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에디터 프리즘] 정치도 리셋 버튼 누를 때가 됐다

중앙선데이

입력

지면보기

681호 31면

박신홍 정치에디터

박신홍 정치에디터

말 그대로 코로나 총선이다. 정권·야당 심판론과 경제 실정론도 코로나19에 밀려 설 땅이 마땅찮다. 대면 접촉이 제한된 현실에 공중전도 한계가 뚜렷하다. 말실수나 폭로전으로 막판 판세가 한 번쯤 요동칠 순 있겠지만 흐름을 바꾸긴 쉽지 않아 보인다. 남은 변수는 어느 쪽 지지자들이 더 많이 투표소로 향하느냐다. 여전히 수천 표 차이 격전지가 적잖아 결국 지지층 투표율에 따라 최종 승패가 갈릴 전망이다. 범여·범야권의 정당 투표가 어떤 비율로 나뉠지도 관전 포인트다.

코로나19로 완전히 달라진 세상 #슬기로운 투표로 정치도 바꿔야

또 하나의 관심사는 ‘총선 그 후’다. 무엇보다 코로나19로 세상이 바뀌고 있다. 가히 ‘올 리셋(All Reset)’ 수준이다. 강도 높은 사회적 거리두기가 지속되면서 대한민국이 일제히 멈춰섰고, 그러면서 사회 모든 분야가 좋든 싫든 전혀 다른 삶의 양태와 마주하게 됐다. 코로나19의 공습이 또 다른 BC(Before Corona)와 AD(After Disease)의 시대를 부른 셈이다. 2020년이 새로운 AD 1년이 될 것이란 예측이 설득력을 얻는 이유다.

하지만 정치권은 어떤가. 출세에 대한 욕구, 대접받고자 하는 인정 욕망, 갑이 되어 떵떵거리고 싶은 욕심, 거기에 권력을 이용해 부를 축적하려는 사욕까지. 국리민복을 위해 출마했다던 후보들이 정작 의원 배지를 단 뒤 표변하는 모습을 어디 한두 번 봐왔나. 이번 총선에서도 비례 위성정당 창당, 어김없이 반복된 사천 논란, 갑툭튀·막말 후보 공천 등 여야 모두의 치부·단견·이기심이 적나라하게 드러나지 않았나. 이런 현실 속에서 과연 21대 국회가 이전과는 다른, 새롭게 리셋된 모습을 보여줄 수 있겠나.

바이러스 못지않게 무서운 게 바이어스(bias)다. 둘 다 인간이 숙주고 전염성도 엄청 강하다. 문제는 바이어스엔 마땅한 백신이 없다는 점이다. 인간의 강고한 확증편향에 기생하고 있기 때문이다. 게다가 주된 확산자가 정치인과 그 관계자들이다. 그들의 맹목적 자기 확신에서 비롯된 선동적 가짜뉴스는 한국 정치를 망가뜨리는 주범이다. 오죽하면 이번 총선은 지역구 후보에 한 표, 비례 정당에 한 표, 그럼에도 정치는 바뀌지 않을 거라는 데 한 표 등 1인 3표제라는 냉소가 여의도 주변에 퍼져 있겠는가.

백신이 없으면 해법은 리셋하고 새로 포맷하는 것뿐이다. 다행인 건 이번에 한국 유권자들이 세계 최고 수준으로 판명 났다는 점이다. 그들은 사재기도 안 하고 강제적 봉쇄 없이도 자발적 자가격리를 통해 코로나19에 맞서 싸운 평범한 시민들이었다. 겨우내 자녀들 삼시세끼 집밥 챙겨주다 ‘확찐자’가 될지라도, 비대면 생활이 길어지면서 몸 또한 비대해질지라도, 함께 살아가는 이웃에 누가 되진 말자는 마음 하나로 슬기로운 집콕 생활을 몸소 실천하며 기꺼이 희생하고 헌신한 평범한 시민들이었다.

정치권과 유권자의 간극이 이렇게 커서야 사회가 유지될 수 없다. 시민은 이미 한 단계 올라섰으니 정치가 변하는 길밖에 없다. 마침 나흘 뒤면 총선. 사전투표는 오늘도 가능하다. 칼럼니스트 프랭클린 아담스 말대로 선거는 누구를 뽑기 위해서가 아니라 누구를 뽑지 않기 위해 투표하는 행위다. 최선이 아닌 차악을 뽑으며 한 발짝씩 나아가는 게 민주주의 선거다. 그렇게 한 표 한 표 모이면 세상을 바꿀 수 있다.

이젠 그들만의 리그에 종지부를 찍을 때다. 또다시 4년 더 후회하지 않기 위해, 내 머리 위로 떨어지는 칼날을 붙잡는 절실함으로 투표에 임할 때다. 정치적 냉소주의는 잠시 접어두고 ‘슬기로운 투표 생활’을 위해 이렇게 함께 다짐할 때다. 가자, 투표장으로. 한국 정치의 리셋 버튼을 내 손으로 누르기 위해.

박신홍 정치에디터

ADVERTISEMENT
ADVERTISEMENT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