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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럼프 끼어든 '원유전쟁 2막'···감산 놓고 밀당 시작됐다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국제원유 시장에서‘트럼프의 트위터 효과’는 컸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트위터가 2일(현지시간) 국제원유 시장을 다시 흔들었다. 트럼프의 트윗 때문에 국제유가(WTI)가 순식간에 30% 급등했다. 시간이 흐르면서 오름폭이 줄었다. WTI 이날 뉴욕 종가는 배럴당 25.32달러였다. 하루 전보다 24.67% 올랐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원유전쟁을 끝내기 위해 직접 나섰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원유전쟁을 끝내기 위해 직접 나섰다.

트럼프는 이날 트위터를 통해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과 대화한 나의 친구 'MBS'(무함마드 빈 살만 사우디 왕세자)와 방금 이야기했다"며 "난 그들이 (원유를)  1000만 배럴 정도 감산할 것으로 예상하고 희망한다"고 썼다.

하루 1000만~1500만 배럴 감산은 야심찬 포부일뿐이다. #어느 나라가 얼마를 감산할지를 두고 밀고당기가 시작된다. #미국의 감산 규모에 협상 성패가 달렸다. #트럼프가 제각각인 셰일업체를 설득해낼지는 미지수다.

2018년 트럼프 트윗으로 하루 100만 배럴 증산 을 이끌어냈다.

트럼프는  "그런 일이 일어난다면 원유 및 가스 산업에 대단한 일일 것"이라고 적었다. 1000만 배럴은 전 세계 하루 원유 소비량(1억 배럴)의 10분의 1에 해당하는 양이다.

다음 트윗에서 트럼프는 한 걸음 더 나갔다.  "감산량이 1500만 배럴에 이를 수도 있다"면서 "모두를 위해 좋은 소식"이라고 덧붙였다.

트럼프는 트윗은 과장으로 유명하다. 하지만 원유감산 트윗은 시장이 기민하게 반응했다. 2018년 트럼프의 트윗 위력을 경험해서다. 당시 트럼프는 트위터를 통해 중동 안보를 거론하며 증산을 압박했다. 그 바람에 석유수출국기구(OPEC)와 러시아 등이 하루 100만 배럴씩 더 원유를 생산하기로 했다.

협상의 핵심은 감산쿼터 배분!

이날 트럼프의 트윗 직후 OPEC의 ‘조절자’인 사우디아라비아는 빠르게 움직였다. 사우디는 OPEC+(석유수출국기구 회원국과 러시아 등 협의체) 긴급회의를 요청했다.

반면 러시아 첫 반응은 뜻밖이다. 블룸버그 통신은 “러시아 쪽이 트럼프의 트윗 내용과는 달리 사우디와 협의한 사실을 부인했다”고 전했다.

또 러시아는 비상계획도 마련 중이다. 블룸버그는 “러시아가 국제유가가 20달러 선에서 유지될 것으로 가정하고 비상 자금조달에 나섰다’고 이날 전했다. 기름값 추락에 따른 재정적자를 메우기 위해 1조~1조5000억 루블(약 16조~25조원) 어치 국채를 추가로 발행할 태세다.

다만, 트럼프는 며칠 전블라드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과 전화통화에서 에너지 가격 안정을 위해 노력하기로 했다. 일단 감산 협상이 시작될 가능성은 커 보인다. 하지만 어느 나라가 얼마를 감산할지가 핵심이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감산 논의를 알린 2일(현지시간) 미국 텍사스산원유(WTI) 가격이 가파르게 올랐다. WTI 일일 변동 그래프(단위: 달러/배럴)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감산 논의를 알린 2일(현지시간) 미국 텍사스산원유(WTI) 가격이 가파르게 올랐다. WTI 일일 변동 그래프(단위: 달러/배럴)

전쟁에서 휴전협상은 전투기간보다 길다

원유전쟁이 트럼프가 나서면서 2단계로 접어들었다. 휴전협상 국면의 시작이다. 휴전의 목표는 분명하다. 감산이다.

트럼프는 놀라운 감산 규모를 제시했다. 하루 1500만 배럴! 세계 하루 소비량의 10분의 1이 넘는 규모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로 원유 수요가 급감하는 점을 고려하더라도 아주 야심 찬 목표다.

미 에너지컨설팅회사인 래피던의 로버트 맥널리 대표는 최근 기자와 통화에서 “원유 생산량을 하루 100만 배럴 줄이는 협상은 전쟁을 끝내는 일만큼이나 어렵다”며 “우리는 휴전협상이 전투기간보다 길었다는 점을 기억해야 한다”고 말했다.

총대를 메줄 리더가 감산 승패를 결정한다

사우디-러시아 공조체제인 OPEC+는 2016년 이후 표면적으론 순조롭게 감산 합의에 이르렀다. 하지만 이면에선 사우디의 양보가 합의 열쇠였다.

OPEC 역사가인 줄리아노가라비니 이탈리아 로마트레대 교수(역사)는 최근 기자와 통화에서 “감산 합의분의 대부분을 사우디가 감당했다”며 “러시아는 아주 조금 생산량을 줄였다”고 말했다.

가라비니 교수의 말은 감산이나 증산 합의가 이뤄지고 유지되기 위해서는 카르텔 조절자(swing producer)의 역할이 핵심이라는 얘기다. 이번에도 세계 1위 원유 수출국인 사우디가 감산의 상당 부분을 떠맡을 가능성이 크다.

문제는 미국이다. 미국은 1차 원유전쟁인 1990년대 초반에도 시장 교란자였다. 당시엔 알래스카 원유가 국제시장에 쏟아져 나왔다. 2차인 이번에도 근원적인 원인을 제공한 쪽은 미국 셰일업체들이다.

블라드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감산 협상에서 미국이 감당해야 할 몫을 제시하며 트럼프 대통령을 압박할 가능성이 크다.

블라드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감산 협상에서 미국이 감당해야 할 몫을 제시하며 트럼프 대통령을 압박할 가능성이 크다.

미국 셰일의 감산을 놓고 밀고 당기기가 시작된다

사우디와 러시아는 감산 협상 테이블에 미국의 몫을 올려놓을 태세다. 미국이 ‘의미 있는 감산’을 하라고 압박할 게 뻔하다.

미국 내 원유시장에서 트럼프의 처지는 푸틴이나 사우디 실력자인 무함마드 빈 살만 왕세자와는 다르다. 푸틴 등은 감산 등을 직접 지시ᆞ조율할 수 있다. 반면 트럼프는 규모가 작고 숫자가 많은 셰일업체를 하나로 묶어 감산 합의를 끌어내야 한다.

미 경제전문 매체인 CNBC는 이날 전문가의 말을 빌려 “미국 셰일회사들의 정치적 상황은 아주 복잡하다”고 전했다. 트럼프의 뜻대로 감산에 합의하더라도 시간이 걸릴 수밖에 없다는 얘기다.

강남규 기자 dismal@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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