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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박재현 논설위원이 간다

“총선 결과에 따라 재판 내용도 달라질 수 있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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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3면

박재현
박재현 기자 중앙일보 논설위원

21대 총선과 정치적 재판의 향배

4·15 총선 결과는 사법행정권 남용 등 각종 정치적 사건에 큰 영향을 줄 것으로 전망된다. 사진은 김명수 대법원장, 양승태 전 대법원장, 임종헌 전 법원행정처 차장.(왼쪽부터) [뉴시스·뉴스1]

4·15 총선 결과는 사법행정권 남용 등 각종 정치적 사건에 큰 영향을 줄 것으로 전망된다. 사진은 김명수 대법원장, 양승태 전 대법원장, 임종헌 전 법원행정처 차장.(왼쪽부터) [뉴시스·뉴스1]

4·15 총선은 사법부에게도 중간 심판의 성격을 띨 수밖에 없다. 이 정부 출범 넉 달 뒤인 2017년 9월 취임한 김명수 대법원장 체제에 대한 평가로 규정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김 대법원장은 문재인 정부 사법개혁의 구심점 역할을 자임하며 구체제 주류 법관들에 대한 좌천성 인사를 했다는 법조계의 평가를 받아왔다. 대신 우리법연구회 등 진보 성향의 판사들을 핵심 보직에 앉히는 속칭 물갈이 인사를 진행 중이다. 지난 2월 인사에서 고법 부장급 판사들을 비롯해 50명 이상의 판사들이 집단적으로 사표를 내면서 법원이 정치판으로 변질됐다는 주장이 나오는 것도 이 때문이다.

현 정권 연루 사건 속도 조절할 듯 #피고인 신분의 출마자 처리도 주목 #울산사건은 법원과 검찰 모두 영향 #사법의 정치화는 경계해야 할 대상

사법부 평가의 연결 고리는 양승태 전 대법원장 체제를 사법농단 세력으로 규정했던 판사 출신의 이수진(서울 동작을), 이탄희(경기도 용인정), 최기상(서울 금천) 후보자들에게 이어진다. 이수진 전 판사의 경우 양승태 체제에 순응했다는 지적도 일부에선 나오고 있지만 본인은 부인하고 있다.

이들의 국회 입성 여부는 정치적으로 친정부 성향의 법관들에겐 초미의 관심사가 되고 있다. 그만큼 사법부의 이념적 대결 양상이 심해지고 있다는 방증이기도 하다. 특히 총선 결과는 법원이 진행하고 있는 각종 정치적 사건 재판에도 상당한 영향을 미칠 것으로 관측된다.

조국(左), 김경수(右)

조국(左), 김경수(右)

① “조국 재판은 여전히 준비 중”

먼저 조국 전 법무부 장관 부부에 대한 재판이다. 조 전 장관의 경우 지난해 12월 31일 업무방해 등 혐의로 불구속기소 됐지만 총선에 미칠 영향 등을 고려한 법원의 결정으로 사실상 재판이 지연되고 있는 상태다. 석 달 가까이 공판 준비기일이란 명분으로 정식 재판은 열리지 않고 있다. 법원 관계자는 “코로나 집단 감염 때문에 모든 재판 일정이 연기된 것도 한 요인”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검찰 측은 “조 전 장관의 사건을 담당하는 재판부의 정치적 성향을 고려하면 총선 결과에 따라 정치적 판결을 할 우려도 배제할 수 없다”고 주장하고 있다. 벌써부터 신경전이 벌어지고 있는 셈이다.

검찰은 조 전 장관 부부의 혐의 사실 중 일부가 곳곳에서 겹치고 있는 상황에서도 법원이 사건을 합치지 않고 별도로 재판하기로 한 배경에도 정치적 판단이 작용한 것으로 의심하고 있다. 정경심 전 교수가 재판 지연 작전을 통해 구속 기간이 만료된 뒤 석방 상태에서 판결을 받으려는 속셈이라는 주장이 나오는 이유이기도 하다.

여기다 조씨 부부 딸의 인턴 근무 경력 자료를 허위로 만든 혐의로 기소된 최강욱 전 청와대 공직비서관에 대한 재판도 그의 국회 입성 여부에 따라 흔들릴 공산이 크다. ‘지체된 정의’의 부작용을 지적하는 목소리는 반개혁이란 프레임에 갇히고 있다.

② “유죄 같아서 판결 못해?”

드루킹 사건으로 1심에서 징역 2년의 실형을 선고받고 법정구속 됐다가 풀려난 김경수 경남도지사에 대한 재판도 늘어질 가능성이 점점 커지고 있다. 지난해 1월 30일 1심 선고 이후 1년 이상 항소심 재판부가 결과를 내놓지 못하는 배경에는 유죄 판결에 따른 정치적 논란을 의식한 측면이 다분하다. 당초 항소심 재판부 재판장은 선고를 연기하면서도 유죄 심증의 취지로 발언했다. 이는 재판장이 자신의 소신대로 재판을 진행하지 못했다는 점을 역설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김 대법원장 체제에 비판적인 서울고법의 한 판사는 “또 다른 사법농단의 한 사례에 불과하다”며 “이 정부가 들어서면서 여론이라는 이유로 재판에 가해지는 압력이 커지고 있다”고 말했다. 텔레그램 n번방 사건 재판을 맡았던 판사가 교체된 것도 같은 맥락으로 볼 수 있다.

정작 드루킹 사건의 핵심 인물은 대법원 선고까지 끝났지만 김 지사에 대한 재판은 재판부 교체로 더 연기될 공산이 커 보인다. 더욱이 대법원은 드루킹 김동원씨에게 징역 3년을 선고하면서도 두 사람의 공모관계에 대해선 일절 언급하지 않았다. 상고 이유로 주장된 바 없고, 피고인들의 유무죄 여부와도 무관하다는 이유를 들었지만 대법원이 정치적으로 휘둘렸다는 야당의 비판이 더 설득력을 갖게 됐다. 서울 서초동에선 박근혜 전 대통령을 빗대 “이러려고 대법관이 됐냐”는 볼멘소리마저 나오고 있다.

③ “올해 1심 선고도 불가능”

소위 말하는 사법농단의 핵심으로 구속기소 됐던 양승태 전 대법원장과 임종헌 전 법원행정처 차장에 대한 재판은 언제 끝날지 가늠하기조차 어려워졌다. 2018년 10월 27일 구속 수감된 뒤 503일 만에 보석으로 풀려난 임 전 차장은 6개월간 재판이 중단되기도 했었다. 재판부 기피 신청 여부의 적정성을 놓고 양측의 대립이 계속됐기 때문이다. 이달 들어 집중 심리 방식으로 공판이 진행되고 있지만 그를 둘러싼 세부적 혐의 사실이 30여건 이상에 이르는 데다 증인 출석 대상도 방대해 올해 심리를 끝내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할 것으로 보인다. 일제 강제징용 피해자들의 손해배상소송을 비롯해 전교조, 국가정보원 형사사건, 산케이 신문 서울지국장 재판 등에 개입했다는 혐의 등 확인해야 할 부분 중 절반도 심리가 이뤄지지 않은 것이다.

특히 김 대법원장과 임 전 차장 두 사람은 사법시험 한 기수 차이로 현직에 있을 때부터 구원(舊怨)이 있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이 때문에 임 전 차장과 양 전 대법원장 측에선 재판 하나하나에 김 대법원장이 개입을 하고 있다는 의심을 하고 있다. 이들은 선거 결과가 재판에 큰 영향을 미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④ “재판은 물론 수사도 영향”

재판중인 주요 정치사건

재판중인 주요 정치사건

현 정권의 입장에선 아킬레스건이나 다름없는 것이 청와대의 울산시장 선거개입 사건이다. 공직선거법 위반 등 혐의로 기소된 13명 중 황운하 전 울산경찰청장과 한병도 전 청와대 정무수석이 이번 선거에 정치적 사활을 거는 것도 이 때문이다. 국회의원 신분일 경우 국정을 이유로 재판 일정의 조정이 유리하고 검찰의 추가 수사에도 응하지 않을 수 있게 된다. 법원도 재판이 미뤄지는 것에 대한 책임을 이들에게 미룰 수 있다는 점에서 크게 나쁘지 않은 결과로 받아들일 가능성이 크다.

재판과 함께 이번 사건에 대한 검찰의 추가 수사도 선거 결과에 큰 영향을 받게 된다. 여당이 승리할 경우 검찰의 수사 강도가 약해질 수밖에 없을 것으로 법조인들은 전망하고 있다. 반대로 야당이 우세승을 거두면 문 대통령의 대학 후배인 이성윤 서울중앙지검장도 수사 검사들의 압력을 막아내기가 만만치 않아진다. 벌써부터 서울중앙지검 주변에선 “대통령의 개입을 입증할 단서가 나왔다” “수사 성과가 전혀 없다”는 상반된 시각의 말들이 나오고 있다. 그만큼 선거 결과에 따라 수사의 방향도 달라질 수 있다는 얘기로 해석할 수 있다.

이밖에 유재수 감찰 무마를 비롯해 환경부 블랙리스트 작성, 신라젠 및 라임 자산운용사 부실운용 등 살아있는 권력과 관련된 사건들에 이번 선거가 어떤 영향을 미칠지도 관심거리다. 이는 사법부의 인적 구성 지형 변화에 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고, 향후 재판에도 또 다른 판단의 지렛대로 작용할 전망이다.

사법의 정치화, 정치의 사법화가 이번 정부 들어 한층 심해지고 있다. 포퓰리즘 정권에선 흔한 현상이지만 이는 정상적 법치주의엔 심각한 타격을 줄 수 있다는 점에서 우려된다. 총선 이후 여의도와 서초동엔 누구의 힘이 더 강력하게 작용할까. 청와대는 또 어떤 태도를 보일까.

박재현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