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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사설

아니면 말고 베끼기 공약, 부끄럽지도 않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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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더불어민주당의 비례정당인 더불어시민당이 어제 모 정당인 민주당의 4·15 총선 공약을 그대로 베낀 공약집을 중앙선관위에 제출했다가 3시간 만에 철회했다. 전날엔 ‘기본소득 전 국민 매월 1인당 60만원’ 등 비현실적 공약을 제출했다가 논란이 일자 철회했다. 정의당은 “졸속 정당의 졸속 정책이 졸속 철회된 사건”이라며 “실수라고 했지만 졸속 창당에 따라 예견된 참사에 가까운 사건”이라고 논평했다. 맞는 말이다. 오직 의석수 확보용 급조 정당이 만들어낸 한국 정치의 코미디다. 이런 자격조차 의심스러운 정당이 과연 민의를 제대로 대변할 수 있을지 우려된다.

더불어시민당이 당초 제출한 ‘올해부터 모든 국민에게 조건 없이 매월 60만원을 기본소득으로 지급한다’는 공약은 말하자면 국가가 모든 국민에게 월급을 주겠다는 것이다. 매월 30조원씩 1년에 360조원이 필요하다. 황당 공약이란 비판으로 논란을 빚자 “더불어시민당의 정체성에 맞는 공약을 다시 올리겠다”고 하더니 다음엔 민주당 공약을 토씨 하나 안 고치고 베낀 것이다. 철회한 공약 중엔 북한을 통일 대상이 아닌 ‘이웃 국가’로 인정하자는 대목도 있다. 아직까지 정책조차 제대로 공개하지 않은 열린민주당에서도 “문재인 정부의 민족 공동체 통일 방안과 완전히 방향을 달리하는 것”이란 비판이 나왔다.

바로 의석수 확보만 노리고 급조된 정당의 한계다. 비례위성정당 출현이 4·15 총선을 ‘졸속·깜깜이 선거’로 만들 것이란 우려가 현실로 나타난 셈이다. 가뜩이나 코로나 확산 우려로 정당과 후보자의 유권자 대면 접촉이 어려운 만큼 정책 경쟁이 더 구체적이고 내실 있게 이뤄져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은 마당이다. 하지만 현실은 정반대여서 황당·졸속 공약을 등록했다가 ‘아니면 말고’식으로 내리는 있을 수도 없고, 있어서도 안 되는 해프닝이 반복된다. 다양한 민심을 수렴한다는 연동형 비례대표제의 당초 취지는 사라졌다. 여기에다 공약을 내놓은 주요 정당들의 정책도 전체적으로 과거 주장을 재탕·삼탕한 수준에 불과하다.

살얼음판을 걷는 아슬아슬한 경제 상황에 코로나 충격까지 겹쳐 신음하는 대한민국이다. 원칙도, 염치도 제쳐둔 채 오로지 의석 계산만 염두에 둔 이런 도박판 같은 매표 선거론 경제를 살려내기 어렵다. 먼저 더불어시민당은 왜 이런 ‘실수’가 반복됐는지 과정을 소상하게 밝히고 사과해야 한다. 진정한 정책과 정체성을 알리는 게 유권자에 대한 최소한의 도리다. 총선이 코앞이다. 다른 여·야당 역시 경제를 어떻게 살려낼 수 있을지에 대한 진지한 고민을 이제라도 내놔야 한다. 돈 뿌리기만으론 골병 든 경제를 못 살린다. 정책 대결로 국민의 의사결정을 돕는 건 책임 있는 정당의 의무다. 경제위기 극복을 놓고 여야가 치열한 정책 논쟁에 나서야 마땅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