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밖으로 나오기 꺼려하는 조주빈‧와치맨 피해자 “직접 통화도 어려워”

중앙일보

입력

텔레그램에서 미성년자를 포함한 여성들의 성 착취물을 제작 및 유포한 혐의를 받는 '박사방' 운영자 조주빈(25)이 지난달 25일 서울 종로구 종로경찰 유치장에서 나와 검찰로 송치되고 있다. 이날 경찰은 국민의 알권리와 동종범죄 재범방지, 범죄예방 차원에서 조씨의 신상을 공개했다. 강정현 기자

텔레그램에서 미성년자를 포함한 여성들의 성 착취물을 제작 및 유포한 혐의를 받는 '박사방' 운영자 조주빈(25)이 지난달 25일 서울 종로구 종로경찰 유치장에서 나와 검찰로 송치되고 있다. 이날 경찰은 국민의 알권리와 동종범죄 재범방지, 범죄예방 차원에서 조씨의 신상을 공개했다. 강정현 기자

텔레그램에서 성착취 영상을 제작‧유포한 혐의를 받는 ‘박사’ 조주빈(25)의 수사에서 검찰과 경찰이 피해자들의 직접 진술을 받기가 어려운 것으로 전해졌다. 영상 유출과 같은 2차 피해를 우려하는데다 “자발적인 촬영일 수 있다”고 보는 시선이 두려워 피해자들이 수사기관에 나서는 것을 꺼려서다. 전문가들은 피해자를 고려하지 않는 분위기가 바뀌지 않으면 유사한 n번방 사건이 이어질 것으로 내다봤다.

1일 서울중앙지검 디지털성범죄 태스크포스(팀장 유현정 여성아동범죄조사부장)는 이날 오후 조씨에 대한 다섯 번째 소환 조사를 진행한다고 밝혔다. 이날 조사에서 검찰은 경찰에서 넘겨받은 성착취 동영상 피해자 조사 내용을 토대로 조씨에게 피해 유형과 시기, 경위 등을 캐묻고 있다. 재판 중인 공범 강모(24·사회목무요원)씨도 오후 2시쯤부터 변호인 없이 혼자 조사를 받는 중이다.

앞서 경찰은 조씨의 범행에 따른 피해자가 74명(미성년자 16명)이라고 밝혔지만 대부분의 신원은 특정되지 않은 상태였다고 한다. 그러나 검찰 조사에서 20여명의 신원이 특정됐다. 이중 절반 이상은 아동·청소년이라고 한다. 다만 검찰도 피해자로부터 직접 진술을 받는 데 어려움을 겪는 것으로 전해졌다.

윤석희 한국여성변호사회 회장은 “피해자들은 찍힌 영상이 계속 돌아다닐 수 있다는 두려움에 공개적으로 외부에 나오는 걸 꺼린다”고 말했다. 한국여성변호사회(여변)에 따르면 텔레그램 n번방 성착취 영상 유포를 처음 시작한 것으로 알려진 ‘갓갓’으로부터 그룹(방)을 물려받은 ‘와치맨’ 조사 때도 비슷한 분위기가 이어졌다.

경기남부경찰청은 지난해 9월 말 ‘와치맨’ 전모(38)씨를 검거해 구속했다. 전씨는 지난해 10월 음란 사이트 운영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고다. n번방 운영 혐의는 올해 2월에 기소돼 수원지방법원에서 오는 9일 선고를 앞두고 있었다. 그러다 공범으로 의심되는 ‘박사’ 조주빈이 잡히면서 수원지검이 변론재개를 신청해 선고 공판이 취소됐다. 여변에 따르면 와치맨 피해자의 변호인도 직접 피해자들과 통화하기 어려워 남자친구나 부모를 통해 진술을 받았다고 한다.

유튜버 양예원씨가 지난해 4월 오전 서울 마포구 서울서부지법에서 열린 ‘비공개 촬영회 모집책’ 최모씨의 항소심 선고공판 방청을 마친 뒤 소감을 밝히고 있다. <br>[뉴스1]

유튜버 양예원씨가 지난해 4월 오전 서울 마포구 서울서부지법에서 열린 ‘비공개 촬영회 모집책’ 최모씨의 항소심 선고공판 방청을 마친 뒤 소감을 밝히고 있다. <br>[뉴스1]

2018년 유튜버 양예원씨가 성적인 사진 촬영을 강요받았다고 폭로해 재판으로 가게 된 사건을 맡은 이은의 변호사는 “피해여성들이 자발적으로 촬영에 임했다거나 돈을 받았다고 보는 사회적인 시선이 이번 사건에도 그대로 드러난다”며 “그런 시선이 변하지 않는 한 유사한 n번방 사건은 계속될 것”이라고 말했다.

대법원은 지난해 8월 양씨 사건에서 비공개 촬영회 모집책인 최모(46)씨에 대해 징역 2년6월과 80시간의 성폭력 치료강의 이수, 5년간의 관련 기관 취업제한을 선고한 원심을 확정했다. 최씨와 같이 고소된 스튜디오의 정모 실장은 경찰 조사를 받던 중 억울하다는 내용의 유서를 남기고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양씨는 판결 직후 “판결 결과가 저의 삶을 돌려놓을 수는 없겠지만, 재판부에서 제 진술과 강제 추행 혐의를 인정한 것만으로도 많은 위로가 된다”고 말했다. 당시 양씨는 수사기관에서 “그건(촬영은) 성적 취향이다”며 “피해를 봤다고 해도 돈을 받았다면 문제 삼기 어려울 수 있다”는 말을 들었다고 한다. 이은의 변호사는 “양예원씨도 피해를 당했을 시점에 21세였다”며 “청소년과 다를 바 없는 피해자들을 꼬여 길들이는 범행인 그루밍에 대해 수사기관과 법원이 신경을 써야 한다”고 강조했다.

김민상·이가영 기자 kim.minsang@joongang.co.kr

ADVERTISEMENT
ADVERTISEMENT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