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뺑소니 사망사고 ‘13세 질주’ 촉법소년 처벌청원 87만 넘었다

중앙일보

입력

지난달 29일 렌터카를 훔쳐 무면허 뺑소니 사고를 낸 10대들을 엄벌해달라는 국민청원이 올라왔다. [청와대 홈페이지 캡쳐]

지난달 29일 렌터카를 훔쳐 무면허 뺑소니 사고를 낸 10대들을 엄벌해달라는 국민청원이 올라왔다. [청와대 홈페이지 캡쳐]

텔레그램 n번방 사건에 대한 강력 처벌 요구에 이어 이번엔 촉법소년 처벌 기준을 강화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촉법소년은 범죄 행위를 저질렀지만 형사처벌을 받지 않는 만 10세 이상~14세 미만의 형사 미성년자를 말한다.

지난 2일 청와대 국민청원에는 ‘렌터카 훔쳐 사망사고 낸 10대, 엄중 처벌해주세요’라는 게시글이 올라왔다. 글쓴이는 “사망자가 올해 대학에 입학해 생활비를 벌기 위해 배달대행 일을 하다가 사망했다. 렌터카 운전자는 촉법소년에 해당해 형사처분 대신 보호처분을 받을 것”이라고 밝혔다. 이 글은 청원 닷새(6일 오후 5시30분 기준) 만에 87만명이 넘게 동의했다.

무면허·뺑소니 사고에도 13세라 형사처벌 불가

해당 청원은 지난달 29일 대전에서 10대 청소년 8명이 일으킨 무면허ㆍ뺑소니 사망사고와 관련 있다. 운전자 A군(13)은 친구들과 서울에서 훔친 렌터카(그랜저)를 타고 대전으로 가던 중 경찰과 추격전을 벌이다 오토바이 운전자 B군(18)을 들이받았다. B군은 사고로 숨졌고, A군 등은 현장에서 약 200m 떨어진 곳에 차량을 버리고 달아났다. 이중 6명은 현장에서 잡혔고 나머지 2명은 또 다른 차량을 훔쳐 서울로 달아났다가 검거됐다.

차량을 훔쳐 운전하다 사고를 낸 뒤 검거됐던 중학생들이 또 다시 범행을 벌이다 경찰에 붙잡혔다. 연합뉴스

차량을 훔쳐 운전하다 사고를 낸 뒤 검거됐던 중학생들이 또 다시 범행을 벌이다 경찰에 붙잡혔다. 연합뉴스

문제는 이들이 현행법상 형사 미성년자에 속하기 때문에 형사처벌을 받지 않는다는 점이다. A군처럼 만 10세 이상~14세 미만의 촉법소년은 사회봉사명령이나 소년원 송치 등 보호처분이 가능하지만, 소년원 송치 기간은 최장 2년이며 전과 기록이 남지 않는다. 이를 이미 알고 있듯 A군 일당으로 추정 되는 이들은 페이스북에서 지인들과 '분노의 질주…. 200 찍었지' '구미경찰서 재낄 준비' '안양소년분류심사원 OOO 편지 써줘. 건강하고 한 달 뒤에 보자 사랑하는 친구들아' 등의 글을 올려 논란이 됐다.

조국, 3년 전 “미성년자 나이 한두칸 낮춰 해결 안 돼"

2017년 9월 소년법 개정 관련 국민청원에 답하고 있는 조국 민정수석. [사진 청와대 페이스북]

2017년 9월 소년법 개정 관련 국민청원에 답하고 있는 조국 민정수석. [사진 청와대 페이스북]

사실 촉법소년 처벌 강화에 대한 목소리는 국민청원이 도입된 2017년부터 꾸준히 이어졌다. 2017년 9월 ‘부산 여중생 집단 폭행 사건’을 계기로 올라온 소년법 개정 국민청원은 청와대 1호 답변이기도 했다. 조국 당시 청와대 민정수석은 “소년법과 관련해서 형사 미성년자 나이를 한 칸 혹은 두 칸으로 낮추면 해결된다는 것은 착오라고 생각한다. 복합적인 접근이 필요하며 일차적으로는 예방이 필요하다“며 한발 물러섰다.

하지만 이후에도 대구 중학생 성폭행, 서울 관악산 고교생 집단 폭행 등의 문제가 이어지고 비슷한 청원이 올라오자 2018년 8월 김상곤 사회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은 “기존 14세 미만에서 13세 미만으로 낮추는 것을 범정부 차원에서 논의했다”면서 가능성을 열었다.

교육부 촉법 연령 13세로 낮추겠다 발표하기도 

유은혜 부총리 겸 교육부장관이 6일 오후 인천시 미추홀구 공립 특수학교인 인천청인학교에서 열린 '온라인 개학 대비 특수학교 현장 간담회'에서 발언하고 있다. 본문과 관련 없음. 연합뉴스.

유은혜 부총리 겸 교육부장관이 6일 오후 인천시 미추홀구 공립 특수학교인 인천청인학교에서 열린 '온라인 개학 대비 특수학교 현장 간담회'에서 발언하고 있다. 본문과 관련 없음. 연합뉴스.

이후 지난해 11월 ‘수원 노래방 06년생 집단 폭행사건’이 벌어져 또다시 청원이 올라오자 유은혜 사회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은 소년법 개정을 적극적으로 추진하겠다고 했다. 실제 올해 1월 교육부는 ‘제4차 학교폭력 예방 및 기본대책’에 촉법소년 연령을 기존 만 14세 미만에서 만 13세 미만으로 낮추겠다는 내용을 담았다.

이와 관련해 이윤호 동국대 경찰 행정학 교수는 “현행법상 어떤 이유든 간에 특정 연령 이하면 처벌하고 싶어도 처벌할 수 없다는 것이 문제다"며 "처벌을 안 하는 것과 할 수 없는 것은 굉장한 차이가 있기 때문에 연령을 낮추는 것이 (해결) 방법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김한규 변호사(법무법인 공간)는 “굳이 비교하자면 최근 선거권자 연령도 하향했다. 그만큼 요즘 10대들의 정신적 성숙도, 판단능력이 과거보다 올라갔다는 거라 촉법소년 연령을 하향할 필요가 있다”고 했다.

국가인권위원회는 “촉법소년 연령 하향이 별다른 실효성이 없고 국제적인 인권 기준에도 어긋난다”며 연령 하향에 반대 의견을 밝혔다.

이우림 기자 yi.woolim@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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