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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오래] 밥만 먹으러 식당 오는 시대 갔다…이제 외식은 레저

중앙일보

입력

[더,오래] 이준혁의 창업은 정글이다(33)

서비스업이라면 고객을 소중히 하는 것은 기본이다. 그러나 이 기본을 실천한다는 것은 의외로 어렵다. 서비스업이라는 단어는 알고 있지만, 그것이 실제로 어떠한 것인가는 의외로 잘 모른다. 이것은 당신이 평소 이용하고 있는 식당의 서비스 수준을 생각해 보면 금방 알 수 있을 것이다. 물론 접객 태도나 분위기가 좋아서 감탄한 식당도 있겠지만, 화가 났거나 아니면 그 정도를 넘어 아예 어이가 없었던 식당도 적지 않을 것이다.

사실 이것은 누구나 느끼고 있다. 따라서 고객은 느낀 대로 식당을 선택한다. 불쾌한 기억을 되풀이하고 싶지 않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식당의 서비스 수준을 더 향상하면 좋을 것이다. 그러나 현실은 그렇지 않다. 외식업에 종사하고 있는 사람들이 자신이 고객의 입장에서 느낀 경험을 일에서 살리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적어도 경영자인 당신은 자신이 고객이었을 때 “이렇게 해 준다면” 하고 생각했던 것을 자신의 식당에서 고객에게 실행하고 있는가 진지하게 반성해 볼 필요가 있다. 그리고 이렇게 스스로 자각해 서비스 향상에 노력하는 것이 서비스업의 마인드를 갖는 첫걸음이다.

고객은 자신이 소중히 여겨지고 있다고 느낄 때 감동한다. 어떻게 하면 고객이 그렇게 느낄 수 있을까. 그것은 고객을 사랑해야만 가능하다. 사랑하는 사람을 위하기에 세세하게 배려하는 것이다. [사진 pxhere]

고객은 자신이 소중히 여겨지고 있다고 느낄 때 감동한다. 어떻게 하면 고객이 그렇게 느낄 수 있을까. 그것은 고객을 사랑해야만 가능하다. 사랑하는 사람을 위하기에 세세하게 배려하는 것이다. [사진 pxhere]

서비스업을 한마디로 표현하면 ‘고객에게 봉사한다’는 것이다. 그럼 ‘봉사한다’는 것은 어떠한 것일까? 여기서 식당에서의 접객 서비스를 구체적으로 생각해 보자.

고객이 식당에 오면 ‘어서 오십시오’라고 인사하고 돌아갈 때는 ‘감사합니다’라고 한다. 고객을 자리에 안내하고 물을 따르며 주문을 받는다. 음식이 완성되면 고객 테이블까지 갖다 주고 고객이 다 먹은 그릇을 정리한다. 대략 말하면 이것이 실제로 이뤄지는 접객 서비스다. 문제는 과연 이것만으로 ‘과연 고객에게 봉사한 것인가?’ 하는 것이다. 분명 이것들은 접객의 기본이다. 그러나 그 기본대로 한 것만으로는 ‘봉사한다’는 것은 아니라는 점에 서비스업의 어려움이 있다.

고객이 감동하는 것은 자신이 소중히 여겨지고 있다고 느낄 때다. 그럼 어떻게 하면 고객이 그렇게 느끼게 할 수 있는 것일까. 그것은 고객을 사랑해야만 가능한 것이다. 사랑하는 사람을 위하기에 세세하게 배려하는 것이다. 가능한 한 식사를 즐겁게 했으면 하는 마음이 저절로 몸을 움직이게 한다. 이것이 '봉사한다'는 것이다.

예를 들면 같은 '어서 오십시오'라는 말에도 마음이 담겨 있는 것과 그렇지 않은 것과는 전혀 느낌이 다르다. '감사한다'도 정말로 감사의 마음이 담겨 있지 않으면 고객의 귀에는 건성으로 들릴 뿐이다. 그러나 자신의 벌이를 책임지고 있는 것은 식당이 아니라 고객이라고 생각한다면 일부러 꾸미지 않아도 자연히 말에 감사의 마음이 우러난다. 진심으로 감사받아 싫은 사람은 없는 것이다. 또 그러한 감사의 마음(고객에의 사랑)이 있으면 고객이 먹는 속도를 보면서 타이밍 좋게 다음 음식을 내거나 고객의 대화를 방해하게 될 것 같은 때에는 가능한 한 방해가 되지 않도록 주의하는 세심한 배려를 할 수 있다.

고객을 감동하게 하는 이러한 서비스는 형식뿐인, 틀에 박힌 서비스로는 절대로 할 수 없다.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서라면 여간해서는 고생스럽지 않지만 그렇지 않은 사람을 위해서라면 형식적으로 하게 되는 것이 사람의 심리인 것이다. 식당이 번성한다는 것은 그 식당에 가치를 부여한다는 것인데 바꿔 말하면 많은 고객들이 식당의 사랑을 느끼고 있다는 증거이다. 이것이 "서비스업=외식업"의 근간이다.

외식은 소비자에게 있어서 가장 친근한 레저다. 단 그 레저의 질과 내용은 크게 변해 왔다. ‘외식업=서비스업’으로 인식을 갖는 데 있어서 이것을 이해하는 것도 중요한 의미가 있다. 가난했던 시대에는 도저히 서비스업이라고는 할 수 없는 식당이 태반이었다. 왜냐하면 당시의 외식업에는 서비스업이라는 인식은 거의 없고, 배를 채우는 업종인 것을 자타가 모두 인정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물론 공복을 채운다는 것은 고객의 첫 번째 목적이었다. 평소와 다른 것을 먹는다는 것이 가정의 대단한 축제(레저)였다. 따라서 식당은 음식이라는 것을 툭 내놓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장사가 될 수 있었다.

음식을 제공하기만 하면 되던 시대에 외식업은 음식을 파는 것만으로 완결됐지만 지금은 다르다. 어떻게 하면 고객에게 즐거움을 줄 것인가 끊임없이 연구하고 실천할 때 성공하는 식당이 될 수 있다. [사진 pxhere]

음식을 제공하기만 하면 되던 시대에 외식업은 음식을 파는 것만으로 완결됐지만 지금은 다르다. 어떻게 하면 고객에게 즐거움을 줄 것인가 끊임없이 연구하고 실천할 때 성공하는 식당이 될 수 있다. [사진 pxhere]

그러나 지금은 풍요로운 시대다. 외식업은 이제 더 이상 배를 채우는 산업이 아니다. 레저 산업으로서 성장하고 소비자도 풍요로운 시대에 걸맞은 레저를 기대하고 있다. 음식이란 인간 생활에서 떼려야 뗄 수 없기 때문이다. 따라서 외식업, 먹는장사란 비즈니스로서 안정적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많다. 분명히 이 생각은 어느 면에서는 틀리지 않는다. 그러나 그러한 발상은 30년 전의 발상이라는 것을 지적해 두고 싶다.

현재 고객이 식당에 요구하는 풍요로움이란 여유나 즐거움과 같은 정신적, 정서적인 것이다. 음식의 맛보다 중요한 것은 아니지만, 맛 자체가 목적은 아니게 되었다. 친한 친구나 가족과 식사를 한다. 즐겁고 풍요로운 시간을 보내는 것이 중요하고 식사는 그것을 위한 상황적인 성격이 강하게 되었다. 이것이 풍요로운 시대의 레저라는 의미다. 레저는 생활에 없어서는 안 될 기쁨이요, 즐거움이다. 외식업은 그 즐거움을 많은 사람에게 제공하는 것이므로 가치 있는 산업이라 할 수 있다.

이러한 레저를 어떻게 고객에게 제공하는 것이 좋을까? 답은 자연히 명확해질 것이다. 음식을 제공하기만 하면 되던 시대에 외식업은 음식을 파는 것만으로 완결됐다. 그러나 풍요로운 기분이 중시되는 지금에는 즐길 수 있는 식당을 요구하고 있다. 어떻게 하면 고객에게 즐거움을 줄 것인가를 끊임없이 연구하고 실천할 때 비로소 성공하는 식당이 될 수 있다.

(사)한국공유정책 일자리 위원장 theore_creator@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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