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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가전쟁 2라운드는 ‘텍사스 대 석유수출국기구(OPEC)’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내 친구 무함마드 빈살만 사우디아라비아 왕세자, 푸틴 러시아 대통령과 막 회담을 마쳤다. 1000만 배럴 또는 그 이상을 감산(석유 생산 감축)할 것이라 기대하고 또 바란다. 만약 그렇게 된다면 석유ㆍ가스 산업에 굉장한 일이 될 것이다.”

지난해 11월 사우디아라비아 다란 플라자컨퍼런스센터에서 열린 아람코 컨퍼런스 현장. [로이터=연합뉴스]

지난해 11월 사우디아라비아 다란 플라자컨퍼런스센터에서 열린 아람코 컨퍼런스 현장. [로이터=연합뉴스]

2일 오전 10시 32분(현지시간)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자신의 트위터 계정에 글을 올렸다. 짤막한 글이었지만 국제 원유시장 판도를 바꾸기엔 충분했다. 이후 열린 기자회견에서 트럼프 대통령은 “아마도 1000만, 많으면 1500만 배럴까지 감산이 가능할 것이라 본다. 곧 발표가 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날 미국 서부 텍사스산 원유(WTI) 가격은 배럴당 24.71달러로 단숨에 튀어 올랐다. 전날(20.31달러)과 견줘 21.7% 점프했다. 사우디아라비아, 러시아 간 유가 전쟁이 발발한 이후 추락을 거듭하던 국제 석유시장에 오랜만에 전해진 낭보였다.

파이낸셜타임스(FT)에 따르면 트럼프 대통령의 감산 합의 발표 이후 영국 북해 브렌트유 값은 장중 50% 가까이 뛰기도 했다. 장중 배럴당 36.29달러를 찍었는데 전일 대비 47% 높은 가격이다. FT는 “하루 유가 상승 폭으로는 역대 최대”라고 전했다.

지난해 11월 23일(현지시간) 미국 텍사스 원유생산 시설. [로이터=연합뉴스]

지난해 11월 23일(현지시간) 미국 텍사스 원유생산 시설. [로이터=연합뉴스]

최근 한 달 사이 국제유가는 50% 이상 급락했다. 지난달 4일 열린 ‘석유수출국기구(OPEC) 플러스(+)’ 회의가 발단이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산으로 석유 수요가 급감하고 유가가 불안하게 움직이자 사우디아라비아 주도로 감산 논의가 이뤄졌다. 여기에 러시아가 반기를 들었고 회의는 소득 없이 끝났다.

갈등은 여기서 끝나지 않았다. 사우디아라비아는 역으로 증산 카드를 꺼내 들었다. 석유 생산량 3위인 러시아가 2위 사우디아라비아 견제에 나섰다는 판단에 빈살만 왕세자가 ‘응징’에 나섰다. 러시아 역시 증산 계획을 발표하며 맞불을 놨다. 그 사이 50달러대였던 유가는 20달러 선까지 수직 추락했다.

유가 전쟁으로 미국 내 셰일산업까지 역풍을 맞자 트럼프 대통령이 중재에 나섰다. 잇따른 전화 회담 끝에 일일 생산량 기준 1000만 배럴 이상 감산이라는 원칙에 합의하는 성과를 냈다. 하지만 넘어야 할 산은 여전히 많다.

영국 일간 가디언은 “코로나19 확산으로 인해 전 세계 원유 수요는 일일 2000만 배럴 감소할 것”이라고 추산했다. 트럼프 대통령이 밝힌 1000만~1500만 배럴 감축으로는 유가 시장을 안정시키기에 여전히 부족하다는 의미다.

오스트리아에 있는 석유수출국기구(OPEC) 본부 간판.[로이터=연합뉴스]

오스트리아에 있는 석유수출국기구(OPEC) 본부 간판.[로이터=연합뉴스]

그리고 원유 생산 ‘빅3’가 감산하겠다는 원칙적 합의를 했다고 해도 실제 감축에 나서는 건 다른 문제다. 국가별로 어느 수준으로, 어떤 일정으로 감축해나갈지 협의하는 과정이 남았다. 사우디아라비아는 OPEC 회원국을 포함한 주요 산유국 모두가 모이는 긴급회의 소집을 요청한 상태다. 이번 긴급회의에서 모든 산유국이 만족할 만한 결과가 나올지도 미지수다.

결국 칼자루는 1위 원유 생산국인 미국이 쥐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이 중재하는 모양새를 취했지만 미국이 먼저 행동에 나서지 않는다면 이번 합의는 무용지물이다. 미국 경제전문방송 CNBC는 “OPEC이 긴급회의를 소집했는데 이들 회원국은 결국 미국이 먼저 감산에 나서는지, 텍사스 철도위원회(TRC, 철도위원회란 이름을 내걸고 있지만 실제로는 미국 내 석유ㆍ가스산업을 총괄하는 기구)와 캐나다가 어떻게 움직이는지를 지켜볼 것”이라고 지적했다.
조현숙 기자 newear@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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