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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박정배의 시사음식

코로나19와 배달 음식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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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4면

박정배 음식평론가

박정배 음식평론가

“2020년 4월 1일 기자 디파이나인(Dπ9)은 1층에 있는 식품점에서 진공 파이프로 배달된 음식 세트의 자기 몫을 받아 플라스틱제 포장을 뜯어 버리고 오렌지 주스부터 꺼내 마셨다.”

1970년 4월 1일 자 한 일간지에 실린 미래 예측 기사다. 소설가 김승옥이 꼭 50년 전에 썼다. 배달 음식이 일상화한 오늘을 내다봤다. 시장조사기관 매켄지는 4년 전 외식시장에서 배달 음식이 차지하는 비율을 2016년 36%에서 2020년 58%에 이를 것으로 예상했다. 코로나19 사태로 인해 실제로는 더 높아질 것으로 보인다.

한민족은 배달 음식에 익숙하다. 조선 후기 황윤석의 『이재난고』(頤齋亂藁·1768)에는 ‘과거시험을 본 다음 날 점심에 일행과 함께 냉면을 시켜 먹었다’는 대목이 나온다. 조선 말 문신 최영년의 『해동죽지』(海東竹枝·1925)에는 남한산성에서 서울 북촌의 재상 집으로 배달된 해장국 효종갱(曉鍾羹)이 등장한다. 일본에서도 18세기 초·중반에 소바를 배달해 먹는 데마에(出前) 문화가 선보였다. 서양 배달 음식의 원조는 피자다. 1889년 이탈리아 나폴리의 움베르토왕 부부가 궁전으로 배달해 먹은 게 시작이었다.

일제강점기 최고의 배달 음식은 냉면과 설렁탕이었다. 서울 설렁탕집 이문식당에는 배달원만 20여 명 있었고, 평양·인천에는 냉면 배달노조가 생길 정도였다. 당시 인천의 냉면을 서울에서, 서울의 냉면을 인천에서 배달해 먹은 기록과 증언도 있다.

[사진 박정배]

[사진 박정배]

배달 음식은 한국사회의 축소판이다. 1960년대 중반 시작된 분식장려운동이 주요 전환점이 됐다. 사람들은 중국집에서 짜장면·만두를 시켜 먹었다. 70년대 들어 직장인 도시락 배달이 시작됐고, 90년대 초 팩시밀리가 보급되면서 약도를 이용한 배달이 유행했다. 또 여성의 사회 진출이 확대되면서 가정 주문 음식사업이 커졌다.

92년 시작된 택배는 배달 문화에 불을 댕겼다. 90년대 중반 이후 인터넷이 보편화하며 배달 주문은 온라인으로 확장됐다. 080 무료전화, 핸드폰의 확산으로 배달은 유망 산업으로 성장해갔다. 각종 광고 스티커·전단지가 일상 속으로 파고들었다. 오죽했으면 한강 둔치 일대의 주문이 폭증하자 서울시가 ‘철가방과의 전쟁’에 나섰을까.

2009년 말 등장한 스마트폰은 음식 배달의 패러다임을 바꿔놓았다. ‘배달의 민족’ ‘배달통’ ‘요기요’ 등 음식 앱이 나오면서 외식산업의 거대한 흐름이 됐다. 2013년 중국에서 음식배달을 시작한 메이퇀은 현재 세계 1위를 질주 중이다. 한국에서 배달시장이 급성장한 데는 여러 요인이 있다. 동네 상권의 발달, 외식 창업자 급증, 빨리빨리 문화, 1인 가구 확대, 여성의 권익 신장 등이다. 여기에 미증유의 전염병까지 가세한 상황이다. 본격적인 ‘배달 음식 인류’의 탄생이 눈앞에 있다.

박정배 음식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