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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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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1면

양성희 기자 중앙일보 칼럼니스트
면역에 관하여

면역에 관하여

순수함, 특히 신체적 순수함은 언뜻 무해한 개념으로 보이지만, 실은 지난 세기의 가장 사악한 사회 활동들 중 다수의 이면에 깔린 생각이었다. 신체적 순수함에 대한 열정은 맹인이거나 흑인이거나 가난한 여자들에게 불임 시술을 실시했던 우생학 운동의 동기였다. … 모종의 상상된 순수성을 보존하려는 노력 때문에, 그동안 인류의 유대는 적잖이 희생되어 왔다.  율라 비스 『면역에 관하여』

글은 이렇게 이어진다.  그러나 “우리는 오염된 존재이다. 자기 몸의 세포보다 더 많은 수의 미생물을 장 속에 품고 있다. 우리는 세균으로 우글거리는 존재이고, 화학 물질로 포화된 존재이다. 한마디로 우리는 지상에 존재하는 모든 것과 이어져 있다.”

아마도 ‘코로나 시국’에서 가장 많이 인용되고, 읽히는 책 중 하나일 것이다. 페스트, 에이즈 등 감염병이 서구 사회에서 이해되는 방식에 대한 날카로운 통찰이 돋보인다. 예방 접종 대신 ‘수두 파티’를 벌이는 ‘자연주의자’들의 백신 거부 경향도 비판한다. “효과가 상대적으로 적은 백신이라도 충분히 많은 사람이 접종하면, 바이러스가 숙주에서 숙주로 이동하기가 어려워져서 전파가 멎기 때문에 백신을 맞지 않은 사람이나 백신을 맞았지만 면역이 형성되지 않은 사람까지 모두 감염을 모면한다. 면역은 사적인 계좌인 동시에 공동의 신탁이다. 집단의 면역에 의지하는 사람은 누구든 이웃들에게 건강을 빚지고 있다.” 그렇다. “우리는 늘 서로의 환경이다.” ‘언택트’ 시대를 살면서 우리는 새삼 우리가 연결된 존재임을 깨닫는다.

양성희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