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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사형받아야 마땅, 솜방망이 처벌 관행 고쳐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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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8면

“저는 피해자의 영혼을 파괴한 디지털 성범죄자입니다.”

n번방 운영하다 내부고발 20대 #4만7000개 성착취물 온라인 유포 #작년 10월 잡힌 후 경찰 적극 도와 #일각 “본인 미화하는 범죄자일 뿐”

대학생 김재수(25·가명)씨는 지난 28일 중앙일보와의 인터뷰에서 이렇게 자기를 소개했다. 김씨는 최근 불거진 텔레그램 ‘n번방’ 성 착취 사건 피의자 중 한 명이다. 그는 유사 n번방인 ‘야동공유방1주7개’를 운영하며 4만7000개가량에 달하는 성 착취물을 유포했다. 금품을 받고 회원 4000여 명을 모집했다. 참가자들은 각자 1주일에 성 착취물을 7개씩 올려야 했다. 김씨는 지난해 10월 경찰에 덜미를 잡혔다.

이후 n번방의 실체를 폭로하는 내부 고발자가 됐다. 최초 신고자 가운데 한 명이다. 경찰 수사 대상인 동시에 수사에 협조하는 이중적 상태를 한동안 유지했다. n번방 사건 규명 과정에서 김씨의 역할이 컸다는 평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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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씨는 내부 고발에 나선 까닭에 대해 “압수수색을 당한 경험에서 비롯됐다”고 털어놨다. 경찰이 김씨 집에 들이닥쳐 성 착취물을 압수하는 순간 감추고 싶은 과거가 고스란히 드러나는 게 얼마나 공포감과 심리적 압박을 주는지 절실히 느꼈다는 것이다. 피해자도 자신의 범죄로 비슷한 감정이었으리라는 점을 깨닫게 됐다는 의미다. 그는 죄책감에 따른 우울증 등에 시달리고 있다고도 했다. 수차례 극단적 선택을 시도하기도 했지만, 그러면 ‘수습을 하지 않고 도망가는 것’이라고 생각해 마음을 고쳐 먹었다고 김씨는 설명했다.

현재 김씨는 “작은 보탬이라도 되고 싶다”며 경찰 수사를 적극 돕고 있다. 강원지방경찰청 관계자는 “김씨와 지속적으로 연락을 취하며 n번방 관련 정보를 받고 있다”고 말했다. 언론사 제보에도 적극적이다. 텔레그램에서 별도의 단체대화방(참가자 90명가량)을 운영할 정도다. 상당수 방송 프로그램에 출연하기도 했다.

김씨는 사이버 성범죄를 뿌리 뽑을 대안도 제시했다. 무엇보다 솜방망이 처벌 관행을 강하게 비판했다. 초범이라고, 반성한다고 집행유예나 벌금형에 그치는 현실이 잘못됐다는 이야기다. 김씨는 “나조차 이렇게 휴대전화를 만지고 자유를 만끽하는 게 납득이 가지 않는다”고 말했다. 그는 불구속 상태로 재판을 받고 있다.

또한 “음란물 웹사이트 차단 정책이 n번방 사건이라는 부작용을 일으켰다”고 지적했다. 김씨는 “무작정 음란물 웹사이트를 차단하니 유통시장이 음성화해 문제가 더욱 심각해졌다”고 말했다. 성매매에 대해서도 “단속할 거면 확실히 단속하거나 아니면 차라리 합법화해 제도권 안에서 철저히 관리하도록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김씨는 “피해자에게 진정으로 사죄하기 위해 최대한 강력한 처벌을 받고 싶다”고 했다. 김씨는 “사형이나 무기징역이 마땅하다고 생각한다”며 “4만 명의 상처에 소금을 뿌렸으니 최소 징역 4만 년은 살아야 사회에서 떳떳하게 살아갈 수 있을 것 같다”고 말했다.

김씨가 이번 n번방 사건을 이슈화하는 데 힘을 보탠 건 분명하지만, 일각에선 “자신을 미화하려는 범죄자일 뿐”이라는 비판의 목소리도 나온다. 서승희 한국사이버성폭력대응센터 대표는 “n번방 가담자 중 제보에 적극적인 사람이 많다”며 “아무리 의도가 좋다고 하더라도 공익제보자로 포장돼 마땅한 처벌을 받지 못하는 일이 생길까 우려된다”고 말했다. 이수정 경기대 범죄심리학과 교수는 “김씨의 속마음은 아무도 모른다”면서도 “혹여 위선적으로 자신의 처벌을 줄일 목적이 있더라도 수사에 도움이 되는 건 분명하기 때문에 나쁘게만 볼 필요는 없다”고 밝혔다.

이가람·김민중 기자 lee.garam1@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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