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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사설

코로나19 장기화 대비한 재정 여력은 있는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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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4면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으로 인한 긴급 재난지원금 지급 대상이 크게 늘었다. 기획재정부는 중위 소득의 100%까지인 총 1000만 가구에 주려 했으나 여당이 대폭 확장을 주장했다. 결국 그제 고위 당·정·청 협의와 어제 국무회의를 거쳐 대상을 전체의 70%인 1400만 가구로 조정했다. 4인 가구 기준 100만원을 준다. 들어가는 추가 예산은 9조1000억원이다. 4·15 총선 직후 2차 추가경정예산안을 제출해 국회가 처리하면 바로 지급할 예정이다.

긴급 재난지원금으로 9조1000억원 투입 #사태 길어지면 재차 돈 풀어야 할 수도 #예산 지출 깎아 대응할 힘 비축이 필요

코로나19로 인해 경제가 마비된 지금, 긴급 재난지원금은 불가피한 측면이 있다. 식당은 텅 비었고, 가게는 주인만 덩그러니 지키고 있으며, 아르바이트생은 일자리를 잃었다. “실직 때문에 질식하겠다”는 말이 나돌 정도다. 생계를 이어 갈 자금은 필요하다. 재난지원금이 나온 배경이다.

그러나 지급 범위가 적절했는지는 의문이다. 전체 가구의 70%면 월소득 712만원, 연간 8500만원까지다. 이 정도면 돈이 없어서 못 쓰는 상황이라기보다는 ‘사회적 거리 두기’ 때문에 있어도 못 쓰는 계층도 포함된다. 이들에게 주는 돈은 생계 지원도 아니고, 소비 진작 효과가 크다고 보기도 어렵다. 여당이 여기까지 지원 대상을 넓힌 데 대해 “총선을 겨냥한 선심”이라는 의혹이 나오는 이유다.

집행 과정에서도 논란이 예상된다. 지역 간 형평성 때문이다. 중앙정부가 손 놓고 있는 사이 지방자치단체들은 제각기 지원책을 발표했다. 많게는 1인당 50만원(경기도 포천시)까지 받는 반면, 한 푼도 없는 곳 또한 수두룩하다. 하지만 정부의 재난지원금 집행 계획에 이에 대한 고려는 없다. 대한민국 국민이 똑같이 어려움을 겪는데 받는 지원은 천차만별이 될 판이다. 정부가 풀어야 할 과제다.

또 하나 빼놓을 수 없는 건 미래를 위한 비축이다. 코로나19 사태가 언제까지 갈지 예측하기 어렵다. 미국과 유럽에서는 바이러스가 갈수록 기승을 부리고 있다. 미국 국립 알레르기·전염병연구소는 “미국인 10만~20만 명이 사망할 수 있다”는 보고서를 냈다. 바이러스가 사그라져도 경제는 후유증을 겪는다. 생산과 소비가 회복되기까지는 시간이 더 걸린다.

사태가 장기화하면 1차 재난지원금으로 부족할 수 있다. 재차 돈을 풀어야 할 경우에도 대비해야 한다. 무작정 국채를 찍어 돈을 조달할 수는 없다. 그러면 국채와 회사채 금리가 덩달아 오른다. 적자투성이 재정 부담이 더 늘고, 그러잖아도 휘청거리는 기업들은 치명상을 입는다. 방법은 예산 재조정이다. 문재인 대통령도 “(긴급 재난지원금) 재원의 대부분을 뼈를 깎는 예산 지출 구조조정으로 마련하겠다”고 했다. 그러나 이 정도론 충분치 않다. 돈을 또 풀어야 할 때를 대비한 재원까지 예산을 조정해 확보해야 한다.

재난지원금 계획을 마련하기까지 정부는 여러 차례 삐걱거렸다. 미적거리다 지자체들이 먼저 나서는 바람에 지역별 지원 형평성 논란을 낳았고, 여당에 떼밀려 지원 대상을 대폭 확대했다. 이렇게 된 과정과 재난지원금의 효과에 대해 꼼꼼한 기록이 필요하다. ‘코로나19 경제 징비록’을 만들어야 한다. 사상 초유의 사태엔 허둥댔더라도 미래에는 실수를 거듭하지 않기 위해서다. 팬데믹은 또 오게 돼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