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韓 좀비영화팬 프랑스 대사, "한국 의료진에 찬사"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외로운 봄입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으로 주한 외국대사관들도 외부 접촉에 신중을 기하고 있기에 한 달 휴관했던 ‘시크릿 대사관’이 돌아왔습니다. 컴백 첫 타자는 문화의 나라 프랑스. 여러분의 모니터로, 프랑스 대사관이 찾아갑니다.

서울 시청 근처 서소문. 빌딩 숲속을 지나다 보면 빼꼼히 한옥 스타일 대문이 보입니다. 대문 옆엔 프랑스 국기가 걸려있네요. 감이 오시죠? 네, 주한 프랑스 대사관입니다. 입구만 보면 비교적 작아 보이지만 일단 육중한 철문이 열리고 야트막한 언덕을 올라가다 보면 규모가 꽤 큰 유서 깊은 건물이 등장합니다.

문화의 나라 프랑스인만큼 대사관 곳곳엔 한국과 프랑스의 문화가 숨 쉬고 있습니다. 건물 자체가 한국과 프랑스의 콜라보입니다. 프랑스가 낳은 세계적 건축가 르 코르뷔지에(1887~1965)의 첫 한국인 제자인 김중업(1922~1988)의 작품이거든요. 일단, 문을 열고 들어가시죠. 중앙일보가 찾아간 날은 지난달 20일이었습니다.

필립 르포르 대사가 반겨주네요. 르포르 대사는 지난 9월 부임했습니다. 미국ㆍ러시아ㆍ일본 등 주요국 근무 경험이 풍부한 정통 외교관입니다. 1차 북핵 위기 발생 당시엔 한반도 관련 업무를 하면서 한국에 대한 관심을 키웠다고 합니다.

한국어 공부도 열심이라고 합니다. 인터뷰를 시작하려는 순간, 한국어로 “어떤 음료수를 드시겠어요?”라고 물어보는 센스도 갖췄네요. 대사관의 ‘스타’인 프랑스 페르시아 고양이 뉴턴을 안고서는 “우리 고양이는 한국을 매우 좋아합니다”라고도 인사합니다.

필립 르포르 주한 프랑스 대사와 반려묘 뉴턴. 르포르 대사는 "우리 대사관의 말썽쟁이"라고 애정이 듬뿍 담긴 시선을 뉴턴에게 보냈다. 뒤로 서예 작품 '자유'가 보인다. 자유ㆍ평등ㆍ박애로 대표되는 프랑스와 한국 서예의 만남이다.  김상선 기자

필립 르포르 주한 프랑스 대사와 반려묘 뉴턴. 르포르 대사는 "우리 대사관의 말썽쟁이"라고 애정이 듬뿍 담긴 시선을 뉴턴에게 보냈다. 뒤로 서예 작품 '자유'가 보인다. 자유ㆍ평등ㆍ박애로 대표되는 프랑스와 한국 서예의 만남이다. 김상선 기자

대구에 코로나 극복 응원 보낸 프랑스 대사

신종 코로나로 한국, 특히 대구와 경북 지역이 한창 고통받고 있던 지난 1월 말, 르포르 대사는 대구에 개인적인 응원 메시지도 보냈다고 합니다. 중앙일보 독자에게도 응원의 메시지를 따로 보냈습니다(영상 참조).

그의 조국 프랑스도 지금 신종 코로나로 신음하고 있지요. 대사관 곳곳에도 손 세정제가 놓여있고, 대사관 출입도 체온 체크 후 가능했습니다. 먼저, 신종 코로나에 대한 생각부터 물었습니다.

프랑스 역시 신종 코로나 피해가 심각한데.  
“굉장히 어려운 상황이다. 모든 조치를 다 동원하고 있다. 극단적 상황을 피할 수 있었던 한국은 전 세계적 본보기가 될만하다. 무엇보다 한국의 의료진과 방역 당국의 노고에 찬사를 보낸다. 프랑스의 파스퇴르 연구소 같은 기관도 감염병 백신 개발의 최첨단인 만큼, 한국과 협력할 여지가 크다고 본다.”  
대구에 응원 메시지를 보냈다고 하던데.  
“개인적인 위로의 편지를 보냈던 적이 있다.”  
프랑스를 위해서도 기도하겠다.  
“감사하다. (에마뉘엘) 마크롱 대통령께서 문재인 대통령과 통화도 하셨듯, 전 세계 각국의 연대와 협력이 절실한 때다.”  
필립 르포르 주한 프랑스 대사는 "한국의 의료진에 찬사를 보낸다"고 강조했다. 김상선 기자

필립 르포르 주한 프랑스 대사는 "한국의 의료진에 찬사를 보낸다"고 강조했다. 김상선 기자

대사 개인적으로 신종 코로나를 이겨내는 방법이 있다면.  
“문화에서 답을 찾을 수 있지 않을까. 알베르 카뮈의 『페스트』와 같은 고전뿐 아니라 죠반니 보카치오의 『데카메론』, 에드가 앨런 포의 『적사병의 가면극』과 알레산드로 만조니의 『약혼자들』등 펜데믹을 다룬 문학 작품에서 교훈을 얻을 수 있다. 고전 문학뿐 아니다. 한국 연상호 감독의 영화 ‘부산행’의 팬인데, 프리퀄인 ‘서울역’ 역시 인상 깊게 보았다. 좀비나 펜데믹 등에 대처하는 인류의 모습이 잘 그려져 있다.”  
한국 문화에도 관심이 깊다고 들었다.  
“한국은 지금 문화적으로 흥미진진한 황금기를 맞이했다고 본다. 영화 ‘기생충’도 인상 깊었다. (프랑스) 칸영화제에서 (대상인) 황금종려상을 받은 뒤 (미국) 아카데미 영화제에서 4관왕을 했다는 점에서도 그렇고, 프랑스인들은 ‘기생충’을 자국 영화처럼 소중히 여긴다. 다양한 한국의 문화 창작품이 프랑스에서 인정받고, 인기를 누리고 있다. 개인적으론 한국 문학 작품이 좀 더 많이 번역되면 좋겠다. 이인화 작가의 『영원한 제국』도 영어본을 구해 읽으면서 움베르토 에코의 『장미의 이름』에 비견할만한 훌륭한 작품이라고 생각했다. 한국엔 정치적 분단뿐 아니라 사회의 분열 상황 등 다양한 주제가 많이 있다. 한국만의 특수성에 전 세계적으로도 통하는 보편성을 갖춘 게 한국 문화의 힘이다.”  
지난해 프랑스 칸 영화제에서 대상인 황금종려상을 수상한 봉준호 감독  [EPA=연합뉴스]

지난해 프랑스 칸 영화제에서 대상인 황금종려상을 수상한 봉준호 감독 [EPA=연합뉴스]

한국의 영혼+프랑스의 정신=주한 프랑스대사관  

르포르 대사는 인터뷰 후 “곳곳에 자랑하고 싶은 게 너무 많다”며 대사관 곳곳을 보여줬습니다. 우선 손님 접대에 안성맞춤이라는 ‘노란 방.’ 이름 때문에 ‘황실(黃室)’이라고도 불린다네요. 한켠에 걸려있는 조선 시대 한 관리의 사진이 눈에 들어옵니다. 조선 고종 황제의 문신(文臣) 민영환(1861~1905)입니다. 프랑스 대사관은 원래 정동 자리에서 이곳으로 옮겨왔는데, 이곳은 민영환의 집터였다고 합니다. 민영환은 조선이 을사늑약으로 외교권을 잃자 이에 항거하는 뜻으로 자결했습니다.

주한 프랑스 대사관의 '노란 방'에 걸린 민영환(맨 오른쪽)의 사진과 한복 액자들.      김상선 기자

주한 프랑스 대사관의 '노란 방'에 걸린 민영환(맨 오른쪽)의 사진과 한복 액자들. 김상선 기자

르포르 대사는 “일제 강점기가 시작되면서 조선과 어쩔 수 없이 외교관계를 끊어야 했던 프랑스는 서소문으로 대사관을 옮기면서 정동의 기존 대사관 터를 고종에게 넘겼다고 전해진다”며 “상세한 사정은 남아있지 않지만, 고종이 일본에 항거하기 위해 재정적 준비를 할 수 있도록 돕기 위해서가 아니었을까 생각한다”고 말했습니다.

민영환의 사진과 함께 이 ‘노란 방’엔 조선의 혼을 담은 한약 약장(藥藏)이 있습니다. 르포르 대사 부부의 ‘최애’ 아이템으로, 한국 고가구에 매력을 느끼게 됐다고 합니다. 한자 ‘춘하추동’을 예술적으로 표현한 작품이며, 한복을 입은 여성의 모습 등이 전시돼있습니다.

필립 르포르 (Philippe LEFORT) 주한 프랑스 대사가 20일 서울 충정로 프랑스 대사관저에서 중앙일보와 인터뷰를 갖은 뒤 접견실에 놓인 한약방의 약제함을 소개하고 있다. 김상선 기자

필립 르포르 (Philippe LEFORT) 주한 프랑스 대사가 20일 서울 충정로 프랑스 대사관저에서 중앙일보와 인터뷰를 갖은 뒤 접견실에 놓인 한약방의 약제함을 소개하고 있다. 김상선 기자

이 방 바로 옆엔 비밀스러워 보이는 문이 하나 있는데, 대사 가족의 사적인 공간인 사저로 통하는 방이라네요. 대사가 살짝 문을 열자 고양이 뉴턴이 냐옹하며 나옵니다. 대사님이 “우리 대사관의 말썽꾸러기 에요”라며 익살맞게 소개를 하네요.

거실 공간엔 프랑스에서도 활동했던 한국 화가 이응노(1904~1989) 선생의 작품을 모티브로 한 거대한 태피스트리가 벽면을 장식하고 있습니다. 프랑스의 보배(Beauvais)라는 지역 특산품인 태피스트리로, 한국과 프랑스의 예술 콜라보인 셈이네요.

필립 르포르 (Philippe LEFORT) 주한 프랑스 대사가 20일 서울 충정로 프랑스 대사관저에서 중앙일보와 인터뷰를 갖은 뒤 접견실을 소개하고 있다. 피아노 뒤로 이응노 화백의 작품이 보인다. 김상선 기자

필립 르포르 (Philippe LEFORT) 주한 프랑스 대사가 20일 서울 충정로 프랑스 대사관저에서 중앙일보와 인터뷰를 갖은 뒤 접견실을 소개하고 있다. 피아노 뒤로 이응노 화백의 작품이 보인다. 김상선 기자

거실을 지나면 다이닝룸이 나오는데, 이곳 역시 르포르 대사의 자랑거리입니다. 천장엔 조선시대 김정호 선생의 대동여지도가 새겨져 있지요. 르포르 대사는 “한국의 혼이 프랑스의 테이블을 내려다보는 셈”이라며 “한국인도 프랑스인도 모두 먹는 것을 굉장히 좋아하는 만큼, 중요한 공간”이라고 강조했습니다.

필립 르포르 주한 프랑스 대사가 20일 서울 충정로 프랑스 대사관저의 다이닝룸을 소개하고 있다. 식사할 수 있는 공간 천장에 김정호의 대동여지도 문양이 들어간 대형 유리가 설치돼 있다. 대사는 대동여지도에 대한 찬사를 아끼지 않았다. 김상선 기자

필립 르포르 주한 프랑스 대사가 20일 서울 충정로 프랑스 대사관저의 다이닝룸을 소개하고 있다. 식사할 수 있는 공간 천장에 김정호의 대동여지도 문양이 들어간 대형 유리가 설치돼 있다. 대사는 대동여지도에 대한 찬사를 아끼지 않았다. 김상선 기자

대사관의 건축을 맡은 김중업 선생은 한국적인 설계를 강조했다고 합니다. 대사관의 건물이 한국의 처마와 같은 곡선으로 마무리된 것이 대표적이죠. 르포르 대사는 “르 코르뷔지에 스타일의 개방감이나 콘크리트 사용법을 쓰면서도, 한국의 처마 문양을 살리고 풍수지리를 활용하는 등, 한국과 프랑스의 모든 장점을 담아낸 곳이 대사관저”라고 말했습니다. 한 가지, 조금 좁다는 것이 고민이었는데요, 기존의 관저는 그대로 두고 뒤에 신축을 하는 방식으로 계획을 세웠다고 하네요.

필립 르포르 프랑스 대사는 대사관을 두고 "르 코르뷔지에 특유의 콘크리트 사용법을 그의 제자인 김중업 선생이 한국의 혼을 담아 표현했다"고 설명했다. 김상선 기자

필립 르포르 프랑스 대사는 대사관을 두고 "르 코르뷔지에 특유의 콘크리트 사용법을 그의 제자인 김중업 선생이 한국의 혼을 담아 표현했다"고 설명했다. 김상선 기자

르포르 대사는 “신종 코로나 사태가 마무리되면 중앙일보 독자님들과 같은 분들을 초대하고 싶다”고 말했습니다. 대구에 응원 메시지를 보냈던 르포르 대사. 이번엔 우리가 프랑스에 응원 메시지를 보내보면 어떨까요? 댓글 또는 e메일로 보내주시면 대사관에 전달하겠습니다. 물론 아름다운 우리말도 환영합니다. 선정되신 분은 추후 진행할 이벤트에 우선 초청하겠습니다.

시크릿 대사관의 독자 여러분이 외교관입니다.

전수진 기자 chun.sujin@joongang.co.kr

사진=김상선 기자

영상=강대석ㆍ여운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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