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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년중앙] '추한 것이 아름답다' 장애·편견 딛고 전설이 된 화가와의 만남

중앙일보

입력

소중 체험평가단이 ‘툴루즈 로트렉전-물랭 루즈의 작은 거인’ 전시를 보며 툴루즈 로트렉의 삶과 작품세계를 살펴봤다. 왼쪽부터 윤현지 학생모델·황윤서 독자·심여진 학생기자.

소중 체험평가단이 ‘툴루즈 로트렉전-물랭 루즈의 작은 거인’ 전시를 보며 툴루즈 로트렉의 삶과 작품세계를 살펴봤다. 왼쪽부터 윤현지 학생모델·황윤서 독자·심여진 학생기자.

툴루즈 로트렉이란 이름을 들어본 적 있나요? 아마 소중 친구들 대부분이 처음 들어봤을 텐데요. 후기인상주의 화가이자 현대 포스터의 아버지로도 불리는 툴루즈 로트렉은 19세기 후반, 예술의 거리 몽마르트와 댄스홀 물랭 루즈 등을 무대로 그들의 삶을 그려낸 프랑스 화가입니다. 우리가 몰랐던 아티스트를 알아가는 과정은 즐거운 일인데요. 소년중앙 체험평가단이 툴루즈 로트렉을 만나기 위해 19세기 파리 물랭 루즈로 시간 여행을 떠났습니다.

그의 국내 첫 전시회인 ‘툴루즈 로트렉전-물랭 루즈의 작은 거인’ 전시장 입구. 커튼을 거둬내니 붉은 벽의 방이 나오며 물랭루즈의 공연 무대로 들어가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죠. 벽에 걸린 스크린에선 흥겨운 캉캉 멜로디가 흘러나오고 댄서들이 춤을 추고 있었어요. 윤현지 학생모델이 “물랭 루즈에서 추는 춤인가 봐요”라고 신기해했죠. 다음 공간으로 넘어가니 몽마르트 거리와 빨간 풍차, 네온사인이 반짝이는 물랭 루즈의 밤거리를 만날 수 있었습니다. 황윤서 독자가 “실제 물랭 루즈 앞에 와 있는 듯한 기분이 들어요”라고 기뻐했죠. 로트렉의 작품 세계를 만나기 전 당시 분위기를 더 선명하게 느낄 수 있었어요.

“오늘 여러분이 만날 화가는 물랭 루즈의 전설로 통했어요. 이 화가가 대체 어떤 인생을 살았길래 전설 같은 존재가 되었는지 탄생부터 죽음까지 들려 드릴 거예요.” 정우철 도슨트가 로트렉의 삶을 영화처럼 재미있게 풀었습니다. 로트렉은 명예와 부를 모두 가진 프랑스 남부 귀족 집안에서 태어났다고 해요. 하지만 귀족 혈통을 유지하기 위해 계속된 근친혼으로 인해 취약한 골격, 기형적인 얼굴 등 유전 질환을 갖게 됩니다. 거기에 14·15살 연달아 왼쪽과 오른쪽 다리뼈가 부러지는 사고를 겪으며 성장까지 멈춰버리죠. 장애를 가지게 되자 아버지는 아들을 없는 사람 취급하기 시작했습니다. 다리를 다치고 한동안 집에만 있게 된 로트렉이 그림에 몰두하자 어머니가 선생님을 데려왔어요. “로트렉의 첫 번째 미술 선생님 르네 프랭스토는 청각장애인이었어요. 장애를 가진 게 어떤 마음인지 알았겠죠. 로트렉을 데리고 나와 최대한 다양한 세상을 경험시켜 주는데 그때 봤던 게 서커스예요.” 로트렉은 성인이 되어서도 서커스 장면을 많이 그리는데 이때의 경험 때문이었죠.

정우철 도슨트

정우철 도슨트

18세가 되던 1882년 파리로 이주한 로트렉은 레옹 보나, 페르낭 코르몽 등의 스승으로부터 본격적인 그림 공부를 시작합니다. 1884년엔 몽마르트 언덕으로 작업실을 옮겼는데요. 1889년, 몽마르트에 댄스홀 물랭 루즈가 오픈하며 그의 예술세계도 전환점을 맞습니다. “로트렉은 평생 하층민하고만 어울렸어요. 왜냐하면 귀족들은 서로 평가하는 기준이 외모였거든요. 로트렉도 외모 비하를 엄청 당했다고 해요. 하지만 당시 물랭 루즈는 정부에서 관리를 안 했던 곳이라 가난한 사람, 부랑자, 신체에 장애가 있는 사람 다 몰려들었죠. 아무도 로트렉의 신체를 신경도 안 썼던 여기서 해방감을 느낀 거죠.”

‘제인 아브릴’(위) ‘물랭 루즈, 라 굴뤼’(가운데) 등 툴루즈 로트렉의 포스터들은 현대 그래픽 아트에 많은 영향을 미쳤다. 장애를 가진 로트렉은 달리거나 말을 탈 수 없었고, 평소 역동적인 그림을 많이 그렸다. ‘Le Jockey’(아래) ⓒHerakleidon Museum, Athens Greece

‘제인 아브릴’(위) ‘물랭 루즈, 라 굴뤼’(가운데) 등 툴루즈 로트렉의 포스터들은 현대 그래픽 아트에 많은 영향을 미쳤다. 장애를 가진 로트렉은 달리거나 말을 탈 수 없었고, 평소 역동적인 그림을 많이 그렸다. ‘Le Jockey’(아래) ⓒHerakleidon Museum, Athens Greece

로트렉은 물랭 루즈에 자신의 지정석을 만들고 매일같이 출석하며, 자신이 보고 느끼는 것들을 그림으로 담아냈습니다. 물랭 루즈의 홍보 포스터 ‘물랭 루즈, 라 굴뤼’를 제작하며 그는 일약 유명 화가로 떠오르는데요. 파리 시내에 이 아름다운 포스터가 붙었을 때 서로 뜯어가려고 하는 바람에 난리가 났다고 합니다. 캉캉춤을 추는 라 굴뤼도 유명스타로 떠올랐다고 해요. ‘물랭 루즈’라는 글자를 세 번 반복해 쓰고 첫글자 M을 강조한 것, 뒷편의 인물은 그림자로 표시해 앞쪽의 인물을 강조하는 기법은 현대에서도 쓰고 있죠.

프랑스의 유명한 샹송 가수이자 작곡자인 아리스티드 브뤼앙의 그림들도 만나볼 수 있다. 로트렉은 평소 검은 모자와 검은 벨벳 망토와 붉은 스카프를 두르며 다녔던 그의 특징을 캐치해 포스터에 단순하게 표현했다.

프랑스의 유명한 샹송 가수이자 작곡자인 아리스티드 브뤼앙의 그림들도 만나볼 수 있다. 로트렉은 평소 검은 모자와 검은 벨벳 망토와 붉은 스카프를 두르며 다녔던 그의 특징을 캐치해 포스터에 단순하게 표현했다.

이렇듯 로트렉은 그래픽 아트에 새로운 역사를 기록했습니다. ‘제인 아브릴’이라는 포스터는 제인 아브릴이라는 이름이 크게 쓰인 게 특징인데, 로트렉 이전에는 포스터에 사람 이름을 쓰지 않았다고 해요. 하지만 로트렉은 이름도 쓰고 모든 특징을 포착해서 썼다고 합니다. “광고잖아요. 제인 아브릴은 물랭 루즈 댄서 중에 다리가 제일 높이 올라갔대요. 포스터에 다리를 높게 올리고 있죠. 이걸 보고 사람들은 제인 아브릴의 무대를 찾기 시작했어요. 몽마르트는 그 당시 연예계였고, 로트렉은 요즘 사람으로 치면 방시혁이에요. 스타를 만들어주는 사람이었죠.” 그의 포스터는 당시 활동한 무희와 가수들을 스타로 만드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고, 현대 광고 역사에도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습니다.

항상 남을 올려다볼 수밖에 없었던 로트렉처럼 관람객들도 올려다볼 수밖에 없는 곳에 그의 사진이 걸려있다.

항상 남을 올려다볼 수밖에 없었던 로트렉처럼 관람객들도 올려다볼 수밖에 없는 곳에 그의 사진이 걸려있다.

정우철 도슨트가 제인 아브릴과 당시 분위기를 느낄 수 있는 영화로 ‘물랑 루즈’를 꼽았습니다. “니콜 키드먼이 연기했던 여자 주인공이 제인 아브릴 인생을 모티브로 한 캐릭터예요. 남자 주인공의 친구로 나오는 게 툴루즈 로트렉이죠.” 심여진 학생기자가 “다른 작품은 또 없나요?”라고 물었어요. “주인공들이 19세기 말 파리 벨 에포크 시기로 떠나는 영화 ‘미드나잇 인 파리’도 중간에 로트렉이 나와요.” 벨 에포크는 아름다운 시대라는 말로, 파리에 과거 볼 수 없었던 풍요와 평화가 찾아온 19세기 말에서 20세기 초를 일컫죠. 1892년에서 1895년까지 3년간, 로트렉은 몽마르트의 유곽에서 시간을 보냅니다. 일주일 내내 여자들이 쉬고 있거나, 화장하는 모습을 지켜봤죠. 19세기 후반, 판화의 최대 걸작으로 손꼽히는 로트렉의 판화집『엘르』는 이런 환경을 바탕으로 탄생했어요. “로트렉은 ‘사람들이 날 대할 때 외모가 아니라 내 본질을 봐줬으면 좋겠어, 내면을 봐줬으면 좋겠어’라고 말했어요. 남들이 자기를 그렇게 봐주기를 원했기 때문에 본인도 이런 사람들의 일상생활을 그려줘야 된다고 생각했죠. 이게 이 사람들의 본질이니까요.”

말과 승마 섹션에서는 평소 말을 좋아했던 로트렉의 수많은 드로잉을 만날 수 있다.

말과 승마 섹션에서는 평소 말을 좋아했던 로트렉의 수많은 드로잉을 만날 수 있다.

전시장 끝부분에는 말과 승마 그림이 가득한 공간이 있습니다. 로트렉은 평생 말에 집착했는데 자신이 한 번도 탈 수 없었던 대상이자 아버지가 사랑했던 동물인 말을 바라보며 아버지에 대한 미움과 그리움을 담아 계속 그려왔던 거죠. 1899년 봄 알코올 중독과 과대망상증 때문에 로트렉은 정신병원에 입원해요. 그곳을 벗어나려면 그림으로 정상 상태라는 것을 증명해야 한다고 생각했고, 어렸을 때 갔었던 서커스 장면을 오로지 기억에만 의존해 다 그렸죠. 의사는 이 작품을 보고 정상 판정을 합니다. “정신병원을 나온 로트렉이 한 ‘나는 드로잉으로 자유를 샀다’는 말이 유명하죠. 사연을 들은 친구들이 이 그림들을 책으로 엮어 출판해요.” 로트렉은 1901년 어머니가 지켜보는 가운데 37세의 나이로 생을 마감했습니다. 그는 고통 속에서도 인생의 아름다운 부분들을 포착해서 그리는 화가였죠. 전시를 통해 인생의 아름다운 부분들이 어떤 것이 있는 지 느껴보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정우철 도슨트 미니 인터뷰

소중 평가단이 정우철 도슨트에게 전시와 툴루즈 로트렉에 대해 궁금한 점을 질문하고 있다.

소중 평가단이 정우철 도슨트에게 전시와 툴루즈 로트렉에 대해 궁금한 점을 질문하고 있다.

윤서툴루즈 로트렉전만의 매력을 얘기해 주세요.
로트렉의 모든 포스터를 다 볼 수 있는 마지막 방을 꼽고 싶어요. 레플리카(원작자가 손수 만든 사본)지만 다른 미술관에서도 다 모아놓지 않거든요. 그리고 전시 구성이 그의 어릴 적부터 죽을 때까지 따라갈 수 있게 잘 정리돼 있어요. 작품도 작품이지만 로트렉이라는 사람에 대해 알고 갈 수 있는 첫 번째 전시입니다.

여진 ‘추한 것이 아름답다’는 말이 있었는데 어떤 의미를 담고 있나요.
로트렉은 귀족으로 태어났지만 밑바닥에 있는 진짜 가난하고 힘든 사람들을 지켜봤어요. 근데 일반 사람들은 그런 사람들을 추하게 생각했고 가난하다고 무시했는데 로트렉은 그런 사람들한테 더 인간다운 면이 있다고 생각했죠. 그걸 찾는 게 로트렉이었고 추함 속에서도 인간의 밝은 부분들이 있다 말하고 싶었던 것 같아요.

현지로트렉의 그림을 보면 팝아트 작가 앤디 워홀과 비슷한 느낌이 있는데 앤디 워홀이 그에게 영향을 받았나요.
앤디 워홀이 직접적으로 말한 적은 없는데 사람들은 영향받았을 거라고 얘기하고 있어요. 앤디 워홀이 만들었던 포스터가 로트렉의 포스터에서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었을 거라고 추측하는 거죠. 지금 친구들이 보는 포스터도 영향을 받은 면들이 많죠.


글=한은정 기자 han.eunjeong@joongang.co.kr, 사진=임익순(오픈스튜디오)·메이드인뷰, 동행취재=심여진(서울 을지초 4)학생기자·윤현지(서울 잠신초 5) 학생모델·황윤서(인천 청량초 3) 독자



체험평가단 취재 후기

몽마르트르 거리와 빨간 풍차, 네온사인이 반짝이는 물랭 루즈의 밤거리를 꾸며놓은 공간도 있다.

몽마르트르 거리와 빨간 풍차, 네온사인이 반짝이는 물랭 루즈의 밤거리를 꾸며놓은 공간도 있다.

로트렉은 포인트를 찾아내 그 점만 힘을 주는 특징이 있었어요. 예를 들면 별명이 검은 장갑인 사람이 있으면 그 사람은 무조건 검은 장갑을 끼고 있게 그려준다고 합니다. 한 사람의 마스코트를 만들어 주는 건데 너무 흥미로웠죠. 로트렉의 모든 이야기 하나하나가 너무 재미있었어요. 기회가 된다면 가족들과 다시 한번 가보고 싶은 전시예요.    심여진(서울 을지초 4) 학생기자

이 전시회를 통해 툴루즈 로트렉이 ‘포스터의 선구자’라고 불릴 만큼 위대한 사람이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죠. 그림 뒤에 글씨를 가려지게 써넣은 것은 그가 시작한 방법이었어요. 전시장에 높이 걸려있는 그의 사진이 있었는데요. 키가 작은 로트렉이 항상 남을 올려다본 것처럼 관람하는 사람들도 올려다보라는 의미로 높게 달았다는 게 흥미로웠죠. 전시를 보고 틀린 것이 아니라 다른 것이라는 걸, 그 다름을 이해해야 한다는 걸 다시 한번 배웠습니다.    윤현지(서울 잠신초 5) 학생모델

설명을 들으며 그가 화가가 된 계기가 안타까우면서도 흥미로웠습니다. 포스터에 사람의 이름을 쓰고 가게 이름을 반복해서 쓰는 등 현대 포스터에서도 볼 수 있는 것들을 처음으로 했다는 얘기에 놀라웠죠. 로트렉의 그림은 작은 체구와 달리 강한 힘이 느껴졌어요. 로트렉을 모르는 친구들도 한번 방문해서 그를 직접 만나보세요.    황윤서(인천 청량초 3) 독자



툴루즈 로트렉전-물랭 루즈의 작은 거인

장소 서울 서초구 예술의전당 한가람미술관 1층
전시 기간 5월 3일까지(매주 월요일 휴관)
관람 시간 매일 오전 10시~오후 7시
입장료 어린이 1만원, 청소년 1만2000원, 어른 1만5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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