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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남정호의 시시각각

‘코로나19’란 찬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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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4면

남정호
남정호 기자 중앙일보 칼럼니스트
남정호 논설위원

남정호 논설위원

요즘 국제 관계 전문가들의 관심은 하나다. “코로나19 이후 세계는 어떻게 바뀔까.” 대역병은 국제 질서를 새로 짜왔다. 16세기 중남미 아즈텍·잉카제국은 스페인군이 묻혀온 천연두로 멸망했고, 로마제국이 쇠하기 시작한 것도 페스트·발진티푸스·천연두 같은 역병 탓이었다.

‘세계의 리더’란 미국의 위상 추락 #코로나 대응 따라 각국 인식 달라져 #현 위기를 경쟁력 제고 기회 삼아야

이번 코로나가 불러올 변화도 심각할 거다. 전문가들의 일치된 예상은 ‘국제사회의 리더’였던 미국의 위상 추락이다. 전후 미국은 막강한 국력으로 자유주의적 국제 질서를 지탱해 왔다. 하지만 이번엔 제 몫을 못했다. 세계의 리더라면 세 가지는 필수였다. 첫째, 코로나 퇴치의 모범을 보여야 했다. 그러나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우왕좌왕하면서 모범은커녕 최대 감염국으로 전락했다. 둘째, 도탄에 빠진 우방을 도왔어야 했다. 최악의 상황인 이탈리아 정도는 지원했어야 옳았지만, 전혀 없었다. 셋째, 코로나 퇴치에 필요한 국제적 공동대응 체제 구축에 앞장서야 했다. 하지만 ‘아메리카 퍼스트’만 노래해 온 트럼프는 전혀 생각하지 않았다. 결론적으로 미국이란 리더는 실종된 셈이다.

이런 공백을 중국이 치고 들어왔다. 우한 봉쇄 같은 극약 처방을 쓰긴 했지만, 중국이 코로나 확산의 고삐를 잡은 건 사실이다. 이 덕에 시진핑 정권은 중국을 방역 모범국이라고 선전한다. 벼랑 끝에 몰린 이탈리아·이란엔 의료장비와 의료진을 보냈다. 이뿐 아니라 중국은 외국과 축적된 지식을 공유하겠다며 ‘코로나19 온라인 지식센터’를 세웠다. 영락없이 미국 대신 세계를 리드하는 초강대국의 모습이다.

상황이 이렇게 돌아가자 미국은 신경질적으로 변했다. 지난 25일 G7 외교장관 회의 때 마크 폼페이오 국무장관은 ‘코로나19’ 대신 ‘우한 바이러스’라고 써야 한다고 고집해 공동성명이 채택되지 못했다. 지난 19일에는 트럼프가 연설문에 적힌 ‘코로나바이러스’를 ‘중국 바이러스’로 고쳐 쓴 사진이 공개돼 논란이 됐다. 이 모두 이번 사태를 중국 탓으로 돌리려는 미국 측 노력의 일환이다.

이런 터라 미·중 관계는 갈수록 악화할 게 확실하다. 신흥 세력이 지배세력의 지위를 위협하면서 양쪽 간 충돌이 빚어지는, ‘투키디데스의 함정’ 상황이 펼쳐진 것이다. 한국 등 중간에 끼인 나라는 괴로울 수밖에 없다.

한편 이번 사태로 각국의 저력이 드러난 점도 중요한 대목이다. 독일과 이탈리아를 보자. 50㎞도 채 안 떨어졌지만, 사망률에서 독일이 0.8%, 이탈리아는 13배인 10.8%다. 앞으로 누가 양국을 같은 유럽의 선진국이라 하겠는가.

비정하게 들리겠지만, 숱한 목숨을 앗아간 전염병은 살아남은 자들에겐 더없는 축복이 되곤 했다. 실제로 14세기 유럽 인구의 30%인 1800만 명의 목숨을 앗아간 페스트가 물러가자 생존자들은 전에 없던 호시절을 보냈다. 인구가 확 줄면서 임금은 올랐고 가구당 토지는 늘었기 때문이다. 이 당시 노동력을 대체하기 위해 기술이 빠르게 발전하기 시작한 것도 우연이 아니었다. 이렇듯 코로나에 깊은 내상을 입은 나라와 덜 다친 국가가 생기면서 국제 질서가 지각변동을 할 수 있다. 예컨대 “감염이 확대되면 2주 만에 감염자 수가 30배 이상 뛸 수 있다”는 아베 신조 총리의 경고가 현실화되면 일본은 큰 혼란에 빠지게 된다. 특히 지역사회 감염을 제때 못 막으면 사태가 장기화할 공산도 크다. 수출 품목이 여럿 겹치는 한국이 반사이익을 얻을 수도 있단 얘기다.

이럴 때는 국제적 신뢰를 쌓는 게 국가 경쟁력을 높이는 지름길이다. 여유가 생기면 마스크·인공호흡기를 나눠 주고 방역 노하우도 전수해 주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모름지기 긍정적인 국가 이미지는 전 산업에 도움을 준다. 방탄소년단에다 영화 ‘기생충’의 대히트로 평가가 좋아진 상황에서 방역도 잘하는 스마트 국가란 이미지가 굳어지면 ‘메이드 인 코리아’의 경쟁력이 높아지는 게 당연하다. 늘 그렇듯, 위기는 기회인 것이다.

남정호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