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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씨가 곧 그림…서예, 현대미술이 되다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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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81호 19면

국립현대미술관 최초의 서예전 가보니 

‘글씨와 그림은 한뿌리다(書畵同源)’. 원나라 문인화가 조맹부의 이 말은 국립현대미술관(MMCA)이 개관 51년 만에 처음으로 서예 전시를 개최한 이유이기도 하다. 현대미술의 시각에서 조형미가 뛰어나고 확장성을 갖춘 글씨 작품에 초점을 맞췄다. “중국의 서법(書法), 일본의 서도(書道)와 다른 한국의 서예(書藝)를, 300여 작품을 통해 재해석했다”는 것이 윤범모 관장의 설명이다.

1·2세대 서예가들 대표작 한눈에 #“서법, 서도 아닌 서예의 재해석” #현대미술적 조형미, 확장성에 초점 #유튜브 공개 열흘 만에 3만건 돌파

MMCA 덕수궁관의 이 야심찬 올해 첫 전시 ‘미술관에 書: 한국 근현대 서예전’은 하지만 중국 역병의 창궐로 전시장이 폐쇄되면서 유튜브 동영상을 통해 먼저 관람객을 만나야 했다. 지난달 30일 오후 공개된 1시간 23분 28초짜리 투어 프로그램은 열흘 만에 조회 수 3만건을 돌파하며 화제의 중심에 섰다. 전시장의 실제 모습은 어떨까. 출입 기자들에게만 살짝 공개된 전시장은 일필휘지의 기운이 생동하는 예술혼의 각축장이었다.

① 당대 최고의 전각가로 꼽히는 철농 이기우가 대나무에 새긴 ‘장생’. ② 소전 손재형이 1956년 쓴 ‘충무공 벽파진 전첩비’의 탁본(부분). ③ 일중 김충현이 6종의 국한문체로 쓴 ‘정읍사’(1962). ④ 강병인이 종이에 먹으로 그린 ‘힘센 꽃’. [사진 국립현대미술관]

① 당대 최고의 전각가로 꼽히는 철농 이기우가 대나무에 새긴 ‘장생’. ② 소전 손재형이 1956년 쓴 ‘충무공 벽파진 전첩비’의 탁본(부분). ③ 일중 김충현이 6종의 국한문체로 쓴 ‘정읍사’(1962). ④ 강병인이 종이에 먹으로 그린 ‘힘센 꽃’. [사진 국립현대미술관]

“서예가 또 다른 형태의 미술임을 보여드리고 싶었어요. 시(詩)·서(書)·화(畵)가 하나였던 문인화가 현대미술과 어떤 관계를 맺고 있는지, 또 글씨가 그림으로, 조각으로, 전각으로, 도자로 어떻게 확장됐는지, 무엇보다 서예가 고루한 예술이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되실 겁니다.”  전시를 기획한 배원정 학예연구사가 1층 첫 전시실로 안내했다. 글과 그림이 어떻게 어울리고 글씨가 어떻게 예술이 됐는지를 압축해서 보여주는 ‘프롤로그’ 공간이다. 근원 김용준이 수화 김환기 집에 놀러 왔다가 그려준 수화의 모습과 예서체 글씨, 도둑 쥐들을 향한 분노로 서슬 퍼런 고양이를 그린 월전 장우성의 그림과 시구가 우선 시선을 끈다. 『주역』 64괘 문자의 획을 각기 다른 몸짓을 하고 있는 인간의 형상으로 표현한 고암 이응노의 작품은 간만에 서울 나들이에 나선 귀한 몸이다. 조각가로 알려졌지만 사실 대단한 서예가였던 우성 김종영이 만든 고졸한 나무 조각 역시 단단한 아우라를 뿜어내고 있다.

① 서예가 청남 오제봉의 아들인 서양화가 오수환은 필획의 찰라적 속성을 자신의 그림에 반영했다. 2008년작 ‘Variation’. ② 먹과 마스킹테이프로 한글을 구현한 이상현의 캘리그라피 ‘해주아리랑’(2012). ③ 하석 박원규가 서주시대 청동 제기에 새겨진 글자 ‘공정(公正)’을 재해석한 2020년작. [사진 국립현대미술관]

① 서예가 청남 오제봉의 아들인 서양화가 오수환은 필획의 찰라적 속성을 자신의 그림에 반영했다. 2008년작 ‘Variation’. ② 먹과 마스킹테이프로 한글을 구현한 이상현의 캘리그라피 ‘해주아리랑’(2012). ③ 하석 박원규가 서주시대 청동 제기에 새겨진 글자 ‘공정(公正)’을 재해석한 2020년작. [사진 국립현대미술관]

2층 두 번째 전시장의 부제는 ‘글씨가 그 사람이다’다. 배 학예사가 골라낸 ‘국전 1세대’ 대표작가 12명은 서로 흥미롭게 연결돼 있었다. 해방 이후 ‘서도’ 대신  ‘서예’라는 명칭을 정착시키고 자신만의 한글 서체를 개발한 소전 손재형은 일본인 소장가를 찾아가 추사 김정희의 ‘세한도’를 되돌려 받아온 인물이다. 명량해전을 기리는 노산 이은상의 글을 소전의 글씨로 새긴 ‘충무공 벽파진 전첩비’(1956) 속 조형미는 지금 보아도 놀랍다. 그런 소전의 글을 두고 “글씨가 아니다”라고 비판한 사람이 여초 김응현이다. 법첩에 근거하지 않은 글씨는 서예로 받아들이지 않았던 그는 광개토태왕 비문의 글씨를 토대로 자신만의 서체를 완성했다. 실제 비문의 탁본을 임서한 5m 가까운 높이의 4폭 지면(2003)은 관람객을 압도한다.

전각으로 일본에서 더 유명한 석봉 고봉주의 인장들. [사진 국립현대미술관]

전각으로 일본에서 더 유명한 석봉 고봉주의 인장들. [사진 국립현대미술관]

여초의 형은 소전과 함께 제1회 국전을 기획한 일중 김충현이다. 6종의 서체로 쓴 대표작 ‘정읍사’(1962)를 직접 볼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이번 전시의 가치가 있다. 일중이 국한문 혼용서체에 집중했다면, 일생을 한글 궁체에만 매진한 여성 서예가가 갈물 이철경이다. 또한 소전의 제자로 국전 사상 처음 서예로 대통령상을 받았지만 소전의 아류라는 비난에 고민하다 마침내 자신만의 서체를 만들어낸 평보 서희환의 청출어람, 58세에 오른손이 마비돼 글을 못쓰게 되자 왼손 필법을 고안해 다시 경지에 오른 검여 유희강의 인간승리 이야기도 놓칠 수 없다.

해강 김규진이 금강산 구룡폭포 절벽에 새겨진 ‘미륵불(彌勒佛)’을 쓸 때 사용한 대필과 관련 자료들. [사진 국립현대미술관]

해강 김규진이 금강산 구룡폭포 절벽에 새겨진 ‘미륵불(彌勒佛)’을 쓸 때 사용한 대필과 관련 자료들. [사진 국립현대미술관]

두 번째 전시장은 한복판이 아주 독특하게 꾸며져 있다. 바닥에 반짝이는 검정 타일을 깔고 어두운 가운데 조명으로 분위기를 내 관람객에게 벼루 속 먹물 한 방울이 된 느낌을 선사한다. MMCA에서 10년째 전시 공간 기획으로 각종 디자인 어워드를 휩쓴 김용주 디자이너의 세련된 손길이다.

세 번째 전시장은 ‘전통의 계승과 재해석’ ‘서예의 창신과 파격’ ‘한글서예의 예술화’라는 세 가지 기준에 따라 전문가 15인이 선정한 ‘2세대 서예가’들의 작품을 모아놓았다. 초정 권창륜이 큼직한 필획의 행초서로 풀어낸 『명심보감』 속 글귀, 하석 박원규가 서주시대 청동 제기에 새겨진 글자를 재해석한 작품이 눈길을 붙든다.

마지막 공간은 디자인의 가능성을 통해 서예의 변신을 탐색하는 자리다. 한글 자모에 특유의 움직임을 부여한 강병인, 먹과 마스킹테이프로 글씨를 만들거나 파뿌리에 먹을 묻혀 글씨를 쓰는 이상현 등의 작품을 볼 수 있다.

저명 서예가들이 제호를 쓴 잡지, 다양한 붓과 벼루와 연적, 한글 서체로 완성한 TV 드라마 제목 등 쉬어가는 코너의 알찬 수준도 전시의 완성도를 높였다. 코로나19 사태가 하루빨리 종식되길 기원해야 하는 이유가 하나 더 생겼다.

정형모 전문기자/중앙컬처앤라이프스타일랩 hyu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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