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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원, 'n번방' 판사 교체 이유 "혼자 감당할 비난 온당치 않아"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난달 30일 오전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방법원에서 민중당 당원들이 'n번방' 사건 관련 재판을 맡은 오덕식 부장판사 교체를 요구하며 기습 시위를 하고 있다.〈br〉〈br〉[뉴스1]

지난달 30일 오전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방법원에서 민중당 당원들이 'n번방' 사건 관련 재판을 맡은 오덕식 부장판사 교체를 요구하며 기습 시위를 하고 있다.〈br〉〈br〉[뉴스1]

“범죄나 디지털성범죄의 양형을 둘러싼 법원에 대한 비난의 화살을 오(덕식) 부장판사 혼자서 감당해야 하는 상황이 되었습니다. 왜곡, 과장된 보도로 인한 과도한 비난마저 온전히 법관 개인이 책임지고 감당하라는 것은 온당치 않습니다.”

‘N번방 사건’ 피의자 중 한명인 이모(16)군의 재판장이 오덕식 부장판사에서 박현숙 부장판사로 교체된 것에 대한 얘기다. 김병수 서울중앙지방법원 형사수석부장판사가 이 상황에 대해 동료 판사들에게 메일을 보내 설명했다. 고(故) 구하라씨가 피해자인 성폭력 사건에서 오 부장판사가 부적절한 재판을 했다는 일부 논란도 사실과 다르다고 해명했다.

오 부장판사는 구씨를 불법촬영하고 폭행·협박한 혐의로 기소된 최종범(29)씨의 1심에서 징역형 집행유예를 선고했다. 당시 오 부장판사는 “두 사람의 관계를 종합하면 사진 촬영 당시 피해자로부터 명시적 동의는 받지 않았지만 피해자 의사에 반해 찍은 것으로는 보이지 않아 공소사실을 인정하기 어렵다”며 불법촬영 부분을 무죄로 판단했다. 이를 제외한 모든 혐의에 대해서는 유죄 판결을 내렸지만 지난해 11월 구씨가 목숨을 끊으면서 판결에 대한 비판 여론이 들끓었다.

청와대 국민청원 홈페이지 캡쳐.

청와대 국민청원 홈페이지 캡쳐.

이후 N번방 사건과 관련해 아동·청소년 성착취물을 제작·배포한 혐의로 기소된 ‘태평양’ 이모(16)군 사건을 오 부장판사가 맡게 되자 여론은 다시 한번 부글거렸다. 재판부를 재배당해달라는 청와대 국민청원에 40만명이 참여했다. 이에 오 부장판사는 법원에 사건을 재배당해달라며 서면을 제출했고, 해당 사건은 형사22단독(박현숙 판사)에 넘어갔다.

법관 등의 사무분담 및 사건배당에 관한 예규에 따르면 사건 배당은 확정되면 원칙적으로 변경할 수 없다. 다만 현저히 곤란한 사유가 있어 재판장이 재배당 요구를 한 때 등에 한해서 변경이 가능하다.

김 수석부장판사가 동료 판사들에게 보낸 이메일에 따르면 오 부장판사는 자신을 둘러싼 사회적 논란이 16세의 미성년자인 피고인에게 전가되는 것이 바람직하지 않다고 판단해 재배당을 요청했다. 이를 설명하며 김 부장판사는 “외부의 영향을 받지 않고 재판권을 행사해야 한다는 점은 법관 모두가 공감하는 부분이고, 설령 그 외부의 영향이 국민청원의 방식으로 이뤄지더라도 마찬가지일 것”이라고 말했다.

또 “사건의 재배당으로 우려하는 부분들을 감수하고서라도 그와 같은 선택을 할 수밖에 없었던 사정을 이해해주시길 부탁드린다”고 했다. 여론에 떠밀리듯 재판부를 교체한 것이 사법부의 독립성을 해친 것이라는 법조계 안팎의 비판적 시각에 대응한 것으로 보인다.

김 수석부장판사는 구씨의 전 남자친구 최씨의 재판에서 오 부장판사가 부적절한 행동은 전혀 하지 않았다고 해명했다. 최씨가 동영상의 내용이 공소사실과 다르다는 취지로 다퉈 영상 내용에 따라 협박 사실의 유·무죄 판단이나 양형에 미치는 영향이 중요하므로 확인이 불가피한 상황이었다는 것이다.

24일 숨진 채로 발견된 가수 고(故) 구하라의 일반 빈소가 마련된 서울 강남 성모병원 장례식장에 놓인 영정. [사진공동취재단]

24일 숨진 채로 발견된 가수 고(故) 구하라의 일반 빈소가 마련된 서울 강남 성모병원 장례식장에 놓인 영정. [사진공동취재단]

이어 “피해자의 변호인이 2차 피해의 우려가 있다며 재판장이 판사실에서 동영상 내용을 확인할 것을 제안했고, 오 부장은 이를 받아들인 것으로 이해된다”며 “내용의 확인이 불필요했다거나 변호인의 반대에도 일방적으로 결정해 판사실에서 동영상을 확인했다는 보도는 사실과 다르다”고 강조했다.

김 수석부장판사는 “오 부장은 지난해 왜곡·과장된 보도 내용으로 고통스러운 상황을 겪으면서도, 피해자의 안타까운 소식이 전해진 지 얼마 지나지도 않았는데 사실관계를 밝히는 과정에서 2차 피해가 우려된다며 따로 보도에 대응하기를 원하지 않았다”며 “그로 인한 비난은 스스로 감수하겠다고 말씀하신 것으로 기억한다”고 덧붙였다.

백희연 기자 baek.heeyou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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