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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오래]자식이 속을 썩여 밥도 안차려줬다는 지인에게…

중앙일보

입력

[더,오래] 송미옥의 살다보면(134)

코로나 사태로 오랜만에 온 가족이 얼굴을 마주하고 산다. 그렇다고 대화는 안 한다. 너는 학교로, 나는 직장으로, 또 다른 일로 각자 자기 일에 바빴지 이렇게 길게 마주 보고 있어 본 시간이 없었다. 중·고등학생 아들을 둔 자녀교육에 관심이 많은 지인이 자식과 투덕거려 속상한 마음에 통화 중에도 울먹거린다. 화가 나서 밥도 안 차려 줬다길래 ‘밥은 먹고 싸워’라고 우스갯소리를 한다. 배가 고프면 더 슬프고 힘든 상황이 되니까. 가족끼리의 전쟁도 잘 싸우면 시간이 지나 재산으로 쌓인다.

우리 부부도 아이들로 인해 투덕거리고, 대화도 아이들 위주로 돌아가다 보니 의견은 늘 안 맞았다. 남편의 방목 스타일은 아이를 방치하는 거라며 다투었다. 나는 매일 눈을 뜨면 아이들을 위해 뒤를 따라다니며 간섭했다. 친구 사귀는 것도 진 땅 마른 땅 골라 다니라고 앞장서 오두방정을 떨었다. 그렇게 해도 내 정성이 아이들의 마음에 닿지 않았다. 나름대로 최선을 다해도 아이들은 따로 놀았다.

훗날 대화 중에 아이들은 아이들대로 그 시절이 가장 힘들었다고 한다. 이래도 잔소리, 저래도 잔소리, 눈만 뜨면 시작되는 부모의 끝없는 투덕거림, 저리 싸우려면 왜 같이 살지 하면서도 싸우다가 언젠가는 헤어져 자기네들을 버릴 것 같은 불안함까지. (때론 그것이 무식한 부부의 정다운 대화법이었는데….) 공부와 눈치에 치솟는 화를 푸는 방법은 대들거나, 소리를 지르거나, 문제를 일으켜서 관심을 받는 거였다.

눈만 마주치면 투덕거리고, 끊임없이 잔소리를 하고, 끝없는 관심의 눈빛을 날리는 그때가 가족이 잘살고 있는 시간이다. [사진 Pixabay]

눈만 마주치면 투덕거리고, 끊임없이 잔소리를 하고, 끝없는 관심의 눈빛을 날리는 그때가 가족이 잘살고 있는 시간이다. [사진 Pixabay]

어느 순간 배운 것으로도, 힘으로도, 심지어 큰 덩치로도, 기운이 달리는 우리는 아이에 대한 모든 희망과 욕심을 마음에서 내려놓고 우리가 할 일만 열심히 하기로 했다. 그것은 가족이 배곯지 않고 건강하게 사는 것이 첫째였다. 그렇게 “너는 네 팔 흔들고, 나는 내 팔 흔들고” 드라마의 스토리처럼 살아야겠다 생각한 것은 우리 가족이 살아갈 해답이었다.

아들의 고교 시절 어느 날, 일이 밀려 주말인데도 일을 해야 했다. 하얀 고무판을 회전 톱날로 잘라 하얀색으로 도색하는 일이었다. 작업복은 물론 눈썹까지 하얗게 뒤집어쓰고 늦게까지 일했다. 저녁때쯤, 공장 지하 계단을 내려오는 소리가 군화를 신고 쳐들어오는 적군처럼 크게 들리더니 화가 절정에 이른 아들이 슈렉의 모습으로 나타났다. 주말인데도 일만 하는, 돈에 환장한 부모에게 배고파 죽겠으니 자식 밥이나 챙겨주고 일하라고 한바탕 화를 내려고 들어왔는데, 허연 귀신이 된 엄마의 모습에 너무 놀란 것이다. 훗날 이야기하길 그 모습으로 아들을 꼭 끌어안았으니 아들이 기절할 뻔했다나…. 그날 쿵쿵 큰 발소리로 계단을 내려오며 화가 났다는 것을 알리던 놈이 멍하니 서서 있더니 잠시 후 말도 없이 사라졌다. 아들의 꿈과 희망을 내 것인 것 마냥 끌어안고 잔소리했는데 욕심을 버리니 아들은 그것을 잘 찾아가고 있었다.

각자 홀로서기 하듯 우리와 비슷한 삶을 살아온 친구네 아들의 결혼식에서 본 광경이다. 축하 행진을 하는 자리에서 깜짝 이벤트를 하는데 양쪽 부모님을 앞서게 한다. 아들은 큰 소리로 말한다. 부모님의 삶을 본받아 우리도 이분들처럼 그렇게 걸어가겠노라고. 쑥스러운 부모들의 표정에서 울컥해졌다. 또한 당신들이 살아온 삶을 존중해주는 아들이 얼마나 자랑스러웠을까. 예식이 끝나고 친구가 한 말에 모두 크게 웃었다. “이럴 줄 알았으면 자나 깨나 싸우지 말고 좀 멋있게 살 걸 그랬어 호호.”

눈만 마주치면 투덕거리고, 끊임없이 잔소리하고, 끝없는 관심의 눈빛을 날리는 그때가 가족이 잘살고 있는 시간이다. 밥은 꼭 챙겨 먹고 싸워야 품위 있고 모양 좋게 싸울 수 있다. 또 아는가! 언젠가는 친구의 아들처럼 부모님의 살아온 모습을 존경하며 뒤따르겠다고 할는지. 그러나 지금은 바이러스와 싸워 이겨내는 시간에만 집중하자.

작은도서관 관리실장 theore_creator@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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