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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코노미스트] "동물 안전 위협(수의사)" VS "과다 진료비 줄여야(약사)"

중앙일보

입력

‘수의사 처방대상 동물용 의약품 확대’ 대립… 의약분업, 한약조제권 이어 의약계 3차 분쟁

수의사들이 아픈 강아지를 진료하고 있다.

수의사들이 아픈 강아지를 진료하고 있다.

국내 가구 넷 중 하나가 반려동물과 함께 사는 시대다. 농림축산검역본부가 조사한 ‘2018년 동물보호에 대한 국민의식 조사결과’에 따르면 국내 반려동물 보유 가구 비율은 23.7%였다. 반려동물 보유 가구 수는 511만 가구로 추정되고, 인구로 따지면 1000만명에 이른다.

‘동물용 백신’ 취급 수의사 vs 약사 분쟁

반려동물을 키우는 가구가 늘면서 동물병원 수도 증가하고 있다. 행정안전부 지방행정인허가 정보에 따르면 국내 동물병원 수는 2015년 3561개, 2017년 3963개, 2019년 4577개, 2020년 3월 기준으로는 4577개로 늘었다. 동물 관련 약품을 판매하는 동물약국도 증가했다. 행정안전부의 같은 자료에 따르면 2015년 2402곳이었던 동물약국이 2017년 3692개, 2019년 5880개, 2020년 3월 기준으로는 6163개로 폭발적으로 증가했다. 동물약국은 약사가 각 지자체를 통해 동물약국개설등록증을 발급받은 후 동물의약품 취급을 등록한 약국을 의미한다. 대부분 인체의약품도 판매하면서 한 곳에 동물의약품도 함께 비치한 형태다.

반려동물의 건강관리 시장이 커지면서 이를 다루는 수의사와 동물약국 약사 간의 대립도 불거지고 있다. 핵심은 올해 농림축산식품부가 추진하는 ‘수의사 처방대상 동물용의약품 확대’에 대한 의견 충돌이다.

‘반려동물 종합백신(DHPPi)’ 놓고 첨예한 대립 

수의사가 병원에서 진료를 처방해야 약을 판매할 수 있는 ‘수의사 처방제도’는 2013년 8월 2일에 처음 도입됐다. 제도 도입 당시 전체 동물용의약품의 15% 수준에 해당하는 97개 성분, 1100개 품목이 수의사 처방대상으로 지정됐다. 또 제도를 만들면서 해당 성분 품목 확대에 대해서는 3년을 주기로 협의키로 했다.

제도 도입 3년이 지난 2016년 수의사 처방 품목 협의가 진행됐고, 2017년부터 처방대상 동물용의약품 성분이 확대돼 현재 전체 동물용의약품 중 24.5%에 해당하는 133개 성분, 2084개 품목이 수의사 처방전 없이는 판매될 수 없게 됐다. 그 후로 3년이 지난 현재 다시 ‘수의사 처방대상 동물용 의약품 확대’에 대해 논의할 때가 도래한 것이다.

수의사 측과 동물약국 약사 측은 첨예하게 대립하고 있다. 지난 3월 17일 한국동물병원협회는 수의사 처방 품목 확대를 촉구하는 내용의 성명서 ‘수의사 처방대상 동물용의약품 확대, 더 이상 미뤄서는 안 된다’를 내놨고, 이보다 하루 전날 대한동물약국협회에서는 품목 확대를 반대하는 성명서 ‘농림부는 국민을 기만하는 날치기 행정을 즉각 중단하라’를 발표했다.

두 집단이 가장 크게 대립하는 품목은 ‘반려동물에 투입되는 종합백신(DHPPi)’이다. 이 품목은 2017년 수의사 처방대상 성분으로 포함하려다, 정식 고시개정 하루 전날 몇 단체의 반대로 목록에서 빠진 바 있다. 올해는 포함될 수 있을지, 아니면 올해도 빠질 지가 이번 논쟁의 핵심 대목이다. 현재는 반려동물용 백신을 동물병원 진료 없이 동물약국에서 구입할 수 있다.

먼저 한국동물병원협회 입장은 이렇다. 현재 동물약국에서 판매하는 반려동물용 백신은 주사기를 이용해 동물에게 약물을 투여하는 형태인데, 수의사가 아닌 보호자가 약물을 투입하다가 부작용이 일어나 반려동물 안전을 위협할 수 있다는 것이다. 또 이 같은 행위는 ‘수의사법 제 10조 무면허 진료 행위’에 해당돼 반려동물 보호자가 위법자가 될 수 있는 점을 지적하고 있다.

‘안전’이냐, ‘비용’이냐, ‘집단이익’이냐

수의사 처방대상 동물의약품 협의안에서 수의사와 약사 두 집단의 의견이 가장 첨예하게 대립하는 동물용 백신.

수의사 처방대상 동물의약품 협의안에서 수의사와 약사 두 집단의 의견이 가장 첨예하게 대립하는 동물용 백신.

이병렬 한국동물병원협회장은 “백신 및 주사용 동물약품은 합법적으로 동물약국에서 판매되는데 판매한 사람은 처벌받지 않고 주사를 놓은 반려동물 보호자만 범죄가 되는 아이러니한 상황이 발생할 수 있다”며 “반려동물의 안전을 위해서 백신뿐 아니라 주사투약용 동물약품 전 품목을 수의사 처방대상약품으로 지정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영호 반려동물 임상수의사는 “백신을 투여하기 전에 항상 기초적인 신체검사가 우선돼야 한다”며 “그 질병에 이미 감염돼 있거나 다른 기저 질환으로 인해 면역력이 떨어진 상황 등 접종을 보류해야 하는 경우가 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그는 또 “두드러기, 피부부종에 심하면 발작이 일어날 수 있는 등 접종 후 부작용이 우려되는데 약국에서는 여기에 대응할 수 없다”고 말했다.

대한동물약국협회는 설문조사 결과를 근거로 반대 주장을 한다. 대한동물약국협회는 리서치기업 마크로밀 엠브레인과 함께 3월 5일부터 닷새 동안 전국 반려동물 보호자 1000명을 대상으로 ‘반려동물 예방접종 및 백신’ 관련 설문조사를 진행했다. 설문조사 결과를 보면 응답자 67%가 ‘수의사 처방 대상 품목 확대’ 논의에 반대한다고 답했다. 또 응답자 79.5%가 반려동물용 의약품을 직접 구매해 투여한 경험이 있고, 직접 투여한 이유로는 ‘저렴한 비용’이 33.5%로 가장 높은 비중을 차지했다. 또 응답자의 25% 이상이 ‘동물병원의 예방접종 비용부담이 커 접종을 포기하거나 중단한 경험이 있다’고 답했다.

처방전 없이 약국에서 약품을 살 수 있어야, 비싼 진료비용을 줄일 수 있다는 것이다. 강병구 대한동물약국협회장은 “한번 백신을 접종할 때 2주 간격으로 5~6회 진행한다. 이때 동물병원에서 진료를 본 후 백신을 맞으면 한번 맞을 때마다 3~4만원이 든다. 동물약국에서는 백신 한 제품당 5000원에 구입할 수 있다”고 말했다. 강 회장은 “한 마리만 키우면 상관없지만 새끼를 낳아서 한 집에 강아지가 5마리 정도가 있는데 동물병원에 가면 한 마리당 거의 15만원이 들어, 5마리 모두를 접종하려면 70여 만원이 든다. 약국에서 백신 판매가 금지된다면 경제적 여유가 없는 가정은 반려동물의 백신접종을 포기하라는 말과 같다”며 “백신 구매 제한으로 예방접종 비율이 낮아질 수 있고 이는 곧 질병 발생위험도를 높이는 행위”라고 말했다.

10년째 반려견을 키우고 있는 최명수(28)씨는 “한 번 갈 때마다 기본적으로 동물병원 진료비로 2만원이 드는데 항상 받는 약은 같다”며 “동물약국에서 같은 약을 구입할 수 있다면 당연히 약국을 찾게 된다”고 말했다.

‘수의사 처방대상 동물용의약품 확대’를 담당하고 있는 농림축산식품부 AI방역과 관계자는 “반려동물용 종합백신, 항생제 등이 이번 확대 품목으로 논의되고 있는 건 맞지만 아직 협의 단계이기 때문에 결정된 것은 없다”고 말했다. 또 “수의사와 약사 간 두 집단 이익을 고려하는 행위는 없고, 중립적인 입장에서 전문 의료인 처방 없이 부작용이 생길 위험에 대해서만 집중적으로 검토한다”며 “수의사, 약사 등 관련 집단이 모여 전반적으로 협의해 결정할 것”이라고 말했다.

‘전자처방전 발급 의무화’에서도 주장 엇갈려

지난 2월 28일부터 시행하는 ‘수의사 전자처방전 발급 의무화’에 대해서도 의견은 갈린다. 전자처방전 발급 제도는 이전까지 수기로 발급하던 처방내역을 전자시스템으로 전환하는 제도다. 이와 관련해 지난 3월 2일 ‘수의사 3000인 선언. 대한민국에서 수의사로 살아갈 자신이 없습니다’라는 제목의 국민청원글이 게시됐다. 3월 말까지 6000여 명이 서명에 참여한 이 청원은 최근 시행한 수의사 전자처방전 발급 의무화에 대해, ‘수의사 제재만 강화하지 말고, 약사법 제 85조 7항에 적힌 수의사처방제 약사예외조항을 먼저 없애라’고 주장한다.

현행 약사법 중 수의사처방제 약사예외조항에 따르면 동물약국을 개설한 약사는 주사용 동물약품을 제외하면 수의사 처방대상 동물용의약품을 수의사 처방전 없이도 판매할 수 있다. 이번 수의사 처방전 확대 품목에 백신 외에도 항생제 약품이 거론되고 있지만, 백신처럼 문제되지 않는 이유기도 하다. 백신은 주사투약 제품이기 때문에 처방대상이 되면 약국에서 판매하지 못하고, 항생제와 같은 약품은 처방대상에 포함돼도 약사법의 예외조항으로 그대로 약국에서 판매할 수 있다.

이 한국동물병원협회장은 “전자처방전 발행 자체를 반대하는 것은 아니다”라며 “하지만 동물약품 오·남용 방지가 처방전 발행의 목적이라면 이보다 약사법 예외 조항을 먼저 삭제하는 것이 설득력 있다”고 말했다.

반면 대한동물약국협회는 성명서 ‘전자처방전 발급 의무화를 환영한다’를 발표하며 “전자처방전이 동물의료의 투명성을 높일 것”이라고 분석했다. 강 대한동물약국협회장은 “진료에 사용한 약물을 단순히 프로그램에 입력해 전자문서로 저장하는 것 외에도 실제 처방전이 발급돼야 한다”며 “실제 처방전이 발행되면 동물 보호자는 실물 처방전을 발급받고 원하는 동물약국에서 조제 받음으로써 처방 내역을 확인 받을 수 있다”고 말했다. 그는 또 “현재는 동물병원에서 약을 제조한 후, 반려동물 보호자에게 어떤 약이 얼마만큼 사용되는지 공개하지 않는다. 현재 의사와 약사 간의 업무를 분리한 의약분업처럼 수의사와 약사간의 의약분업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 라예진 기자 rayeji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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