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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종덕의 북극비사]인류 멸망 후 세상 준비하는 북극 섬마을

중앙일보

입력

 스발바르의 주도(州都) 롱이어비엔에 지어진 지구종자보관소의 입구. [로이터=연합뉴스]

스발바르의 주도(州都) 롱이어비엔에 지어진 지구종자보관소의 입구. [로이터=연합뉴스]

⑯ 노르웨이 스발바르   

자정에 가까운 시간이었지만 한낮처럼 내리쬐는 스발바르의 백야(白夜) 태양은 강렬했다. 강한 직사광선과 함께 눈ㆍ얼음에 반사된 햋빛은 자연스럽게 선글라스를 찾게 만든다. 북극 원주민들이 선글라스의 원형을 만들었다는 이야기는 분명 사실일 것이다.

북위 80도 부근의 망망대해 북극바다에 떠있는 노르웨이령(領) 스발바르 제도. 사람들은 북유럽과 북극점을 잇는 중간지점인 이곳을 지구의 종말, 아포칼립스를 대비하는 장소로 결정했다. 여기엔 양대(兩大) 보관소가 있다. 그 중 하나가 ‘지구종자보관소’(Global Seed Vault)다. 현대판 노아의 방주라 불리는 이 시설이 스발바르의 주도(州都) 롱이어비엔에 설치된 것은 2008년 2월이다. 현재 전세계로부터 100만종이 넘는 종자표본이 종말에 대비해 저장돼 있다. 전기공급이 끊어지더라도 영하18도의 보관온도가 0도까지 가는데 200년이 걸리도록 설계됐다.

스발바르 지구종자보관소에는 한국에서 기증한 참깨 등 1만여 종의 식물 종자도 보관돼 있다. [AFP=연합뉴스]

스발바르 지구종자보관소에는 한국에서 기증한 참깨 등 1만여 종의 식물 종자도 보관돼 있다. [AFP=연합뉴스]

식물종자와 인류기록을 보관하는 곳

또 하나는 ‘북극세계기록보관소(Arctic World Archive)’다. 지구종자보관소 인근의 버려진 탄광 갱도를 활용해 2017년부터 문을 연 세계기록보관소는 디지털화된 인류의 문화와 기록을 보관하고 있다. 중요한 정부문서는 물론 예술작품과 영상 등 인류가 만들어낸 의미있는 기록들을 최소 500년간 보관할 수 있다고 한다. 이미 42개국이 이용하고 있다.

스발바르가 이런 기능을 하게 된 것은 육지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동토층 지하공간을 활용하면 안정된 저온보관이 가능하고, 핵전쟁이나 EMP무기로부터도 안전하며, 해킹으로부터도 보호할수 있기 때문이다.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 감염증이 인간 세상을 끝장내기라도 할듯이 번져가는 요즘, 스발바르에 있는 두 보관소가 가진 의미가 새삼스럽게 다가온다. 그곳에 지구인들이 비상금처럼 모아둔 저장물들이 세상밖으로 다시 나오는 일이 없길 바란다.

북극해 스발바르 제도. 노르웨이와 북극점의 중간에 자리하고 있다. 북위 74°~81°, 동경 10°~35° 사이의 여러 섬으로 이루어져 있다.

북극해 스발바르 제도. 노르웨이와 북극점의 중간에 자리하고 있다. 북위 74°~81°, 동경 10°~35° 사이의 여러 섬으로 이루어져 있다.

한국 다산과학기지도 진출

스발바르에는 우리에게 중요한 공간이 하나 더 있다. 뉘올레순에 위치한 북극과학단지가 그곳이다. 우리나라의 다산북극과학기지를 비롯한 11개국의 북극과학연구시설이 모여있다. 북극의 기후와 환경변화를 관측하고 연구하는 곳이다. 니올레순은 공식적으로 인간이 상시거주하는 지구 최고위도 거주지이기도 하다. 2013년 5월말, 우리나라가 북극이사회의 옵서버 자격을 얻고 처음 개최되는 국제회의에 초청을 받았다. 네 번의 항공기 환승과, 마을버스 정도 크기의 프로펠러기를 타고 경사진 니올레순 공항 활주로에 착륙했다. 과학단지의 첫 풍광은 눈과 얼음만 없다면 한적하고 조용한 사막마을과 같았다. 북극곰으로부터 사람들을 지키기 위해 계속 짖어대는 견공들을 제외하면 말이다. 인류의 과거와 미래가 함께 공존하는 스발바르, 인구 3000명도 안되는 이곳이 그 무게를 감당할수 있을까.

스발바르는 16세기말 북극항로를 찾아나선 네덜란드의 탐험가 윌리엄 바렌츠에 의해 처음 발견됐다. 첫 이름은 네덜란드어로‘뾰족한 산’이라는 뜻의‘스피츠베르겐’ 이었으나, 이제는 노르웨이어로‘차가운 가장자리’라는 뜻의‘스발바르’로 불리고 있다. 예상할 수 있지만 스발바르는 그 전략적 가치로 인해 많은 역사적 부침을 겪는다. 1619년 네덜란드에 의해 첫 거주지가 건설됐고, 이어 영국ㆍ덴마크ㆍ프랑스의 고래잡이 진출이 이어졌다. 북극곰과 여우를 잡는 러시아 사냥꾼도 뒤를 따랐다. 지금 주인인 노르웨이는 그로부터 150년 후에야 첫발을 디뎠지만, 2차 세계대전이 끝나고 지금으로부터 꼭 100년 전인 1920년 2월, 스발바르조약을 통해 마침내 주권을 행사하게 된다. 하지만 그 대신 모든 조약가입국들과 차별없이 어업ㆍ사냥과 광물자원 개발을 할 수 있는 권한을 공유해야 했다. 말하자면 국제도시가 된것이다. 하지만러시아를 비롯한 많은 유럽국가들이 스발바르제도와 주변해역에서의 자국의 고유권리를 주장하고 있다. 한국도 2012년에, 북한은 2016년에 스발바르 조약에 가입했다.

한국 다산과학기지가 있는 스발바르 뉘올레순의 도로 표지판. 주변이 보호구역이라 생태계 보전을 위해 도로 바깥으로 나가는 것을 금지하고 있다. [사진 한국해양수산개발원]

한국 다산과학기지가 있는 스발바르 뉘올레순의 도로 표지판. 주변이 보호구역이라 생태계 보전을 위해 도로 바깥으로 나가는 것을 금지하고 있다. [사진 한국해양수산개발원]

북극까지 뻗은 중국몽

2013년, 중국이 한국과 같이 북극이사회의 옵서버가 된지 불과 1년후인 2014년 5월, 노르웨이를 깜짝 놀라게 한 사건이 발생했다. 스발바르제도에서 두 곳뿐인 사유지 중 하나를 중국의 황누보라는 부동산재벌이 매입하려는 의도가 드러났다. 그 토지면적은 무려 217㎢, 그 땅에 매장된 석탄은 2000만t이 넘는 것으로 밝혀졌다. 중국인 관광객을 위한 리조트를 개발한다는 것이 토지매입 목적이었다. 중국인이 공식적으로 지구 최북단 고립 지역의 땅을 소유하게 되고 대규모 개발이 이루어져 수만명의 중국관광객이 몰려온다면 인구 3000명뿐인 이 섬의 처지는 그리 어렵지 않게 상상할 수 있다. 결국 중국의 매입은 무산되었고 노르웨이 정부가 대신 매입했다. 그런데 이 중국 부동산 재벌은 2011년에도 아이슬란드의 땅을 매입해 골프장 건설을 추진한 적이 있었고, 노르웨이의 북극도시 트롬소의 땅을 실제 구입하기도 했다.

다산북극과학기지 앞에는 노르웨이의 대탐험가 로알드 아문센의 동상이 있다. 1911년 남극점을 가장 먼저 정복했던 그는, 1926년 극지비행선 노르게(Norge)를 타고 스발바르를 출발해 북극점을 지나 72시간만에 알래스카에 도착했다. 비행선을 타고 북극점을 처음 정복하는 기록이었다. 비행선을 설계하고 같이 탐험을 했던 이탈리아인 움베르토 노빌레와 누가 탐험을 주도했는지에 대한 논란이 생기면서 사이가 멀어지기도 했지만, 2년뒤 노빌레가 2차 비행선 탐험 도중 실종되자 의리의 남자 아문센은 지체없이 옛 친구의 구조에 나섰다. 그것이 아문센의 마지막 전설이 됐다. 1928년의 일이다. 아이러니하게도 사고를 당한 노빌레는 48일만에 러시아 쇄빙선에 의해 구조되었고, 사고가 난지 50년이 지난 1978년에야 친구 아문센의 곁으로 떠났다.

과학단지내 공용식당에서 강제로 먹어야 했던 생애 첫 순록고기 스테이크는 입맛에 맞지 않아 높은 점수를 줄수 없었지만, 없을지도 모를 먼 미래를 준비하고, 지구촌 공존의 지혜를 시험하고 있으며, 아문센이 가졌던 인류애가 숨 쉬는 스발바르는 언젠가 꼭 다시 한번 가보고 싶은 곳으로 남아있다.

스발바르 순록 스테이크 요리. 거리에 야생 순록이 사람들을 겁내지 않고 그냥 돌아다닌다. [사진 한국해양수산개발원]

스발바르 순록 스테이크 요리. 거리에 야생 순록이 사람들을 겁내지 않고 그냥 돌아다닌다. [사진 한국해양수산개발원]

⑰회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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