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송호근 칼럼

치맥 카페에서

중앙일보

입력 2020.03.30 00: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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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1면

송호근 본사 칼럼니스트·포스텍 석좌교수

송호근 본사 칼럼니스트·포스텍 석좌교수

저는 ‘묻고더블당(黨)’ 대표 나다불(羅多拂)이올시다. 요즘 한국에 인생 파산한 사람들이 속출하니 이대론 안 되잖아요. 묻고 더블로 가자! 그런 의미에서 ‘더블당’을 창당했습니다. 제 이름이 다불, 따지지 않고 준다는 뜻이라 딱 맞더라고요.

누구나 창당 시대, 누가 누군지 몰라
38지선다형 고난도 문제 풀어야
명색만 다당제, 본질 가짜민주주의
이러려고 광장에서 촛불켰나?

그런데 총선 명단에 당명을 못 올렸습니다. 코로나 사태 때문에 6개 도시 중 두 개가 펑크가 났어요. 개인 파산에 갈 데가 없는 사람들이라 휴대폰도 껐더군요. 통신비가 없는 거예요. 선관위에 등록을 못 했습니다. 다음 총선을 기약하며 기분도 풀 겸 혼자 맥줏집에 갔었거든요. 텅 비었더군요. 완전 전세 낸 느낌? 그래도 홀로 치킨 씹기는 좀 궁색하지요. 한구석에 손님이 있더라고요. 서로 눈치 보다가 합석했지요. 유쾌했습니다.

명함을 내놓는데 놀랐어요. ‘창당알바당(黨)’ 대표였어요. 이름은 남지원(南支援). 남을 돕는 게 자기 팔자라나요. 전국 도우미를 모아 당을 너끈히 만들었는데 선거에 나서진 않는다나요. 창당 러시에 도우미 파견 사업이 오히려 수익이 좋대요. 남대표 신상이 훤해 보였어요. 도우미 일당 20%가 당비(黨費)래요. 신당 작명도 해준다나요. 한번에 천만 원. 요즘이 성수기랍니다. 일차 당 사업이 마무리됐기에 자축 겸 치맥 집에 왔대요. 대표끼리 합석이니 일종의 영수회담이죠. 정치에 관해 유익한 얘기를 나눴습니다.

‘연동형비례대표제는 진짜 민주주의다’는 데에 의견일치 했습니다. 잔을 부딪쳤죠. 얘기가 아주 잘 통했습니다. 내가 힘줘 말했죠. 미국과 유럽이 선진정치국? 천만의 말씀. 미국은 양당대립 때문에 민의가 팽개쳐지고, 트럼프 같은 선동형 정치가가 판을 치는 거다, 유럽이요? 북구 정당구도가 말만 사민주의지 사실은 민의를 다섯 개로 쪼개는 것에 불과하지요, 요즘 사람들 생각이 어디 다섯 유형뿐인가요? 남대표가 맞장구쳤어요. 맞아요, 독일은 정당이 10개인데도 코로나에 죽을 쓰잖아요, 시민정치학교를 운영하면 뭐합니까. 이탈리아요? 거기에는 정당이 20개 있는데 아직도 모자라 저 지경입니다. 한 50개 정도는 돼야 광장마다 각양각색 당원들이 넘치고 술집이 꽉 차고, 현안 문제로 주먹다짐도 하고 그러죠. 정치란 결국 활력! 코로나야 어찌 됐든, 맞죠? 또 한잔! 죽이 잘 맞았어요.

그러다 차기 총선용 창당에 들어갔죠. 유비무환! 작명도사인 남대표가 몇 개를 댔어요. ‘BTS더블당(黨)’! 새로 유권자가 된 18세 115만 명 표를 거뜬히 끌어모을 수 있다는 거예요. 20대 청년들까지도 모으면 전국 중앙당 되기는 식은 죽 먹기! 투표자 3%, 대략 60만 표를 얻으면 국회에 진출하니까요.

나는 ‘더불어트롯당(黨)’! 원래 트롯은 관광버스 안에서 춤추며 불러야 제 맛이죠. 인생 설움을 아는 사람만이 한(恨)과 흥(興)을 살려내니까. 영탁, 찬원, 영웅이를 당대표로 모시면 6070 어르신들이 난리가 날 테니 적어도 5석은 보장합니다. 공약은 트롯 스트리밍 무료, 까짓 세금으로 충당하면 되니까요. 이어 ‘다 함께 차차당(黨)’도 나왔고, ‘미래천당(天黨)’, ‘열래?민주당(黨)’, ‘미래개혁참~신당(黨)’이 치맥집에서 창당됐어요, 어제요.

20년 전, ‘.com경제’가 흥행할 때 주소 선점하는 기분이었어요. 그걸로 돈번 사람 많지요. 돈 생각하니 취기가 올랐어요. 그래서 정치를 욕하기 시작했지요. 비례당 만들어 이적하는 의원들은 파렴치범이다, 진짜 다당제 만들 용의는 있는가, 청년과 여성 발굴한다더니 고작 10%도 안 된다, 하층민은 누가 대변하나? 꼼수가 따로 없다, 위성정당은 노벨상감이다, 이건 가짜민주주의다.

‘더불어미래당(黨)’은 왜 없어? 협치한다더니 쌈박질만 하고 우리더러 표찍어 달라고? 진짜 다당제가 돼야 도둑정치, 거짓위기로부터 해방된다고 스나이더(Snyder)인지, 슈뢰더인지가 그랬어, 선과 악, 진실과 거짓, 과거와 미래를 구별 못하면 예속이라고, 맞지? 언프리덤(Unfreedom)! 우리는 속박을 깨는 투사야! 또 한잔.

취기가 올랐다. 그러고 말이야, 남대표, 선거를 꼭 이때 해야 하는 거야? 마스크에 장갑 끼고, 줄을 죽 서서, 기어이 표를 찍어야 하나, 누가 누군지도 모르는데? 적어도 우리 ‘더블당’은 비례대표 낼 때 기준을 정했거든, 당원 중 자살직전 1순위, 파산칩거 2순위, 더불로 가서 성공한 자 3순위, 어때 공평무사하지 않아. 그런데 다른 당은 뭐야, 대체 누가 나온 거야? 이거 민주주의 자살이야, 38개 정당 중에 고르라고? 38지선다형 고난도 문제를 어떻게 풀어, 누군지 알아야 연립내각도 꾸리고 하지. 연립내각, 멋있잖아? 문정부는 독주(獨走)가 문제야. 이해찬대표는 민주주의 화신처럼 굴더니 뭐, 사돈당, 형제당? 웃기라 그래 …

치맥 값은 나, 나다불이 낸 것 같다. 기억엔 없지만 카드사용 문자가 날아왔다. 아침에 문자가 하나 더 왔는데, 남지원대표였다. ‘우리당이 바야흐로 정당 M&A에 들어갈 건데 참여하려면 1천만 원을 입금하기 바람. 계좌번호 xxx’.

송호근 본사 칼럼니스트·포스텍 석좌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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