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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사설

‘코로나 영웅’ 의료진을 이토록 홀대해도 되는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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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정부의 감염원 유입 차단 실패와 종교 집단 대규모 감염이라는 악재에도 이 정도로 코로나19 확산이 억제된 것은 사회적 거리 두기에 적극적으로 동참한 시민, 세계 최고 수준의 의료기관·의료진 덕분이다. 특히 감염 위험 속에서도 몸을 사리지 않는 의사·간호사의 헌신적 노력이 수많은 목숨을 구했다. 한국의 코로나19 치명률은 1.7%로 미국과 유럽에 비해서도 현저히 낮다.

오판을 거듭한 정부가 그나마 사태를 진정시킨 의료진에 큰절을 해도 모자랄 판인데 그들의 억장을 무너뜨리는 일을 연거푸 하고 있다. “방역 모범국” 운운하며 아전인수식 자화자찬을 하는 데 정신이 팔려 나라를 구한 이들에게 고마움조차 제대로 표현하지 못하는 정부가 안타깝기 그지없다.

최근의 수당 논란은 의료진에 허탈함을 안겼다. 정부는 임시 선별진료소(드라이브 스루 진료소)에서 봉사하는 의료진에는 위험수당을 제공하지 않았다. 보건복지부는 확진자를 대면하는 의료진과 달리 크게 위험하지 않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이런 정책을 만든 관리가 하루라도 임시 선별진료소에서 의심 증상이 있는 방문자의 목과 코에서 검체를 채취해 보라. “별로 위험하지 않다”는 말이 나오겠나. 정부의 무성의한 행정이 지친 의료진의 몸과 마음을 더욱 무겁게 한다.

박능후 보건복지부 장관은 마스크·보호복 등 보호 물품이 부족하다는 의료기관의 호소에 “쌓아두고 쓰려고 해서 그렇다”고 말했다. 그 시각 일부 의사는 보호복이 없어 대신 수술 가운을 입기도 했다. 정부는 또 의료기관에서 집단감염이 발생하면 손해배상 청구를 하겠다고 엄포를 놓았다. 폐렴으로 숨진 17세 소년에게서 코로나19 양성반응이 한 차례(그 앞 일곱 차례는 음성) 나오자 검사가 잘못됐다며 병원 검사실 폐쇄를 지시했다가 철회한 일도 있었다. 도와주지는 못할망정 쪽박을 깨려 들어서야 되겠는가. 대한의사협회는 “나서 달라고 읍소하다가 사정이 좋아지자 되레 군림하려 드는 모습이 임진왜란 의병장들에게 누명을 씌운 무능한 조선 관리를 연상케 한다”고 지적했다.

유럽 상황에서 보듯 의료기관과 의료진이 무너지면 속수무책이다. 이미 120여 명이 감염됐지만 묵묵히 현장을 지키는 의료진에 경의를 표하고 마땅한 보상을 해야 한다. 진천·아산에 격리된 교민들이 받았던 ‘청와대 도시락’과 질병관리본부에 간 ‘청와대 밥차’가 의료진에 당도했다는 이야기는 들리지 않는다. 먼저 격려와 감사의 뜻을 표해야 할 대상이 과연 누구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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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알려왔습니다=중앙일보 4월 1일자 사설 〈‘코로나 영웅’ 의료진을 이토록 홀대해도 되는가〉와 관련해 정부는 “임시 선별진료소 의료진에게 지급하는 월 보수액에는 위험수당이 포함돼 있으며, 감염에 취약한 노인 등이 많은 요양병원에 국한해 행정명령을 위반, 집단감염이 발생 또는 확산될 경우 추가 방역조치에 따른 손해배상 책임을 부담할 수 있음을 안내한 것”이라고 밝혀왔습니다. 이 보도는 언론중재위원회의 조정에 따른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