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오래] 유난히 화사한 봄꽃, 너는 왜이리 눈치가 없는가

중앙일보

입력 2020.04.09 13:00

[더,오래] 윤경재의 나도 시인(58)  

예기치 않은 코로나19 사태로 모두가 사회적 격리를 하느냐 몸과 마음이 지쳤다. 이런 때엔 여럿이서 몰려다니는 꽃놀이와 산행보다 집 근처에서 도보로 접근할 수 있는 둘레길 순례가 호젓하니 좋다. [사진 Pixabay]

예기치 않은 코로나19 사태로 모두가 사회적 격리를 하느냐 몸과 마음이 지쳤다. 이런 때엔 여럿이서 몰려다니는 꽃놀이와 산행보다 집 근처에서 도보로 접근할 수 있는 둘레길 순례가 호젓하니 좋다. [사진 Pixabay]

한양도성 둘레길

북악에서 낙산 남산 가로 건너 인왕산
산과 들 자연경계 조화로운 한양도성
숨구멍 사대문 찾아 인의예지 살폈네

동남북문 우뚝하나 애닲고나 돈의문아
올바름 외면하고 부끄러움 허물었네
하나 둘 도로 세우면 도타움이 빛 나리

굽은 길 곧게 펴고 막힌 데 소통하면
골목길 모두 나와 신바람에 덩실덩실
당하고 싶지 않은 일 나로부터 삼가야

오르막 내리막 오십여 리 둘레길
맥놀이 심장 소리 또렷하게 들리니
누천년 세상 도읍지 양심 평화 번져라

해설
예기치 않은 코로나19 사태로 모두가 사회적 격리를 하느냐 몸과 마음이 지쳤다. 바야흐로 세상은 온통 봄꽃이 만발했다. 올해엔 유난히 매화, 목련, 벚꽃, 개나리, 유채가 흐드러지게 피어난 것 같다. 마음을 싱숭생숭하게 만드는 봄꽃을 꺾어 머리에, 옷깃에 꽂고서 무작정 걷고 싶다. 이런 내 마음을 몰라주는 봄꽃. 올해는 ‘눈치 없는 봄꽃’이라 이름을 붙이고 싶다.

이런 때엔 여럿이서 몰려다니는 꽃놀이와 산행보다 집 근처에서 도보로 접근할 수 있는 둘레길 순례가 호젓하니 좋다. 내가 사는 서울은 둘레길이 아주 잘 갖추어져 있다. 상세 지도와 앱도 잘 구비되어 언제 어디에서도 쉽게 접근할 수 있다. 서울을 외곽으로 크게 도는 서울 둘레길은 157㎞나 되고 내곽으로 도는 한양도성 둘레길은 18.6㎞이다. 그 밖에도 각 자치구에 산재한 근교산 자락길, 생태문화길, 한강 지천길 등이 있어 번잡하지 않게 능력껏 걸을 수 있다. 전체를 다 돌려면 아마 수개월은 걸릴 것이다.

마음을 싱숭생숭하게 만드는 봄꽃을 꺾어 머리에, 옷깃에 꽂고서 무작정 걷고 싶다. 이런 내 마음을 몰라주는 봄꽃. 올해는 ‘눈치 없는 봄꽃’이라 이름을 붙이고 싶다. [사진 Pixabay]

마음을 싱숭생숭하게 만드는 봄꽃을 꺾어 머리에, 옷깃에 꽂고서 무작정 걷고 싶다. 이런 내 마음을 몰라주는 봄꽃. 올해는 ‘눈치 없는 봄꽃’이라 이름을 붙이고 싶다. [사진 Pixabay]

인간이 침팬지 등 유인원과 다른 점이 발 구조라고 한다. 인간의 발은 무언가를 쥘 수 없고 두 발로 직립하여 걸을 수 있게 진화되었다. 유인원은 한 번에 2~3㎞ 정도 걸을 수 있으나 인간은 한 번에 30㎞를 지속해서 걷거나 뛸 수 있다. 보통 포유류는 달리는 순간 속도는 인간보다 빠르나 오래 달리질 못한다. 털이 덮은 피부로 체온 조절하는 데 어려움이 있어서다. 동물은 빨리 달리면 심장 운동이 격해져 체온이 급상승한다. 오로지 폐호흡만으로 체온을 낮추어야 하니 무리가 간다. 인간은 땀구멍이 있고 털이 없는 피부를 지녀 급상승한 체온을 효과적으로 낮출 수 있다.

또 인간은 수십 명이 집단으로 사냥에 참여했다. 서로 신호와 대화를 통해 사냥감을 추적하고 포위와 덫을 놓아 지친 사냥감을 잡았다. 저녁에는 동굴에 모여 불을 피워놓고 둘러앉아 그날의 승리와 실패한 과정을 이야기로 나누며 경험을 쌓아나갔다. 마치 바둑을 복기하는 것처럼 하루하루를 되새기며 기억 속에 정리하였다.

사냥이란 게 늘 계획대로 쉽게 이루어질 리가 없었다. 그래서 다음번에는 더 많이 잡고 그리고 피해 없이 성과를 내도록 점차 어떤 의식을 치르게 되었다. 이런 능력을 가리켜 ‘호모 나랑스(homo narrans)’라고 부른다. 즉 인간은 이야기꾼이란 말이다. 눈에 보이지 않고 실재하지 않는 사실을 이야기로 꾸며 낼 수 있는 능력을 말한다. 추측과 상상이 인간 집단에 이득이 된다는 걸 배운 것이다. 진실과 거짓을 알맞게 섞어 이야기로 전달하는 능력이 인류를 하나로 뭉치게 하였으며 생존에 도움을 주었다. 종교도 이런 ‘호모 나랑스’ 능력 덕분에 생겨났을 것이다.

인간은 어떤 사건에 이야기가 합해질 때 쉽게 뭉치며 큰 고난을 헤쳐 나가고, 쾌락을 얻을 수 있다는 체험을 한 것이다. 어떤 의미 부여를 통해 일상적이고 흘러 지나가는 사건을 상징화하였다. 요즘엔 이런 걸 스토리텔링이라 부른다. 단순히 어떤 사건을 겪는 것보다 이야기를 통해 체험할 때 힘도 덜 들고 보람도 더 크게 된다. 코로나19 극복도 자기 나름의 이야기를 덧붙인다면 쉬이 견디리라.

카뮈는 소설 『페스트』를 통해 우리에게 전염병에서 벗어나는 이야기를 남겼다. 소설엔 많은 등장인물이 나온다. 혼란을 틈타 이익을 챙기는 군상들과 근거 없는 유언비어로 사람들을 혼란에 빠트리는 사람들. 희망을 잃고 될 대로 되라고 체념에 빠진 사람들이다. 소설에서 시간이 지날수록 사람들은 서로에게 페스트균이 되었고 가해자가 되었다. 의사 리외는 “페스트와 싸우는 유일한 방법은 성실성이다”라고 말하며 묵묵히 자기 직분을 다하면서 그 힘든 시기를 이기려고 노력했다. 영웅이 되고자 하지 않으면서.

몸과 마음이 건강해지도록 몇몇이서 두런두런 이야기꽃을 피우며 걷는 둘레길은 코로나 블루에 찌든 숨통을 잠시나마 틔워줄 것이다.[사진 위키백과]

몸과 마음이 건강해지도록 몇몇이서 두런두런 이야기꽃을 피우며 걷는 둘레길은 코로나 블루에 찌든 숨통을 잠시나마 틔워줄 것이다.[사진 위키백과]

한양도성 둘레길에도 발걸음 하나하나에 이야기가 담겨있다. 서울을 둘러싼 네 개의 봉우리가 북악산(백악산), 낙산, 남산(목멱산), 인왕산이다. 우리 선조는 자연을 훼손하지 않고 산과 들에 돌로 성곽을 쌓아 외세 침입을 방비하였다. 성벽 중간 동남서북 네 방위에 네 개의 큰 문과 네 개의 작은 문을 세웠으며 도성 중앙 자리에 보신각을 세웠다. 조선을 개국한 정도전 등 사대부들이 유교에 바탕을 둔 건국이념을 설계하며 인의예지신의 다섯 가지 도리를 벼리로 삼았다. 그 뜻을 한양 도성 사대문을 통해 만방에 선포한 것이다. 흥인지문, 숭례문, 돈의문, 숙정문과 보신각이 오행을 나타낸다. 조선인은 누구나 오덕을 마음에 간직하고 살라는 뜻이다.

그런데 일제가 침략하여 처음 한 일이 한 나라의 수도인 한양도성에서 서쪽 문을 허물어 버린 일이다. 서쪽은 옳음을 뜻하는 돈의문이다. 그들은 자기네가 조선을 병탄한 게 꺼림 직했는지 의(義)자가 들어가는 대문인 돈의문(敦義門)과 소문인 소의문(昭義門)을 길을 낸다는 핑계로 부수어 버렸다. 실제로는 백성들이 옳고 그름을 따지지 못하게 하려는 속셈이 숨어 있었다. 또 동소문인 혜화문도 허물었다. 혜화문은 광복 후 1970년도에 자리를 옮겨서 다시 지었다. 얼른 돈의문과 소의문도 지어 허물어진 나라의 정의를 바로 세우는 일이 급하겠다.

도성길은 도심과 산자락, 산 정상을 연결하기에 사시사철 풍광이 달라진다. 봄에는 각종 꽃이 피어 눈을 즐겁게 하고, 여름에는 숲이 우거져 그늘을 드리운다. 곳곳에 사적과 박물관이 연결되어 있다. 가을에는 단풍이 울긋불긋하다. 겨울에는 눈 덮인 서울을 내려다보는 광경이 그만이다. 봄철에는 꽃이 흐드러진 낙산길이 정말 좋다. 무엇보다 힘들지 않고 이화 벽화마을을 거닐며 데이트하기에 안성맞춤이다. 남산 길과 북악산 길은 가을에 절경이다. 한여름에는 숨이 아주 가쁘다. 숭례문에서 시작하는 인왕산 길은 도심을 지나기에 지도와 앱을 잘 따라야 한다. 바위가 많아 흥미진진하다.

아직은 코로나19의 정체를 잘 모른다. 하지만 유언비어와 무지, 체념에 빠져서는 안 된다는 건 알고 있다. 이럴 때 몸과 마음이 건강해지도록 몇몇이서 두런두런 이야기꽃을 피우며 걷는 둘레길은 코로나 블루에 찌든 숨통을 잠시나마 틔워줄 것이다.

한의원 원장 theore_creator@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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