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교사 어벤저스 뽑아 TV로 개학" 이 청원에 동의 쇄도한 까닭

중앙일보

입력

지난달 26일 오후 서울의 한 고등학교에서 교사가 온라인 수업 예행연습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지난달 26일 오후 서울의 한 고등학교에서 교사가 온라인 수업 예행연습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초·중·고 온라인수업에 대해 기발한 아이디어를 제시합니다"

지난 1일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 9일부터 시작하는 온라인 개학에 대한 제안을 담은 글이 올라왔다. 학년·과목별로 우수한 교사를 선발해 강의를 찍고, TV로 송출하자는 제안이다. 청원인은 스마트 기기 활용이 어려운 가구를 고려해 익숙한 TV로 강의를 보게 하자고 주장했다. EBS 1·2·PLUS1 등의 채널을 활용해 학년 과목별로 시간표를 짜 강의를 방송하고, 과제나 개별 지도를 교사가 지원하자는 것이다.

청원인은 "모든 학생이 같은 강의를 들어 공교육의 일관성을 지킬 수 있고, 개별 학교가 진행하는 온라인 수업에 대한 불만을 줄일 수 있다"는 점을 장점으로 꼽았다. 이 청원은 올라온지 이틀만인 3일 오후 2만7000여명의 동의를 얻었다. 온라인 커뮤니티나 학부모 SNS 등에서도 공유되면서 "좋은 아이디어"라는 반응이 이어지고 있다.

지난 1일 청와대 국민청원에 올라온 온라인 개학 관련 아이디어를 제시한 청원. 교사를 선발해 촬영한 영상을 EBS를 통해 보는 방식으로 원격 강의를 하자는 주장을 담은 청원은 이틀 만인 3일 오후 3시 기준 2만7000여명의 동의를 얻었다.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 캡처

지난 1일 청와대 국민청원에 올라온 온라인 개학 관련 아이디어를 제시한 청원. 교사를 선발해 촬영한 영상을 EBS를 통해 보는 방식으로 원격 강의를 하자는 주장을 담은 청원은 이틀 만인 3일 오후 3시 기준 2만7000여명의 동의를 얻었다.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 캡처

'현실성 없다'는데…학부모 "차라리 이렇게라도"

하지만 교육계는 대체로 회의적인 반응이다. 경기도의 한 고교 교사 A(33)씨는 "온라인 개학을 앞두고 학교의 가장 큰 고민은 내신에 들어가는 출결 관리"라면서 "출결 관리가 불가능한 TV를 활용하자는 건 현장을 모르는 주장"이라고 지적했다.

서울 지역의 한 초등학교 교사는 "이런 방식으로 진행하려면 차라리 이미 제작된 EBS 강의를 틀어주면 된다"면서 "강의할 교사를 구하기도 쉽지 않고, 어떻게 선발할지 기준을 정하기도 어렵다"고 말했다.

TV 수업은 일방적인 강의만 가능하다는 한계도 지적된다. 교육부 관계자는 "다양한 학습을 해야 할 아이들을 하루 6~7시간 동안 TV 앞에 앉아 있게 하는 건 바람직하지 않다"면서 "출석 등 학습 관리도 불가능하기 때문에 현실성이 떨어진다"고 밝혔다.

온라인 개학에 대한 우려. 그래픽=김현서 kim.hyeonseo12@joongang.co.kr

온라인 개학에 대한 우려. 그래픽=김현서 kim.hyeonseo12@joongang.co.kr

그럼에도 이런 주장이 관심을 받는 배경에는 온라인 개학에 대한 학부모와 일부 교사의 불안감이 있다. 중학생 자녀 2명을 둔 박모(42)씨는 "온라인 개학을 하면 학교·학년·과목별로 수업 방식이 제각각인 데다 자녀마다 다르기 때문에 혼란스러울 수 밖에 없다"면서 "차라리 한가지 방식으로 통일해야 마음이 편할 것 같다"고 말했다.

스마트 기기와 수업 프로그램을 다루기 어려운 학부모도 TV 수업에 긍정적인 반응을 보인다. 현재 교육부가 일선 학교에 제시한 원격 수업 프로그램은 EBS온라인클래스, e학습터를 비롯해 구글 행아웃·네이버 라인웍스·MS 팀즈·ZOOM(줌) 등 10여개에 이른다.

초등학생 학부모 김모(35)씨는 "온라인 강의 프로그램을 처음 깔아서 접속하는데 한동안 애를 먹었다"면서 "아직 학교에서 어떤 프로그램을 쓴다고 알려주지 않았기 때문에 얼마나 많은 프로그램을 준비해야 할지 몰라 걱정이 된다"고 말했다.

준비 촉박한 현장선 아우성…"출결·평가 등 가이드라인을"

지난달 31일 오전 대전시 유성구 대전교육정보원에서 원격수업에 대비해 시내 초중고교사들이 온라인 강의 실습을 하고 있다.연합뉴스

지난달 31일 오전 대전시 유성구 대전교육정보원에서 원격수업에 대비해 시내 초중고교사들이 온라인 강의 실습을 하고 있다.연합뉴스

온라인 수업에 우려가 큰 일부 교사들도 긍정적인 반응을 보인다. 전남 지역 고등학교 교사 B(27)씨는 "출결 관리나 학습지도가 어렵다는 문제가 있지만, 온라인 수업의 여러 문제를 해소할 수 있다"며 "학교마다 급하게 준비하다 보니 부작용에 대한 걱정이 크다"고 말했다.

교육계에서는 각 학교에 맡겨 놓은 원격 수업 방식에 대해 교육부가 더 뚜렷한 가이드라인을 내놔야 학부모와 현장의 불안감을 해소할 수 있다고 지적한다.

한국교원단체총연합회 관계자는 "온라인 개학에 대해 학교와 학부모의 부담감이 크다 보니 다소 현실성이 떨어지는 제안도 주목을 받는 것"이라며 "혼란이 생길 가능성이 큰 출결 관리, 평가 등에 대해 교육 당국이 더 책임감 있는 대안을 일선 학교에 줘야 한다"고 말했다.

남궁민 기자 namgung.min@joongang.co.kr

ADVERTISEMENT
ADVERTISEMENT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