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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량 줄이려는 꼼수? '박사방' 공범들, 재판부에 반성문 제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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텔레그램에 '박사방'을 열고 미성년자를 포함한 여성들을 대상으로 성착취 범죄를 저지른 '박사' 조주빈(25)이 25일 오전 서울 종로구 종로경찰서에서 검찰로 송치되고 있다. 강정현 기자

텔레그램에 '박사방'을 열고 미성년자를 포함한 여성들을 대상으로 성착취 범죄를 저지른 '박사' 조주빈(25)이 25일 오전 서울 종로구 종로경찰서에서 검찰로 송치되고 있다. 강정현 기자

여성들을 협박해 성착취물을 찍게 하고 이를 텔레그램 등에 유포한 혐의로 기소된 ‘박사방’ 공범들이 ‘잘못을 뉘우치고 있다’며 반성문을 제출하고 있다. 법조계에서 ‘감경’을 위한 전략이 아니냐는 지적이 나온다. 실제 반성문 제출로 감경이나 감형을 받은 사례도 적지 않다.

30일 법조계에 따르면 지난 9일 아동·청소년의 성 보호에 관한 법률 위반 등의 혐의로 기소된 A씨는 지난 19일부터 주말을 빼고 매일 반성문을 작성해 재판부에 제출하고 있다. 19일은 조주빈이 구속된 날이다.

그는 이날까지 모두 8차례, 9부의 반성문을 냈다. 주로 자신의 잘못을 뉘우치고 있으며 선처를 호소한다는 내용이 담긴 것으로 알려졌다.

A씨는 조주빈과 공모해 성착취물을 제작한 혐의를 받는다. 이른바 ‘박사방’의 ‘직원’으로 불리던 이들 중 한 명이다. A씨는 피해자들을 성폭행하도록 지시하고, 범죄수익을 세탁하거나 성착취물을 유포 등의 역할을 한 것으로 알려졌다.

박사방 운영진이었던 ‘태평양’ B군(16)도 이날 재판부에 반성문을 냈다. 박사방 유료회원 출신인 그는 지난해 10월 박사방 운영진에 합류했다. 지난 2월까지 2만여명이 가입된 ‘태평양 원정대’라는 유사방을 만들어 운영하다 지난달 20일 구속됐다.

‘n번방’의 연결통로 역할을 했던 ‘고담방’의 운영자 ‘와치맨’ C씨(38) 역시 지난해 11월부터 이달까지 최소 12차례에 걸쳐 재판부에 반성문을 제출했다. 당초 C씨는 인터넷에서 불법촬영물 웹사이트를 운영한 혐의로 지난해 10월 기소됐다가 n번방 사건에 연루된 정황이 발견되면서 추가 기소됐다.

성범죄 감경 사유의 3분의 1은 ‘반성’

인터넷 메신저 텔레그램에서 미성년자를 포함한 최소 74명의 성 착취물을 제작·유포한 혐의를 받는 '박사방' 운영자 조주빈(25)이 25일 오전 서울 종로구 종로경찰서에서 서울중앙지방검찰청으로 이송되고 있다. 뉴스1

인터넷 메신저 텔레그램에서 미성년자를 포함한 최소 74명의 성 착취물을 제작·유포한 혐의를 받는 '박사방' 운영자 조주빈(25)이 25일 오전 서울 종로구 종로경찰서에서 서울중앙지방검찰청으로 이송되고 있다. 뉴스1

일각에서는 이들이 낸 반성문은 피해자에 대한 진정성 있는 사과보다는 감경을 위한 수단일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반성문은 유무죄 판단에는 영향을 주지는 않지만 양형에는 영향을 주기 때문이다. 판결문에 감경 사유로 ‘반성하고 있는 점 등을 참작’이라는 표현이 자주 등장하는 이유다.

한국성폭력상담소가 지난해 선고된 성범죄 관련 하급심 판결을 분석한 결과에서도 이 같은 경향이 나타난다. 분석 대상 137건 중 3분의 1에 해당하는 48건이 피의자의 반성이나 뉘우침이 감경이나 감형 사유였다. 판결문에는 대체로 “피고인이 범행을 모두 자백하면서 반성하고 있는 점 등은 유리한 정상이다”라고 기록됐다.

다크웹에서 아동 성착취물 사이트 ‘웰컴 투 비디오’를 운영하다 1심에서 집행유예를 받고 풀려난 손모(24)씨 사례가 대표적이다. 그는 1심 과정에서 500장이 넘는 반성문을 제출한 것으로 알려졌다.

당시 1심 재판부는 “(손씨의 범행은) 사회에 미치는 해악이 크다”면서도 “손씨의 나이가 어리고 범행을 시인하면서 반성하고 있다는 점”을 양형 이유로 들었다. 그러다 항소심 재판부가 “원심의 형이 너무 가벼워 부당하다”며 선고한 형량이 징역 1년 6개월이었다.

한국성폭력상담소는 “법원이 지나치게 관대한 감경 기준을 적용할 때 성폭력에 둔감해지는 사회가 조장되고 성폭력을 묵인하는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며 “적정한 형벌을 부과함으로써 가해자의 행위 책임을 물어야 할 뿐 아니라 형벌의 응보 목적을 넘어 교화적 목적 및 위하력 효과를 고려한 양형기준이 마련돼야 한다”고 밝혔다.

박광수 기자 park.kwangsoo@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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