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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산유발 6조7000억 효과, 방사광가속기를 잡아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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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0면

경북 포항시 가속기과학관 1층에 전시된 가속기연구소 모형. 둥근 건물이 3세대 방사광가속기, 길게 뻗은 건물이 4세대 방사광가속기다. [중앙포토]

경북 포항시 가속기과학관 1층에 전시된 가속기연구소 모형. 둥근 건물이 3세대 방사광가속기, 길게 뻗은 건물이 4세대 방사광가속기다. [중앙포토]

지난달 30일 오후 충북 청주시 충북도청. 신성장동력과 직원 5명이 우편물 100여개를 우편봉투에 넣은 뒤 주소를 확인했다. 이날 출범한 ‘충청권 다목적 방사광(放射光) 가속기 유치 추진위원회’ 위촉장과 이시종 충북지사 서한문이 담긴 우편물이었다.

전남·충북·인천 유치경쟁 치열 #유치시 13만7000명 고용 창출 #빛 이용해 물질 현상·관찰·분석 #바이오·반도체 등 활용 무궁무진

당초 이날 도청 회의실에서 열려던 출범식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산 우려를 막기 위해 우편물로 대체됐다. 이 지사는 서한문에서 “충북에 방사광가속기가 구축될 수 있도록 힘을 모아주실 것을 간곡히 부탁드린다”고 썼다.

정부가 추진 중인 방사광가속기 사업을 따내려는 지방자치단체들의 경쟁이 본격화됐다. 1조원 규모인 사업에는 충북을 비롯해 전남경북인천시 등이 유치전에 뛰어들었다. 한국기초과학지원연구원(KBSI)에 따르면 방사광가속기를 유치할 경우 6조7000억 원의 생산유발 효과를 기대할 수 있다. 지역 내 부가가치 유발효과는 2조4000억 원, 고용창출 효과는 13만7000명에 달한다.

방사광가속기는 전자를 빛의 속도로 가속할 때 생기는 밝은 빛을 이용해 물질이나 현상을 관찰·분석하는 장치다. 국내에 한 대뿐인 경북 포항의 포스텍(포항공대) 내 4세대 방사광가속기는 건물 길이만 1.1㎞에 달해 ‘거대한 수퍼 빛(光) 현미경’으로도 불린다. 이곳에서는 태양광보다 100경(京) 배나 밝은 빛을 이용해 머리카락 10만분의 1 크기의 물질도 관찰·분석할 수 있다. 100경 배는  100억 배에 1억 배를 곱한 수치다.

모기의 흡혈과정을 관찰하기 위해 방사광가속기로 모기를 찍은 사진. [중앙포토]

모기의 흡혈과정을 관찰하기 위해 방사광가속기로 모기를 찍은 사진. [중앙포토]

방사광은 병원의 X-ray(엑스레이) 촬영에 활용되는 것을 비롯해 우리 생활주변에 폭넓게 퍼져 있다. 공항의 화물검색대나 병원의 컴퓨터단층촬영(CT)·자기공명영상촬영(MRI) 등이 대표적이다. 강한 빛을 쏘아 물리적 손상 없이도 사람의 눈에 보이지 않는 물질의 내부구조를 관찰·분석할 수 있는 게 특징이다.

하지만 타미플루 개발이나 비아그라의 효과가 방사광을 이용해 밝혀진 사실을 아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다. 신종플루 치료제인 타미플루는 미국 스탠퍼드대가 방사광가속기를 활용해 단백질 구조분석을 함으로써 개발된 신약이다.

방사광가속기는 오래된 고고학 유물이나 미술품에 대한 감정, 눈에 보이는 그림 밑에 그려진 또 다른 그림의 복원, 유물연대 측정 등에 활용되기도 한다. 글로벌 제약사들 또한 나노 크기의 물질 구조를 분석할 수 있는 방사광가속기를 신약 개발에 적극 활용하는 추세다.

정부는 방사광가속기가 첨단산업을 이끌 미래 유망사업이라는 판단 아래 방사광가속기 사업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단순한 단백질 구조분석 등을 넘어 바이러스 구조나 정밀 나노 소자 분석 등 바이오·헬스·반도체 등 첨단분야에서 활용도가 무궁무진하기 때문이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는 지난달 27일 다목적 방사광가속기 구축 사업에 대한 사업공고를 시작으로 본격적인 구축사업을 착수했다. 이달 말까지 전국 시·도를 대상으로 유치계획서를 받은 뒤 평가를 거쳐 5월 중 최종 선정지를 발표한다. 앞서 지난달 25일에는 호남권 시도지사들이 모여 “방사광가속기를 호남에 구축해 달라”고 건의했다. 김영록 전남지사와 이용섭 광주광역시장, 우범기 전북도 정무부지사는 이날 ‘4세대 원형 방사광가속기 호남 구축’을 비롯한 3개 항의 호남권 핵심현안에 대한 대정부 공동건의문을 발표했다. 이들은 “2022년 개교 예정인 한전공대를 중심으로 호남권 대학과 방사광가속기가 연계되면 첨단 연구역량을 높일 수 있다”고 말했다.

최경호·최종권·백경서 기자 choi.kyeongho@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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