영된 것”이라고 짚었다. 하재근 평론가도 “‘한 번 다녀왔습니다’가 이혼을 ‘쿨’하게 받아들이는 변화의 추세를 판타지처럼 다뤘다면, ‘부부의 세계’는 이혼을 금기시하는 기존 사회 관성을 스릴러 적인 방식으로 과장되게 그렸다”고 분석했다.

#“너 이혼녀로 살 자신 있어?”

JTBC ‘부부의 세계’에서 불륜을 저지른 남편과 이혼하는 선우(김희애, 왼쪽). [사진 JTBC]

JTBC ‘부부의 세계’에서 불륜을 저지른 남편과 이혼하는 선우(김희애, 왼쪽). [사진 JTBC]

김희애의 4년 만의 안방극장 복귀작으로 신드롬급 화제가 되고 있는 ‘부부의 세계’는 이혼을 터부시하는 사회의 편견을 적나라하게 풀어놓는다. 2015, 2017년 방송된 영국 BBC 드라마(‘닥터 포스터’)가 원작이라는 사실이 믿기지 않을 만큼 전통 가부장적 가치관이 도드라진다.

남편의 불륜을 알아챈 뒤 괴로워하는 선우(김희애)에게 친구(채국희)는 “너 이혼녀로 살 자신 있냐”고 묻는다. “이혼녀로 사는 게 얼마나 치사한 일인지 너 잘 모르지. 사람들은 돌아서서 손가락질할 거야. 어디가 모자라서 이혼했나, 밤마다 남자 불러대는 거 아닌가. 우리 엄마도 그랬어”라면서다.

의사인 선우에게 진료를 받으러 왔다 남편의 외도로 성병에 걸렸다는 사실을 알게 된 지역 재력가의 부인 역시 이혼반대 입장을 명확히 했다. “저 이혼 안 해요. 속 모르는 사람들은 남편 돈 때문에 참는 거냐 그러겠지만, 함께 지나온 세월을 어떻게 돈만으로 설명할 수 있겠어요. 지금의 그 남자를 있게 한 건 나예요. 배경, 재력, 하다못해 성격까지. 이혼으로 지난 세월 동안 쏟아부은 내 정성을 허공에 날리긴 싫어요.” 부인의 확고한 소신 앞에서 “남은 시간을 용서하며 살 수 있겠냐”고 물었던 선우의 눈빛도 흔들렸다.

선우 자신도 이혼의 편견 앞에서 자유롭지 못했다. 5회 방송의 “이혼하면 또다시 동정받는 여자가 되겠죠”라며 눈물짓는 장면은 늘 당당했던 선우의 아픈 이면이었다. 여기에다 “아빠가 엄마를 배신한 거지 나까진 아니야. 이혼하지 마. 엄마가 아빠 한 번만 용서해주면 되잖아. 아빠 없이 어떻게 살아”라는 아들까지. “최고 발암 드라마인데 왠지 현실 세계 같아서 자꾸만 눈이 간다”는 시청자 반응이 이어지는 이유다.

정덕현 대중문화평론가는 “‘부부의 세계’에선 단순히 이혼 문제가 아닌 남성의 폭력 문제를 현실적·급진적으로 다루고 있다. 드라마 속 남성들은 선우의 남편뿐 아니라 옆집 남자, 병원 원장, 심지어 아들까지 제대로 된 사람이 거의 없다”고 평했다.

#“진작에 행복해질 수 있었는데…”

KBS2 ‘한 번 다녀왔습니다’에서 이혼하는 나희(이민정, 왼쪽)·규진(이상엽) 부부. [사진 KBS]

KBS2 ‘한 번 다녀왔습니다’에서 이혼하는 나희(이민정, 왼쪽)·규진(이상엽) 부부. [사진 KBS]

‘한 번 다녀왔습니다’는 4남매가 모두 이혼한 상황을 그리면서도 ‘유쾌하고 따뜻한 가족 드라마’를 표방한다. 스턴트맨인 아들 준선(오대환)은 보증을 잘못 서 집을 날리고 이혼, 큰딸 가희(오윤아)와 막내딸 다희(이초희)는 남편의 불륜으로 이혼했다. “내 희망은 너밖에 없다. 혹시라도 너까지 잘못되면 혀 깨물고 죽어버리겠다”는 엄마(차화연)의 엄포도 무색하게 둘째 딸 나희(이민정)·규진(이상엽) 부부마저 지난 4일 6회 방송에서 기어이 이혼하고 만다.

하지만 이 드라마에서 이혼은 따뜻한 가족사의 일부다. 이혼 결심 전 이들 부부에게 조언해 준 사람들도 모두 이혼의 긍정적인 면을 강조했다. 나희의 이혼한 새언니 현경(임정은)은 “이혼하고 제일 좋았던 건 더는 미워하지 않아도 된다는 것, 그게 너무 좋더라”고 했고, 규진의 이혼한 친구도 “이혼하니 좋다. 진작에 행복해질 수 있었는데 괜히 붙들고 있었나 싶기도 하다”고 대답했다.

결국 4남매 모두 ‘돌싱’으로 돌아왔지만, 앞으로 이들의 앞길엔 꽃길이 예비돼 있다. 이혼하고서도 두 딸의 부모로 책임을 다하는 준선·현경 부부는 사람 좋기만 한 준선이 현실 감각과 생활력을 얻는 즉시 재결합할 듯하고, 가희와 다희에겐 새로운 사랑이 찾아올 가능성이 커 보인다. 부모 몰래 이혼한 뒤 집이 팔릴 때까지 ‘계약 동거’ 중인 나희·규진의 관계는 이혼 전보다 더 애틋해지고 있다. 11일 방송에선 전 장모, 전 처남에게도 살뜰한 규진과 이를 바라보는 나희의 눈빛이 먹먹하게 그려지며 관계 개선의 희망을 내비쳤다.

이지영 기자 jylee@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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