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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 물렀거라”… 석유公 사장의 유튜브 실험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난달 26일 오후 4시. 양수영 한국석유공사 사장이 웹캠을 마주 보고 앉았다. 공사 홍보문화실 직원 20여명과 유튜브로 채팅하기 위해서였다. ‘최 피디’ ‘소나무’ ‘광고의 여왕’ 같은 익명 ID를 단 직원이 차례로 채팅 방에 들어왔다. 무거운 현안 대신 실제 회사생활과 관련 얘기가 많이 나왔다.

“밖에 나가서 먹기도 쉽지 않은데 구내식당 1일 1회 고기반찬을 희망합니다.”(ID 소나무)

“특식처럼 멕시칸 음식은 어떨까요?”(ID 최 피디)

각자 먹고 싶은 메뉴 댓글이 채팅 방에 쏟아졌다. 양 사장은 “여러분 의견을 적극적으로 반영하겠다. 공사 식당이 울산 혁신도시에서 가장 맛있는 식당이 되도록 하겠다”고 약속했다. 가식도 없었다. 한 직원이 갑자기 “사장님부터 시작해서 ‘칭찬 릴레이’를 하자”고 제안하자 댓글 창에 줄줄이 “강퇴(강제 퇴장)시키자”는 글이 올라왔다. “사장님께 아부 말라” “짜고 치는 답변 말라”는 댓글도 따라붙었다.

양수영 한국석유공사 사장이 웹캡을 바라보며 직원들과 채팅하고 있다. [석유공사]

양수영 한국석유공사 사장이 웹캡을 바라보며 직원들과 채팅하고 있다. [석유공사]

보수적인 공기업에서 기관장이 직원과 유튜브로 실시간 소통을 한다? 석유공사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 19)이 확산하자 최근 도입한 실험이다. 프로젝트 이름은 ‘언택트(Untactㆍ비대면) 소통’. 직원이 익명으로 질문을 남기면 양 사장이 질문을 읽고 답변하는 방식으로 1시간 동안 진행한다.

석유공사는 지난해 초부터 양 사장 주재로 매달 한 번씩 부서별 간담회를 가졌다. 신종 코로나로 간담회를 하기 어려워지자 양 사장 제안으로 유튜브 채팅으로 돌렸다. 양 사장은 “저녁 식사를 하면서 갖는 간담회는 아무래도 직원이 솔직하게 의견을 내기 어렵다는 생각이 들었다”며 “직접 만날 수 없어 아쉽지만, 온라인으로나마 진짜 소통을 해 보고 싶어 나섰다”고 설명했다.

채널 성격이 바뀐 만큼 이전 간담회보다 분위기가 훨씬 가벼워졌다. 26일 첫 언택트 소통에선 ‘사회적 거리 두기’를 사내에서 어떻게 실행할지에 대한 대화가 많이 오갔다. 양 사장은 “저녁에 회식하기보다 집에서 트로트 음악을 들으면서 ‘홈트(홈 트레이닝)’를 하곤 한다”며 “직원들도 회사에 머물기보다 집에서 운동하는 시간을 많이 보내길 권한다”고 말했다. 석유공사 한 직원은 “익명으로 채팅하니까 하고 싶은 말, 듣고 싶은 말이 더 편하게 오갔다”며 “보여주기식 대면 소통보다 훨씬 실속있었다”고 말했다.

양 사장은 “신종 코로나 때문에 어렵지만, 마냥 움츠러들 수만 없지 않으냐”며 “매주 한 번씩 부서별로 돌아가며 릴레이 언택트 소통을 하겠다”고 말했다. 석유공사는 지난달부터 근무 중 마스크 착용, 엘리베이터 내 대화 금지, 직원 대면 회의ㆍ회식 금지 등 규정을 적용해왔다. 양 사장과 임원진·부서장은 4개월간 급여 20~30%를 반납하기로 했다.

김기환 기자 khkim@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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