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오피니언 서소문 포럼

장모와 사위 사건 제대로 읽기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29면

조강수
조강수 기자 중앙일보 논설위원
조강수 사회에디터

조강수 사회에디터

사람들이 송사(訟事)에 매달리는 이유는 대개 ‘이권 다툼’이다. 걸린 이권이 클수록 어느 한쪽이 먼저 포기할 확률은 낮아진다. 지키려는 자가 신줏단지 같이 끌어안고 놓지 않는 재물의 일부를 “나의 정당한 권리이자 몫”이라고 외치며 탈환해 오기 위해 결사적으로 싸운다. 인생의 대부분을 쏟아붓는 경우도 왕왕 있다. 이른바 ‘송사 빠삐용’들이다. 천신만고 끝에 권리나 돈을 받으면 다행이다. 못 받아도 공권력과 사법의 피해자로 몇몇 단체나 사람에게 알려지면 생활에 큰 지장은 없다.

총선 이후 울산 사건 재개 태풍 #피의자 여의도행, 위기감 반영 #장모 사건으로 윤석열 압박도

정대택씨의 17년 민·형사상 다툼도 그런 경우다. 상대는 윤석열 검찰총장의 장모 최모씨다. 스포츠센터 건물 매수·경매를 통해 얻은 이익금 절반(26억원, 2003년 당시)을 달라는 것이다. ‘동업계약을 맺고 이득금을 균분하기로 약정했으나 정작 일이 성사되자 독식했다’(정씨), ‘한 푼도 투자 않고 금융권 대출을 훼방 놓아 어쩔 수 없이 맺은 강요에 의한 계약이다’(최씨)라고 맞섰다.

검찰 수사 기록이나 관련 판결문에는 최씨의 주장이 맞는다고 적혀있다. 핵심 쟁점이었던 약정서 위조 문제에 대해 “정씨 주장대로 문서가 위조됐다고 해도 사안의 본질에는 아무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고 법원은 판단했다. 정씨는 이를 믿지도, 받아들이지도 않았다. 수사는 검사, 재판은 판사들의 조작에 의해 왜곡됐다고 주장했다. 특히 사위 윤석열 검사가 대검 중수과장으로 있을 때부터 개입했다고 공격했다.

서소문포럼 3/31

서소문포럼 3/31

기자는 8년 전과 3년 전쯤 두 차례 정씨 동생을 만나 억울하다는 제보와 함께 두툼한 서류 뭉치를 받았다. 그걸 집에서 찾아 다시 읽어보니 담당 판·검사 명단과 비호 행위(정씨의 추정)가 일목요연하게 적혀 있었다. 마지막 장 문구는 이랬다. “대검 중수부, 서울중앙지검 특수부, (국정농단) 특검 수사팀장의 세도가 아니었다면 관련 사건을 수사하고 판단한 검·판사들의 직무유기 및 직권남용이라고 할 수밖에 없다.”

기사는 쓸 수 없었다. 추단과 주장만으로는 수사를 못 하는 것과 마찬가지 이유였다. 검사 사위가 수사나 재판에 어떻게 개입했는지에 대한 증거나 증언, 즉 단서가 있어야 하는 데 그게 없었다.

묻혀있던 사적 분쟁이 최근 ‘장모와 검사 사위’ 등의 제목으로 잇따라 전파를 탔다. 정씨 사건과는 별개인 최씨의 부동산 투자사기 피해사건에서 최씨가 350억 원대 잔고증명서를 위조했음에도 처벌받지 않은 것으로 드러났다는 새 팩트와 섞어서였다. 아무래도 윤 총장의 총장 취임 후 행보와 무관치 않아 보인다. 조국 전 법무장관 가족 비리 수사에 이은 송철호 울산시장 관련 청와대 인사들의 선거법 위반 혐의 수사 강행 이후 청와대와 여권 및 그 지지자들의 윤 총장에 대한 시선은 따가워졌다.

조국 가족 사건처럼 윤 총장 장모 사건에 대해서도 전방위 강제 수사에 나서야 한다는 주장도 나온다. 이는 고위공직자 검증과 사적 분쟁 간의 본질적 차이를 도외시한 것이다.

기우일지 모르나 검찰 내 반(反)윤석열 세력이 장모와 사위 건으로 은밀히 내사를 진행할 수도 있다. 작은 단서라도 나오면 감찰의 빌미로 활용할 수 있다. 채동욱 전 검찰총장의 혼외자 사건 때 사표를 낸 결정적 이유는 법무장관의 감찰 착수 통보였다.

4·15 총선보다 그 이후가 더 걱정이다. 울산시장 선거 개입 수사가 재개되면 검찰발 태풍이 몰아칠 가능성이 있다. ‘조국 수호’ 구호를 목청껏 외쳤던 친문 인사들이 줄줄이 여의도로 몰려가는 것도 그런 위기감의 반영 아닐까.

그렇다 해도 황희석 전 법무부 검찰개혁추진지원단장이 대통령이 발탁한 검찰총장을 “간신”, 검사장들을 “쿠데타 세력”이라 칭한 건 ‘인지도 알리기 쇼’라 해도 너무 막 나갔다. 조국 전 장관 딸 인턴증명서 위조 혐의로 불구속기소 되자 “검찰 쿠데타”라고 핏대를 올렸던 최강욱 전 청와대 공직기강비서관은 비례 대표, 울산 사건으로 기소된 황운하 전 총경은 지역구 공천을 따냈다. 이쯤 되면 검찰 기소는 훈장이고, 국회는 피난처라도 된다는 것 아닌가. ‘검찰 소환조사 전 공직자의 면직’은 이른바 ‘적폐 정권’에서도 관행으로 지켜졌다. 국민에 대한 예의였다. 그런 기준과 원칙마저 이젠 허물어졌다.

살아 있는 권력 수사는 법치에 대한 신념이 없다면 불가능하다. 그런 검찰총장과 검찰 조직을 내치지 않고 중립성·독립성을 보장해주는 것이야말로 정치 검찰의 망령을 단박에 사라지게 하는 길임을 위정자들만 모르는 걸까. 그게 검찰 개혁의 시작과 끝임을.

조강수 사회에디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