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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염병·불황이 휩쓴 그 자리에 셀프계산대···캐셔가 사라진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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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2면

5일 롯데마트 서초점. 지난 1월까지 10곳이던 대면 계산대는 5곳으로 줄고, 10곳이던 셀프 계산대는 22곳으로 늘었다. 전영선 기자

5일 롯데마트 서초점. 지난 1월까지 10곳이던 대면 계산대는 5곳으로 줄고, 10곳이던 셀프 계산대는 22곳으로 늘었다. 전영선 기자

지난 5일 오후 서울 서초동 롯데마트 서초점. 유인 계산대 5곳 앞에는 장을 본 소비자들이 줄을 서서 기다리고 있었다. 바로 옆 무인 계산대(셀프 계산대) 22곳이 배치된 구역(존)엔 줄이 없다. 서초점은 중앙일보가 지난해 11월 말 이곳을 취재했을 때만 해도 유인 10곳 무인 10곳으로 동수였다. 하지만 설 연휴 이후 대대적인 공사를 해 셀프 계산대 숫자가 22곳으로 캐셔가 있는 유인 계산대 5곳을 압도하게 됐다.

이날 그나마 있는 유인 계산대 5자리 중 3곳만 계산원이 배치됐다. 유인 계산대 존 곳곳이 걸린 ‘현금과 상품권 우선’이라는 안내에도 여전히 신용카드를 내미는 소비자가 다수다. 오정상 서초점 영업부점장은 “방문 고객 절반 이상이 셀프 계산대를 통해 물건을 사고 있다”며 “신종코로나 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 19)로 대면 접촉을 꺼리는 소비자가 늘면서 고연령층 중에서도 무인 계산대를 선호하는 경우가 많아졌다”고 말했다.

캐셔가 사라진다…급물살 타는 무인 시대 

전염병과 불황이 유통업계 무인화를 급속도로 앞당기고 있다. 롯데마트는 3월 말 현재 50개 점포(총 120개 중)에 셀프 계산대를 들여 512대를 운영하고 있다. 지난해 말 46개 점포 441대에서 석 달 만에 71대가 증가했다. 롯데마트를 운영하는 롯데쇼핑 관계자는 “장기적으로 오프라인 유통에서 유인 계산은 비중이 낮아질 수 밖에 없다”며 “현재 계산원은 안내·영업 등 다른 업무로 재배치돼 근무하고 있다”고 말했다. 앞으로는 카트에 물건을 넣기만 해도 계산이 되는 형태의 무인점포(스마트 카트  등)로 진화할 가능성이 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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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서 롯데쇼핑은 향후 5년간 백화점ㆍ할인점ㆍ슈퍼ㆍ롭스 등 롯데쇼핑의 718개 매장 중 수익성이 떨어지는 점포 200곳 이상(약 30%)을 정리할 예정이라고 발표했다. 본격적인 매장 구조조정을 앞둔 만큼 마트 매장만 전체의 약 40%, 총 50개 정도를 정리해야 하는 상황이다. 현재 롯데쇼핑은 경쟁력 있는 점포를 추리는 작업을 하고 있다. 남아 있는 마트 매장에서도 서초점처럼 캐셔 직원을 찾아보기 힘든 추세는 가속화될 거로 보인다.

셀프 계산대에 기름 부은 코로나 

김익성 동덕여대 경영학과 교수는 “4차 산업혁명의 혁신기술이 온라인 기술과 결합하면서 투입되는 노동력 자체가 줄어들고 노동 형태도 정규직에서 시간제나 재택근무로 변하고 있다”며 “그런 흐름에 코로나19가 기름을 부은 격”이라고 말했다.

아성다이소도 최근 다이소 서울 시청광장점을 아예 100% 셀프 계산 체제로 바꿨다. 계산대 직원이 한명도 없다. 지난해 4월 문을 열고 3개 층에서 영업 중인 이 다이소 매장은 셀프계산대 옆에 마련한 안내데스크 직원 1명과 각층 안내를 담당한 직원 3명 등 총 4명만이 근무 중이다.

다이소 관계자는 “업무 효율성을 높이기 위해 주요 매장 10여곳에서 셀프 계산대를 시험 운영하고 있다”며 “아직 시험 단계라서 어떤 평가를 하기는 어렵다”고 했다. 가성비를 앞세운 생활용품점인 만큼 고정비를 줄이기 위한 방편으로 이런 추세가 앞으로 1350개 매장(2019년 말 기준) 전체로 빠르게 확산할 것으로 보인다. 1위 대형마트인 이마트는 지난 1월 기준 전국 142개 점포(위탁 운영 매장 제외) 중 지금까지 95개 매장(66.9%)에 무인 계산대를 설치했다.

백화점도 주차장서 픽업하는 언택트 서비스   

코로나19 확산에 따라 점원과 접촉할 일이 적은 '언택트 판매' 방식인 드라이브스루(DT)도 크게 늘고 있다. DT는 다른 주문자들과 한 공간에 섞이지 않고 온라인 주문을 활용하면 직원과도 접촉할 일이 없다. 커피빈코리아는 2월 23일~3월 22일 DT 주문량이 전월 동기 대비 주말엔 30%, 평일엔 21% 각각 증가했다. 특히 서울 도심에 있는 학동DT점은 주말과 평일 증가율이 50%와 32%에 달했다. 3월 온라인 주문앱 ‘퍼플오더’ 이용률 상위 15개 매장에 DT점 3곳이 포함됐다.

당초 DT에 적극적이던 패스트푸드점은 물론 백화점까지 DT 서비스를 실험 중이다. 롯데백화점 광주점과 대구점은 지난달부터 애플리케이션에서 상품을 골라 결제한 뒤 수령 가능한 날짜와 시간을 정하고 주차장에서 받는 서비스를 제공한다.

6일 서울 중구 다이소 시청광장점. 3층 대형 매장을 '인간 캐셔' 없는 점포로 운영 중이다. 추인영 기자

6일 서울 중구 다이소 시청광장점. 3층 대형 매장을 '인간 캐셔' 없는 점포로 운영 중이다. 추인영 기자

점점 줄어드는 유통업 일자리 

이런 추세에 따라 기존의 유통 업계에서 일자리가 사라지는 것은 불가피하다는 관측이다. 별다른 기술과 경력이 없어도 구할 수 있는 일자리여서 사회에 미치는 충격파도 더 클 것으로 보인다. 이은희 인하대 소비자학과 교수는 “젊은이들은 사람을 만나 직접 말하는 것보다는 기계에서 업무를 처리하는 것을 더 선호하기 때문에 언택트 소비는 더 확산할 수밖에 없다”며 “어르신 등 정보 소외계층이 어려움을 겪지 않도록 상당 기간 언택트와 유인 방식을 병행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이 교수는 또 “셀프 계산대로 바뀌면서 줄어드는 일자리는 다른 방식으로 창출돼야 한다”고 말했다.

지난달 25일 롯데백화점 대구점에서 백화점 관계자가 '드라이브 픽' 서비스를 선보이고 있다. 코로나19로 드라이브스루 서비스도 확대되고 있다. 연합뉴스

지난달 25일 롯데백화점 대구점에서 백화점 관계자가 '드라이브 픽' 서비스를 선보이고 있다. 코로나19로 드라이브스루 서비스도 확대되고 있다. 연합뉴스

코로나 19로 언택트 배달은 초전성 시대를 맞고 있다. 배달원과의 접촉을 원천 차단하는 ‘안전 배달 서비스’는 코로나19 소비의 상징이 됐다. 도미노피자는 온라인 주문에서 ‘미리결제’를 선택하는 비중이 1월 50%에서 3월 65%로 늘었다. 지난달엔 배달원이 배송지 문 앞에 피자를 배달한 뒤 연락해주는 ‘비대면 안전배달’ 서비스를 신설했다. 미리결제 고객의 절반 정도가 안전배달 서비스를 이용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배달앱 ‘요기요’도 지난달 ‘안전배달’(문 앞에 두고 전화주세요) 서비스를 최상단에 배치한 결과 이용률이 전달보다 481% 증가했다.

음료·소고기·빵까지 언택트 배달 

기존 배달 주문은 받지 않았던 음식점들도 언택트 소비에 발맞춰 배달앱 등과 제휴해 배달 서비스에 나서고 있다. 버블티 등 음료를 파는 공차코리아는 최근 배민 등과 제휴해 배달 서비스를 확대한 결과 올해 각 매장의 월평균 매출이 144% 늘었다. 지난해 12월 배달 서비스를 시작한 소고기 전문점 이차돌 역시 2월 배달 매출이 전달보다 100%가량 상승했다.

배달의민족(이하 배민)에 따르면 지난 2월 배민라이더스 입점 문의는 전달보다 75% 늘었다. 3월(22일까지)에도 전달 같은 기간에 비해 21% 많은 입점 문의가 이어지고 있다.

7일 서울 강서구 마곡동 로보티즈 본사 앞에서 직원들이 주문한 점심식사를 로봇이 배달하고 있다. 기업용 모바일 식대관리 솔루션 '식권대장'을 운영하는 벤디스는 로봇 솔루션 전문 기업 로보티즈가 개발한 실외 자율주행 로봇에 식권대장의 '예약결제' 서비스를 적용해 로봇 점심 배달 서비스에 나섰다고 이날 밝혔다.이 서비스는 서울 강서구 마곡동에 있는 로보티즈 본사 임직원을 대상으로 우선 시행되고 있다. 뉴스1

7일 서울 강서구 마곡동 로보티즈 본사 앞에서 직원들이 주문한 점심식사를 로봇이 배달하고 있다. 기업용 모바일 식대관리 솔루션 '식권대장'을 운영하는 벤디스는 로봇 솔루션 전문 기업 로보티즈가 개발한 실외 자율주행 로봇에 식권대장의 '예약결제' 서비스를 적용해 로봇 점심 배달 서비스에 나섰다고 이날 밝혔다.이 서비스는 서울 강서구 마곡동에 있는 로보티즈 본사 임직원을 대상으로 우선 시행되고 있다. 뉴스1

SPC그룹의 파리바게뜨가 2018년 9월 제빵 업계에서 처음으로 시작한 ‘파바 딜리버리’ 서비스는 코로나19로 ‘날개’를 달았다. 지난달 주문수가 1월보다 무려 60% 이상 늘었기 때문이다. 풀무원 계열 프레시마켓 올가홀푸드는 직영점에서 지난 2월 O2O(Online to Offline) 서비스 매출이 전년 동기 대비 300% 늘고, 신규회원 수는 618% 상승했다. 특히 서울 반포점의 경우 O2O 서비스 이용 회원 수가 지난해의 약 4.8배로 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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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용구 숙명여대 경영학과 교수는 “세상은 BC(before Covid)와 AC(after Covid)로 나뉠 것”이라며 “90년대 외환위기(IMF) 이후 종신고용 문화가 사라진 것처럼 코로나로 인한 가장 근본적인 변화가 ‘언택트’가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서용구 교수는 “오프라인은 온라인 주문 후 받으러 가는 곳 정도의 서브 역할 정도만 하게 될 것”이라며 “언택트 기술이 고도화되면 사람이 아예 없는 안면인식기술 등을 활용한 ‘터치리스 서비스’까지 진화할 것”이라고 말했다.

전영선ㆍ추인영 기자 azul@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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