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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예영준 논설위원이 간다

“한풀이 어림도 없어요, 북한 사과를 받아내야지 눈을 감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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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3면

예영준 기자 중앙일보

문 대통령에 북한 소행 따진 천안함 유족 윤청자 할머니

천안함 피격으로 아들을 잃은 윤청자 할머니(왼쪽)가 지난달 27일 국립대전현충원에서 열린 서해수호의 날 기념식에서 분향을 하던 문재인 대통령을 붙잡고 ’천안함이 북한 소행인가, 누구 소행인가 말해달라“며 분명한 입장 표명을 요구하고 있다. [연합뉴스]

천안함 피격으로 아들을 잃은 윤청자 할머니(왼쪽)가 지난달 27일 국립대전현충원에서 열린 서해수호의 날 기념식에서 분향을 하던 문재인 대통령을 붙잡고 ’천안함이 북한 소행인가, 누구 소행인가 말해달라“며 분명한 입장 표명을 요구하고 있다. [연합뉴스]

천안함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46명의 장병이 희생된 지 꼬박 10년 세월이 지났지만, 우리는 아직도 아무에게 책임을 묻지 못했고 사과를 받지도 못했다. 더구나 우리 사회는 천안함의 진실이 북한 소행이라 믿는 세력과 이를 부인하는 세력으로 나누어져 있다. 치유될 수 없는 상처와 아픔을 안고 사는 유족들을 더 큰 고통의 심연으로 몰아세우는 건 바로 이 대목이다. 천안함 사건에 대한 역사적 매듭을 짓고 상처를 치유하고 교훈을 새겨나가야 할 정부가 그 책임을 소홀히 하고 있는 탓이 크다.

“대통령 답변 진심인지 모르겠다 #좌초 주장엔 끝까지 찾아가 따져 #다음 대통령에도 계속 물어볼 것”

이런 현실을 한 백발의 노파가 새삼 일깨워 주었다. 천안함 피격으로 막내아들(고 민평기 상사)을 잃은 윤청자(77) 할머니는 지난달 27일 서해수호의날 기념식에서 대통령의 동선을 가로막고 “천안함이 북한 소행이냐 아니냐”고 따져 물었다. 충남 부여군 금공리의 농가를 찾아가 윤 할머니를 만났다.

윤청자 할머니가 인터뷰를 마친 뒤 민평기 상사의 영정을 어루만지고 있다. 프리랜서 김성태

윤청자 할머니가 인터뷰를 마친 뒤 민평기 상사의 영정을 어루만지고 있다. 프리랜서 김성태

대통령을 붙잡고 따져 묻는 게 쉽지 않은 일인데, 어디서 그런 용기가 나왔습니까. 경호원들도 좍 깔렸을 텐데요.
“늙은이라 그런 건 잘 모르겠고요. 반드시 문 대통령의 생각을 확인해봐야겠다, 그런 생각밖에 없었어요.”
왜 그 질문을 꼭 해야겠다고 생각했습니까.
“천안함이 좌초된 것이라고 우기는 사람들이 아직도 있어요. 그럼 가해자가 없는 것이잖아요. 누구에게 사과를 받고 죗값을 치르게 합니까. 평택에 가서 배를 보면 금세 압니다. 좌초된 거라면 앞이나 뒤가 부서져야지, 어떻게 가운데가 뚝 부러집니까. 대통령이 분명히 밝혀주면 끝날 일이잖아요.”
유족들끼리 의논한 뒤 할머니가 대표로 물어보신 게 아니었나요.
“천만에요. 그날 대통령이 참석하는 줄도 모르고 갔어요. 작년에도, 재작년에도 안 왔으니까요. 더구나 올해는 코로나19가 심하잖아요. 대통령이 오는 줄은 행사 직전에서야 알았지요. 마침 내 자리가 영부인 바로 뒤였어요. 가슴이 쿵덕쿵덕 뛰어서 주체를 못 하겠는데 대통령과 유족이 차례로 분향하는 순서가 있었어요. 냅다 다가가서 대통령 팔뚝을 붙잡았죠. 예의가 아니라는 건 알지만 우물쭈물하다가는 기회가 없겠다 싶었어요.”

그 이후 일어난 상황은 TV 화면으로 방영된 대로다. 할머니는 “대통령님, 이게 북한 소행인가 누구 소행인가 말씀 좀 해주세요”라고 물었고, 잠시 당황한 표정을 짓던 문 대통령은 “북한 소행이라는 것이 정부 입장 아닙니까”라고 답했다. 뒤이어 “여적지(여태까지) 북한 소행이라고 진실로 해본 적이 없어요. 이 늙은이 한 좀 풀어주세요”라고 하자 문 대통령은“정부 공식 입장에는 변함이 없습니다”고 했다.

천안함 수색 도중 숨진 고 한주호 준위의 10주 추모식이 지난달 30일 경남 창원시 진해루에서 열렸다. 최정동 기자

천안함 수색 도중 숨진 고 한주호 준위의 10주 추모식이 지난달 30일 경남 창원시 진해루에서 열렸다. 최정동 기자

대통령 답변에 맺힌 한이 좀 풀렸습니까.
“숨쉬기가 조금 가벼워지긴 했지만 한이 풀리는 건 어림 없어요. 북한으로부터 사과를 받아야죠. 그런데 대통령이 사과를 받아낼 분 같아 보이지는 않아요.”
왜 그렇게 생각하는지요.
“이왕 말할 거 딱 부러지게 했으면 좋았죠. 형식적으로 한 말인지, 진심으로 한 말인지 아직도 모르겠어요. 분향할 때 쫓아가서 물어본 것 말고도 한 번 더 얘기했어요. 행사 마지막에 대통령 내외가 천안함 용사들의 묘를 돌면서 꽃을 놓고 비석을 어루만지는 순서가 있었어요. 우리 아들 비석 앞으로 왔을 때 다시 말했죠. ‘대통령님, 이번에는 확실히 밝혀 주세요’ 하니 말없이 고개만 끄덕이더라고요.”

윤 할머니는 “정부가 천안함의 의미를 축소하고 홀대한다”며 이런 얘기를 들려주었다.

“2014년 세월호 사건 때에요. 자식 앞세운 아픔을 먼저 겪은 사람으로서 가만히 있지를 못하겠더라고요. 내 손으로 녹두 농사지은 거로 죽을 쑤고 도시락 160인분을 갖고 진도로 달려갔어요. 세월호 부모들을 얼싸안고 울었어요. ‘마음은 알지만 그래도 뭘 먹어야 한다’며 죽을 떠먹였어요. 내가 아들 보냈을 때 물도 못 마실 지경이었거든요. 그 뒤 문재인 정부가 세월호 희생자에 대한 추모는 끔찍하게도 하는데 천안함 행사에는 대통령이 오지 않고 박대하더라고요. 크게 서운했어요. 더구나 우리 아이들은 나라 지키다 당한 것이잖아요.”

윤 할머니의 ‘기습 공세’를 받은 사람은 문 대통령이 처음이 아니었다. 그는 “높은 분들 중에 나한테 당한 사람이 여러 명 있다”며 박지원 의원, 강기갑 전 의원, 조현오 전 경찰청장 등의 실명을 거명했다. “북한 소행을 부인한 사람은 끝까지 기억해서 따진다”며 예를 들기도 했다.

“10년 전 아직 우리 아이 시신 인양도 못 했을 때였어요. 이제나저제나 TV 화면만 쳐다보고 있는데 송영길씨가 ‘좌초인지, 북한 소행인지 분명하지 않다’고 하는 거예요. 얼마 뒤 (송영길씨가) 인천시장이 되어 대북지원을 한다는 뉴스가 나왔어요. 그 길로 고속버스 타고 인천시청으로 갔는데 출장 중이어서 못 만났어요. 그러다 몇 년 전 백령도 가는 길에 송 시장과 마주쳤어요. 옳거니 하고 따져 물었죠.”

2010년 북한에 의한 폭침이라 결론지은 정부 발표에 불복한 참여연대가 유엔에 반박서한을 보냈을 때도 마찬가지였다.

“유족회장이 먼저 항의를 갔다가 오히려 설득을 당했는지 제대로 말도 못하고 온 것 같았어요. 내가 분통이 터져 찾아갔죠. 멱살이라도 잡고 따지려 했는데 다들 선량하게 생긴 분들이어서 그러진 못하고 ‘제발 멍든 가슴에 못 박지 말라’며 무릎 꿇고 빌었어요. 거기 있던 한 사람은 자기 아버지도 6·25 때 돌아가셨다고 하더라고요.”

윤 할머니는 아들을 떠나 보낸 지 3개월 만인 2010년 6월 유족 보상금 1억원과 국민 성금 898만원을 모두 “국방에 보태달라”며 정부에 기탁했다. 해군은 그 돈으로 K-6 기관총을 구매해 천안함 폭침 날짜를 따 ‘3·26 기관총’이라고 명명했다. “어떻게 기부할 결심을 하셨나”고 묻는 순간, 인터뷰 내내 침착하던 할머니의 목소리가 높아졌다.

“기부라는 말 제발 쓰지 마세요. 내가 참지 못해요. 원래 내 돈이 아니고 국민의 돈이잖아요. 그걸 나라에 되돌려준 것뿐이에요. 천안함과 같은 일을 되풀이해 당하지 않기 위해서는 무기 하나라도 튼튼히 해야 할 것 아닙니까.”

숙연한 마음으로 집을 나서며 마지막으로 물었다.

만일 다시 또 대통령을 만나면 어떻게 하시겠어요.
“북한 소행이라 했으니 이젠 앞으로 어떻게 할 건지 물어봐야죠. 다른 사람으로 대통령이 바뀌어도 마찬가지예요. 끝까지 물어볼 겁니다.”

화병 생겨 하나둘씩 아들곁으로 떠나는 유족들

이성우 천안함46용사 유족협의회장. 최정동 기자

이성우 천안함46용사 유족협의회장. 최정동 기자

자식을 먼저 잃는 일을 참척(慘慽)이라 한다. 겪어 보지 않은 사람은 도저히 헤아릴 수 없는 고통이다. 숨진 이상희 하사의 아버지인 이성우(59) 천안함46용사 유족협의회 회장은 “천안함 유족들은 한날한시에 자식을 가슴속에 묻은 사람들”이라며 “10년이 지난 지금도 고통이 더 깊어졌지 나아진 건 없다”고 말했다.

천안함 사건 이후 없던 병이 생겨 아들 곁으로 간 유족이 여러 명이다. 고(故) 박석원 상사의 부친은 2018년 폐암으로 세상을 떠났다. 목사였던 부친은 젖먹이 양자를 두 명 입양해 먼저 간 아들 대신 키웠는데 장성하는 걸 못 보고 떠났다. 고 김선명 병장의 부친도 비슷한 무렵 췌장암에 걸려 아들 곁으로 갔다. 고 민평기 상사의 모친 윤청자 할머니도 방광암에 걸린 남편과 3년 전 사별했다.

이성우 회장은 “건강하던 분들이 그렇게 됐으니 화병이나 마찬가지”라며 안타까워했다. 또 “고 정범구 병장은 홀어머니 슬하에서 자랐는데 그 어머니가  뇌경색에 걸렸다. 아들이 있는 대전현충원 옆으로 이사가 혼자 묘소에 왔다 갔다 하며 지낸다고 들었다”고 말했다. 지난달 27일 열린 서해수호의 날 행사에는 46명의 가족 중 13명의 유족이 참석하지 않았다. “천안함 10주기인 올해 행사에도 오지 못할 만큼 생업이 어렵거나 외부와의 연락을 끊고 산다는 얘기”라고 이 회장은 설명했다.

한편 폭침당한 천안함 수색과 인양작업 도중 숨진 고 한주호 준위의 추모식이 지난달 30일 고인의 동상이 있는 경남 창원시 진해루에서 열렸다. “코로나 유행으로 최대한 조촐하게 10주기를 보냈다”고 부인 김말순씨는 전했다.

예영준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