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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애인 교통 목소리 낸 단체 "아직도 이동하는게 어렵습니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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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시 지하철역은 277개인데, 그 중 20개는 엘리베이터가 없습니다. 서울 시내 버스의 절반 이상은 휠체어를 태울 수 있는 장치가 마련돼 있지 않습니다. 서울시가 운영하는 장애인콜택시는 호출 뒤 평균 대기 시간이 58분이구요. 장애인 이동권을 개선하기 위해 다양한 콘텐츠를 만드는 '무의' 홍윤희 이사장이 폴인에서 들려준 이야기입니다. 〈폴인스토리 : 넥스트리더인모빌리티〉 중 6화를 소개합니다.

0. 장애인이동권콘텐츠협동조합 무의(Muui) 이사장 홍윤희입니다.

무의는 장애인의 이동권을 주제로 한 콘텐츠를 동영상과 출판물 형태로 제작하고 있어요. 스타트업과 기업가정신을 주제로 영상을 만드는 유튜버 태용님과 함께 휠체어를 타고 부산 시내 식당의 접근성이 어느 정도인지 확인했던 ‘Busan on Wheel’로 2017년 속초장애인영화제에서 공익상을 수상하기도 했습니다. 저는 오늘 무의가 장애인 이동권 증진을 위해 만든 콘텐츠를 중심으로 사회적 약자의 모빌리티에 관해 이야기를 하겠습니다.

교통안전공단의 조사에 따르면 전체 인구의 약 30%가 교통약자입니다. 교통약자가 뭐냐고요? 행동이 자유롭지 못해서 공공 교통기관을 이용할 때 여러 가지 곤란이 따르는 사람을 총칭하는 말입니다. 장애인이나 노약자 뿐 아니라 임산부와 일시적으로 병을 앓거나 외상을 입은 사람 모두가 교통약자죠. 교통약자 중 노인이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데요, 약 49%입니다. 장애인은 상대적으로 적어요. 9.2%에 불과하죠.

지난 9월 17일 열린 '넥스트 리더 인 모빌리티' 6회차 강연을 맡은 홍윤희 무의 이사장. ⓒ폴인

지난 9월 17일 열린 '넥스트 리더 인 모빌리티' 6회차 강연을 맡은 홍윤희 무의 이사장. ⓒ폴인

그런데 뉴스를 보면 교통약자 이동에 관한 이슈 중에 유독 장애인 이슈가 두드러지게 많은데요, 왜일까요? 그건 장애인이 다른 교통약자에 비해 이동권 이슈에 대해 가장 크게 목소리를 내기 때문입니다. 목소리를 내는 만큼 그간 얻은 것들도 많습니다. 실제로 최근 광화문역에 엘리베이터가 새로 설치됐는데요, '광화문역 엘리베이터 설치 시민모임(이하 광엘모)'와 '장애인차별철폐연대'가 18년 간 노력해 얻어낸 것입니다.

1. 장애인은 아직도 이동하는 게 제일 어렵습니다.

그렇다면 장애인이 마주하고 있는 '이동의 현실'은 어떤 모습일까요?

지하철을 먼저 볼게요. 지하철 사업자는 수도권을 포함해 모두 10곳이고, 서울시에 총 277개의 지하철역이 있습니다. 이중 엘리베이터가 제대로 안 갖춰진 지하철역이 약 20개 정도 돼요. 엘리베이터만 있으면 지하철을 탈 수 있는 정도의 장애를 가진 장애인마저 접근할 수 없는 환경인 거죠.

버스는 어떨까요? 서울에서 운행되는 버스 중 휠체어가 탈 수 있도록 만들어진 저상버스는 47.3%에 불과합니다. 장애인이 불편 없이 이동하기에는 턱없이 부족한 숫자입니다. 미국이나 영국 같은 나라는 운행 중인 모든 버스가 저상버스에요. 상황이 이렇다 보니 장애인은 버스를 잘 안 타고, 자연히 저상버스 이용률도 떨어지죠. 심지어 장애인이 정거장에 있는데도 기사 분들이 그냥 지나치는 경우도 많아요. ‘장애인이 버스를 타려고 기다리는 건 아니겠지’라고 생각하는 겁니다.

시외버스의 상황은 더욱 열악합니다. 장애인이 휠체어를 밀고 탈 수 있도록 경사로가 설치된 버스는 단 한 대도 없습니다. 2014년 4월 서울 고속터미널역 앞에서 장애인들이 '명절에 버스를 타고 고향에 갈 수 있게 해달라'며 시외버스 장애인 램프(경사로) 설치를 요구하는 시위를 한 적도 있죠. 이때 시위 진압에 나선 경찰은 시위대에 최루탄을 뿌리기도 했습니다.

KTX와 SRT에는 장애인석이 있습니다. 그런데 여기 탑승하려면 반드시 열차 출발 15분 전에 도착해야 해요. 탑승을 위한 리프트를 열차에 설치하는 데 15분이 걸리기 때문이죠. 박경석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 상임공동대표가 겪은 일화인데요. 출발 13분 전에 역에 도착했다 승차를 거부당한 적이 있다고 합니다. 15분 전에 와야 하는데, 그 시간을 지키지 못했다고요. 언쟁 끝에 결국 열차를 타긴 했는데, “장애인 탑승으로 출발이 늦어졌다”고 안내 방송을 했다고 하네요.

장애인을 위한 콜택시 서비스도 있습니다. 서울의 경우 서울시설관리공단에서 '장애인 콜택시'를 운영 중인데요, 호출 후 평균 58분 정도를 기다려야 탈 수 있습니다. 탄다고 끝이 아닙니다. 서울 안에서만 이용이 가능하거든요. 서울을 벗어날 때는 못 탑니다. 이용 요금은 일반 택시 요금의 3분의 1 수준으로 저렴하긴 한데요, 대기 시간이 길다는 점에서 장애인을 위한 진정한 온디맨드(On-demand) 서비스라고 보기는 어렵죠.

2. 환승지도 같은 콘텐츠만으로도 문제를 어느 정도 풀 수 있습니다.


앞서 수도권 지하철 사업자 수가 10개라고 말씀드렸는데요, 각 사업자가 수도권 지하철 일부를 각각 운영해요. 서울 지하철도 호선에 따라 운영자가 다릅니다. 특히 여러 호선이 지나는 환승역의 경우 호선별로 담당 사업자가 달라요. 환승 체계도 일원화되어 있지 않죠. 그래서 환승할 때 곤혹스러운 경우가 많아요.

제 딸은 소아암 후유증으로 휠체어를 타는데요, 저와 아이가 고속터미널역에서 직접 겪은 일입니다. 고속터미널역은 3호선, 7호선, 9호선 열차가 모두 지나죠. 저희는 9호선 열차에서 내려서 7호선 열차로 갈아타려고 했어요. 그런데 위층인 3호선, 9호선 승강장과 아래층인 7호선 승강장 사이 환승 통로에 엘리베이터는 없었죠. 계단과 에스컬레이터만 있었고, 계단에는 장애인용 리프트가 설치돼 있었습니다. 그런데 하필 이날 리프트가 고장난 거예요. 고장난 리프트 앞에는 이런 안내문이 붙어 있었어요.

'다시 9호선 승강장으로 되돌아가서 지하철을 타고 동작역에서 4호선 환승 후 이수역에서 다시 7호선으로 환승하세요.’

당혹스럽지 않으신가요? 역무실에 전화를 했습니다. 물론 안내문에 문의를 위한 전화번호는 적혀있지 않았죠. 제가 역무실 전화번호를 검색해서 했어요. 그랬더니 담당자가 대뜸 ‘어디냐’고 묻더군요. '위층에 계시면 3호선이나 7호선 역무실에 전화해야 하고, 아래층에 계시면 9호선 역무실에 전화를 해야한다'고 하면서요. 정말 화가 많이 났습니다. 이 일은 2011년 4월 한 신문에서 기사로 다뤄지기도 했습니다. 기사가 화제가 되면서 국토교통부에서 보도 당일 해명 자료를 내기도 했었고요.

무의가 만든 대표적인 콘텐츠가 ‘교통 약자를 위한 서울 지하철 환승 지도’인데요, 이런 경험이 반복되면서 만들게 된 콘텐츠입니다. 서울시도심권50플러스센터에서 활동 중인 시니어 리서치들이 직접 직접 휠체어로 서울 지하철 역사 곳곳을 다니면서 장애인의 환승 경로를 조사했고, 이걸 기반으로 청년 디자이너들이 지도를 만들었습니다.

현장 조사 때는 휠체어를 타고 다닐 수 있는 경로만 조사한 게 아니라 휠체어 눈높이에서 불편 요소를 체크했어요. 안내문은 있는지, 불편한 시설은 없는지, 시설을 이용할 때 비장애인의 양보나 도움을 받아야 하는 공간은 없는지 등을 모두 확인했어요. 이렇게 만들어진 환승 지도는 33개역 58개 구간에 대한 환승 정보를 담고 있습니다.

실제로 무의의 환승지도 덕에 지하철역 환승표지판 등이 크게 개선됐어요. 2·4·5호선이 지나는 동대문역사문화공원역의 경우 엘리베이터에 5호선에서 4호선으로의 환승을 안내하는 표지판만 있었어요. 저희 리서치 이후 5호선에서 4호선은 물론 2호선으로의 환승을 안내하는 표지판이 부착됐죠. 왕십리역 곳곳에는 휠체어 눈높이의 환승 안내판이 설치됐고요. 잠실역과 합정역에는 리프트를 이용하지 않고 환승할 수 있는 경로를 안내한 표지판, 유모차와 휠체어 개찰구 통과방법이 적힌 안내판이 설치됐습니다.

서울교통공사가 운영하는 지하철역 20여곳에는 여전히 장애인의 승강장 진입을 위한 동선이 갖춰져 있지 않다.

서울교통공사가 운영하는 지하철역 20여곳에는 여전히 장애인의 승강장 진입을 위한 동선이 갖춰져 있지 않다.

3. 법과 제도의 지원 없이 교통약자 이동권이 보장받긴 어렵습니다.


그렇다면 미국 같은 선진국에선 교통약자의 이동이 얼마나 보장 받을까요?

미국의 경우 최근 우버 같은 공유 모빌리티 서비스가 보편화되면서 장애인을 위한 휠체어 택시 수가 크게 감소했습니다. 실제로 샌프란시스코 등 일부 도시에서 운행되는 장애인 택시의 비율은 전체 택시 수의 40% 수준이라고 합니다.

저도 올초 딸과 함께 미국에 갔다가 우버 기사에게 승차 거부를 당한 경험이 있습니다. 이전까지는 한 번도 이런 일이 없었는데요. 장애인을 위한 '우버 WAV(Wheelchair Accessible Vehicle)’란 서비스가 있는데요, 우버 기사 분이 이 서비스를 이용하라고 하면서 승차를 거부했습니다.

우버 기사처럼 플랫폼 회사에 소속되지 않은 채 플랫폼을 통해 일하는 노동자를 ‘긱 워커(geek worker)’라고 합니다. 긱 워커 입장에선 주어진 시간 동안 최대한 효율적으로 일하는 게 중요합니다. 업무 효율성이 자신의 수입과 직결되니까요. 그런데 휠체어 탄 장애인을 태우려면 탑승하는 데만 최소 5분 이상이 걸립니다. 이러니 우버 기사가 장애인을 태우길 꺼려하는 겁니다.

민간 기업이 장애인을 위한 이동 서비스를 하기에는 수익성이 낮은 게 부담일 수밖에 없습니다. 비장애인을 태우면 4,5명 태울 시간에 장애인은 1,2명 밖에 못태우니까 그만큼 수익이 떨어지잖아요. 교통약자 서비스는 보조금 지원 같은 공공 부문의 지원 없이는 실패할 수밖에 없는 구조적인 문제가 있는 거죠.

그럼에도 효율성의 나라 미국에서 장애인 이동권이 보장되는 건 장애인 차별을 금지하는 강력한 법, ADA(Americans with Disabilities Act)이 있기 때문입니다. 우버 기사로부터 승차 거부를 당한 후 본사에 신고를 했는데요, 본사 쪽에서 연락이 와 기사가 딸에 대한 차별 발언을 했는지 등을 꼼꼼히 물었어요. 우버 같은 TLC(Taxi and Limousine Commission)업체 역시 장애인차별금지법(ADA)에서 예외일 수 없어요. 물론 아직은 TLC업체의 장애인 차별에 대한 명확한 처벌 규정이 만들어지진 않았는데요, 하지만 장애인차별금지법 덕에 우버 같은 업체에 장애인 이동권에 관한 책임의식을 묻는 여론의 압력이 상당합니다. 장애인차별금지법이 장애인 이동 서비스가 존속할 수 있는 기반이 되는 거죠.

실제로 미국 샌프란시스코에선 택시 기사가 장애인을 태우면 보조금을 지원해요. 미국 샌프란시스코 주정부가 발행하는 NTA(National Tax Agency) 보고서를 보면 장애인 택시에 대한 지원 방안이 명시돼 있습니다. 장애인을 태울 때마다 택시 기사에게 보조금 10달러를 지원한다는 거죠. 2018년에는 택시에 설치된 램프(경사로) 수리비를 지원한다는 조항이 추가됐습니다. 올해는 램프를 설치한 택시는 공항 택시 승강장의 맨 앞쪽에 차를 댈 수 있도록 하는 조항도 생겼습니다.

우버가 휠체어 장애인을 위해 만든 서비스인 '우버 WAV'의 소개 페이지 모습 ⓒ우버

우버가 휠체어 장애인을 위해 만든 서비스인 '우버 WAV'의 소개 페이지 모습 ⓒ우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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