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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강한 가족] 간암 환자의 희망 고문이 된 1차 치료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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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6면

간암의 5년 상대 생존율은 35.6%에 그친다. 전체 암 생존율(약 70%)의 절반 수준이다. 간은 증상이 거의 없어 병이 많이 진행돼서야 자각 증세가 나타난다. 그래서 간암은 대부분 3기 이상의 진행된 상태로 발견된다. 3기 간암 환자의 생존 기간은 2년 미만에 불과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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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처럼 간암은 치료 기간이 짧고, 늦은 병기에서 발견되는 만큼 1차에서 충분한 치료 효과를 얻지 못하면 다음 단계의 치료가 어려운 상태가 되거나 최악의 경우 사망에 이른다. 또한 간암 환자는 치료를 지속하기 위해 간 기능이나 전체적인 몸 상태를 어느 정도 유지해야 하는 것도 중요하다.

지난 10여 년간 간암 치료를 위한 다수의 신약 개발 노력이 이어졌음에도 불구하고 대부분 실패해 치료에 큰 진전이 없었다. 간암 1차 치료제는 ‘소라페닙’(이하 성분명)이 유일했다. 그러던 중 2018년, ‘렌바티닙’이라는 약제가 소라페닙 이후 10여 년 만에 처음으로 간암 1차 치료제로 허가를 받았다. 지난해 10월에는 건강보험 급여까지 인정받으면서 의료진은 간암 환자에게 새로운 치료 옵션을 제공할 수 있게 됐다. 렌바티닙은 간암 환자에서 임상을 통해 기존 치료제와 비교해 종양 크기를 줄이는 것을 의미하는 ‘반응률’이 크게 개선됐다는 것이 입증됐다. 그뿐 아니라 렌바티닙 이후 후속 치료 시에도 비교군 대비 생존 기간이 더 길다는 사실이 확인됐다.

하지만 이처럼 기존 치료제 대비 확실한 이점을 지닌 새로운 약제가 환자들에게 실질적인 혜택을 전하는 데는 잘 활용되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이 약제를 사용하다가 질환이 계속 진행되는 경우 2차 약제 투여가 필요한데, 현재 처방 가능한 2차 치료 약제들이 있음에도 렌바티닙을 1차로 사용한 경우에는 후속 치료에 대한 급여가 인정되지 않는다.

현재 국내 허가된 간암 1차 치료제로는 소라페닙과 렌바티닙 두 가지 옵션이 있다. 이후 2차 치료제로 사용되는 레고라페닙은 ‘소라페닙에 실패한 환자’에게만 급여가 인정된다. 결국 렌바티닙의 임상적 효능이 입증됐음에도 국내에서는 급여가 되는 2차 치료제의 유무에 따라 1차 치료제 선택의 폭이 제한되는 상황이다. 간암 환자 입장에서는 새롭게 등장한 치료제가 희망 고문이 되는 셈이다.

한편 해외에서는 렌바티닙 이후 후속 치료로 다양한 약제를 제시하고 있다. 호주의 경우 렌바티닙과 소라페닙 두 약제 모두 1차 치료 후 2차 치료 시 레고라페닙을 사용할 수 있게 허가했다. 캐나다도 렌바티닙 이후 다양한 2차 치료제를 자유롭게 사용할 수 있도록 했으며, 일본도 임상 의사의 의견을 존중해 여러 약제를 차수와 상관없이 치료에 사용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환자에게 1차 치료제를 결정하는 순간 생명을 건 도박이 되는 것은 너무 가혹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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