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서소문 포럼

진실의 순간에 직면한 대한민국

중앙일보

입력 2020.04.02 0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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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5면

정재홍 기자 중앙일보 부데스크
정재홍 국제외교안보에디터

정재홍 국제외교안보에디터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여파가 심각하다. 미국은 3월 셋째 주(15~21일) 실업급여 신청이 328만여건으로 사상 최고치를 기록했다. 코로나19로 인해 미국 실업률은 반세기 만에 최저 수준인 3.5%에서 몇 개월 내 13%로 치솟을 수 있다고 골드만삭스는 전망했다. 중국도 사정이 어렵기는 마찬가지다. 당초 중국은 올해 6%가량의 경제 성장률을 예상했지만 코로나19 사태로 최근 일부 주요 기관의 전망치가 1%대 초반까지 하향 조정됐다. 독일 금융사 알리안츠는 코로나19 위기가 장기화하면 올해 세계 경제 성장률은 -1.5%로 뒷걸음칠 것으로 예상했다.

코로나 여파로 한국호 운명 갈림길
이념 치우친 국정 운영에서 벗어나
최고 전문가가 위기 관리하게 해야

세계 경제 침체는 무역 의존도가 높은 한국 경제에 엄청난 타격이 된다. 영국 경제연구기관 이코노미스트 인텔리전스 유닛(EIU)은 올해 한국의 경제성장률이 -1.8%를 기록할 것으로 전망했다. 정부 전망치(2.4%)는 이미 불가능한 목표가 됐다.

코로나19 사태는 이전 위기들보다 더 크고 길게 한국 경제에 생채기를 낼 수 있다. 1997년 국제통화기금(IMF) 외환위기 때 한국은 파산 위기를 맞았지만, 미국·유럽 등 주요국 경제는 순항했다. 한국은 뼈를 깎는 구조조정으로 체질을 개선하고 경쟁력을 높여 무역 강국으로 다시 부상할 수 있었다. 2008년 금융위기 때는 미국·유럽이 휘청거렸지만 10% 안팎으로 고성장하는 중국으로의 수출이 크게 늘며 위기를 극복했다.

서소문 포럼 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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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은 한국 경제가 비빌 언덕이 사라졌다. 미국과 유럽은 마이너스 성장이 예상되고 중국도 1%대 성장에 그칠 전망이다. 수출에 의지해 한국 경제를 지탱하는 건 기대하기 어렵다. 한국에 진짜 위기가 닥쳤다. 위기는 지도자의 역량을 시험한다. 현명한 지도자는 위기를 기회로 만들지만, 나쁜 지도자는 위기에 무너진다. 이번 위기를 어떻게 대처하느냐에 따라 한국호의 운명이 결정될 것이다.

문재인 대통령은 코로나19 사태로 인한 경제 위축을 극복하기 위해 100조원 규모의 기업 구호 긴급자금 투입을 결정했다. 사상 최대 규모다. 사태의 심각성을 고려하면 필요한 조치다. 코로나19 위기는 쉽게 끝나지 않을 것이다. 한국과 중국은 진정 국면에 진입했으나 미국·유럽 등 전 세계는 확산일로다. 이런 때일수록 현실을 냉철하게 보고 희망에 치우친 낙관주의를 경계해야 한다.

베트남전쟁에서 자신이 몰던 전투기가 격추돼 7년 반 동안 포로가 돼 혹독한 고문을 견뎠던 제임스 스톡데일 전 미국 해군 소장은 살아남은 비결에 대해 “결국에는 승리할 것이라는 믿음과 함께 잔인한 현실을 직시할 수 있는 의지 덕분”이라고 밝혔다. 그는 “포로 생활에서 살아남지 못한 사람은 낙관주의자들이었다”며 “그들은 ‘성탄절엔 나갈 수 있을 거야’라 기대했다가 무산되면 ‘부활절엔 가능할 거야’ 했다가, ‘추수감사절엔 나가겠지’, 다시 ‘성탄절엔 나갈 거야’ 하다 결국 상심한 채 죽어갔다”고 말했다(제임스 콜린스 『좋은 기업을 넘어 위대한 기업으로』). 콜린스는 위기 극복의 핵심 역량으로 비관적 낙관주의라 할 수 있는 ‘스톡데일 패러독스’를 강조했다.

코로나19 사태는 ‘스톡데일 패러독스’를 필요로 한다. 결국에는 극복할 수 있다는 장기적 믿음과 함께 지금 당장 한국과 세계 경제에 불어닥친 엄청난 후폭풍을 직시해야 한다. 이 위기를 극복하려면 이념이나 진영에 얽매이지 않은 최고 전문가가 필요하다. 문재인 정부는 그동안 소득주도성장으로 대표되는 이념에 치우친 경제 정책으로 한국 경제의 잠재력을 훼손했다. 한국은 코로나19 사태로 진실의 순간에 직면했다. 이 순간을 어떻게 대응하느냐에 따라 한국은 나락으로 떨어질 수도, 아니면 재충전해 다시 날 수도 있다.

외교안보 분야에서도 한국의 생존을 위태롭게 하는 북한 바라기에서 벗어나 북핵 위협을 현실적으로 직시해 대응할 필요가 있다. 북핵 위협에 맞설 수 있는 청사진을 제시하고 안보 역량을 강화할 방안을 모색해야 한다. 이를 위해선 대북 협상론에 치우친 청와대와 내각의 외교안보 진용을 개편해 현실주의 노선에 기반을 둔 전문가들을 기용할 필요가 있다.

정덕구 NEAR재단 이사장(전 산업자원부 장관)은 “국정 체제를 조속히 위기관리 체제로 전환하고 당대 최고의 전문 인력 중심으로 참모진을 개편해 국정을 정상화해야 한다”고 조언했다(3월 13일자 23면 ‘정덕구의 퍼스펙티브’). 비상한 시국엔 비상한 대책이 필요하다. 기존과 마찬가지로 이념과 진영을 앞세운 국정 운영은 문 대통령 개인은 물론 한국의 운명에 엄청난 불행이 될 것이다.

정재홍 국제외교안보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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