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오래]쓰레기통 아니에요, 궁궐 지키는 '드므' 랍니다

중앙일보

입력 2020.03.29 13:00

[더,오래] 이향우의 궁궐 가는 길(13)

경복궁 근정전 월대. [사진 한국학중앙연구원]

경복궁 근정전 월대. [사진 한국학중앙연구원]

월대 엄지기둥의 서수 조각들

근정전 상, 하월대 가장자리에는 장대석을 둘렀으며 팔각 회란석의 난간을 받치고 있는 것은 하엽동자석(연잎 형상으로 만든 기둥)이다. 근정전 상월대의 동서남북 문로주(엄지기둥)에는 사방위신이 한 쌍씩 조각되어 있고 상하월대를 돌아가며 12지신을 나타내는 동물이 역시 문로주에 조각되어있다. 월대의 남쪽 동서 모퉁이에는 궁궐을 지키는 해태가족이 조각되어있는데 그 모습이 아주 재미있다. 암수 한 쌍이 서로 다른 방향을 바라보며 각자 자기 위치에서 왕을 호위하는 근위병의 역할을 충실히 하고 있다. 그리고 어미를 따라 나온 새끼는 어미 배에 찰싹 붙어서 젖을 빨고 있는 앙증맞은 모습이 조각되어 있다. 이 나라 백성으로 무릇 짐승까지도 대를 이어 임금을 지키겠다는 충성스러운 각오를 엿볼 수 있는 조각일 수도 있겠다.

근정전 월대의 돌조각들은 대체로 그 표정들이 대충 무서운 척하고 있다. 대충이다. 아주 살벌하게 무서운 인상은 이곳에서 찾아볼 수 없다. 처음 경복궁 영제교를 건너면서 만난 천록의 짓궂은 표정을 기억한다면 당시 조선의 석공은 저런 표정으로 한국인의 심성을 그려냈다는 공통점을 엿볼 수 있을 것이다. 궁궐이라는 근엄한 현장에서 이런 자못 우스꽝스러운 표정이라니. 이건 순전히 조각하는 사람의 심성이 그렇게 생겼으니 제 생긴 대로 저 같은 표정의 작품을 내놓았다고 해석할 수밖에 없다. 자못 예술가란 자기 성향대로 저 닮은 작업을 하는 게 그들의 개성이다. 그렇게 생긴 사람이 또 그렇게 생긴 돌을 쪼았으니 이런 결과는 당연한 이치이다.

중국이나 일본 궁궐의 서수 조각들을 보면 그 살벌한 인상의 사실성에 깜짝 놀라게 된다. 실은 그렇게 무서운 인상이라야 궁궐에 접근하는 자에게 위엄을 갖추고 겁을 줄 수 있는 것이다. 화강암은 단단하고 거친 돌이다. 이런 돌을 아주 사실적으로 묘사하려면 돌의 성향을 거스르게 된다. 우리 조선의 옛 석공은 돌의 성질을 알고 그 돌이 만들어 내고 싶은 인상을 허락했을 것이다. 바로 이 땅에서 출토되는 가장 흔한 돌 화강암이 지니는 투박하고 거칠지만 따뜻한 돌의 성질을 이끌어낸 조선 석공들의 뛰어난 솜씨를 근정전 석수 조각이 보여주고 있다.

재미있는 소방기구 드므

중화전 드므. 드므는 화재가 났을 때 불을 끄는 소방수를 채워놓았던 소방기구이다. [중앙포토]

중화전 드므. 드므는 화재가 났을 때 불을 끄는 소방수를 채워놓았던 소방기구이다. [중앙포토]

하월대 모퉁이에 있는 무쇠로 만든 큰 물동이는 드므라고 부른다. 지금은 그 큰 그릇에 쓰레기를 버리는 관람객들 때문에 투명 뚜껑을 씌우고 드므의 용도를 설명한 팻말을 올려놓았다. 원래 궁궐 전각의 드므는 불이 났을 때 불을 끄는 소방수를 채워놓았던 소방기구이다. 조선의 전통 건축 재료는 기와와 주춧돌을 제외하고는 대부분 나무를 썼고 목조건축이 화재에 취약한 것은 누구나 아는 일이다. 더구나 회랑이나 행각으로 연결된 궁궐의 건축은 더더욱 화재를 염려하지 않을 수 없었다.

옛사람들은 화마(火魔)가 하늘로부터 온다고 믿었는데 집을 향해 오던 화마가 드므에 담긴 물에 비친 자기의 모습을 보고 그 흉측한 모양새에 놀라 달아나 주기를 바랐던 벽사의 의미도 있다. 겨울철에 물이 얼지 않도록 불을 땠던 흔적으로 드므를 받치고 있는 돌이 검게 그을렸다. 그리고 동지에는 드므에 팥죽을 쑤어 나누어 주었다는 이야기도 있다. 이제는 겨울에 물을 담아 놓으면 쇠그릇이 얼어서 터질 것을 염려해서 물도 채워놓지 않으니 소중한 우리 문화재를 보호하기 위해서는 119 신고가 제일 빠를 듯싶다.

근정전 들여다보기

근정전을 들여다보기 위해 가까이 올라서면 양 모퉁이에 향로처럼 생긴 정(鼎)이 있다. 정은 고대 중국에서 유래된 왕권을 상징하는 배가 둥근 솥으로 다리 셋에 테두리에 귀가 둘 달린 향로 모양이다. 다리 셋은 사자의 형상으로 묘사됐는데 왕의 권위와 명예와 부를 상징한다. 근정전의 정 테두리에는 팔괘(八卦)가 투각되어 있다. 근정전 월대 양쪽에 붙박이로 있는 큰 정은 이곳에서 행사가 있을 때 향을 피웠던 것으로 1900년대 초 근정전 월대의 사진에 보면 정에 뚜껑을 덮었다.

근정전 건물은 중층 건물로 밖에서 보면 마치 2층집처럼 보인다. 네 귀퉁이를 고주(내진주)가 받치고 있는 높은 천정의 통층(通層) 구조이고 바닥에는 전돌이 깔렸다. 이 건물이 일상 거주하는 곳이 아니라 행사를 위한 특별한 공간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안쪽을 들여다보면 높이 설치된 광창이 빛을 끌어들이고 있어 근정전 내부가 생각보다 아주 어둡지는 않다. 근정전 천장 한복판에는 여의주를 희롱하는 쌍룡이 그 웅혼한 기상을 드러내고 있다. 금박을 입힌 목조각으로 발톱이 일곱 개인 칠조룡(七爪龍)은 근정전이 무소불위의 지엄한 왕이 주관하는 공간임을 말해 주고 있다. 용은 왕의 지위를 상징하는 최고의 덕목을 고루 갖춘 존재이다. 용은 늘 엄하면서도 너그럽다.

서울 경복궁 근정전 정면. [사진 한국학중앙연구원]

서울 경복궁 근정전 정면. [사진 한국학중앙연구원]

우리가 그의 역린(逆鱗)만 거스르지 않는다면. 전설에 용은 모두 81개의 비늘을 몸에 지니고 있는데 그 외에 턱밑에 거꾸로 나 있는 비늘 한 개를 역린이라고 부른다. 용의 역린을 잘못 건드리는 것은 곧 죽음을 의미했다. 그러나 조선 왕조 내내 선비의 곧은 심성과 기개로 그의 역린을 거슬려 차라리 죽음을 택했던 푸른 정신은 얼마나 많은 붉은 피로 이 땅의 기운을 살려냈던가. 사육신이 그러했으며 조광조 또한 그러했다. 근정전의 용은 일곱 개의 발톱을 가진 칠조룡이다. 근정전의 어좌 위에는 불상의 머리 위에 설치된 것과 비슷한 구조물이 있는데 이를 닫집이라고 부른다. 왕권의 존엄을 나타내기 위해 설치하는데 닫집의 헛기둥에는 연봉이 거꾸로 매달려 있다. 이는 연봉이 물에 잠긴 형상으로 화재를 예방하고자 하는 의미가 있다. 닫집의 보개 천장에도 한 쌍의 황룡이 조각되어 있다.

일월오봉병(日月五峰屛)

법전의 용상은 북쪽 중앙에 아주 높게 설치되어 있고 어좌에 오르는 계단은 앞뒤 좌우, 모두 4개이다. 어좌는 용을 조각하고 금박을 올려 화려하게 꾸미고, 어좌 뒤에는 역시 용, 연꽃, 모란을 투각한 나무 삼곡병(三曲屛)으로 치장한다. 그리고 그 뒤에 일월오봉병이 둘러지는데 그림은 일월오악도(日月五嶽圖)로 불리기도 한다. 푸른 하늘의 왼편에 흰 달이, 붉은 해는 오른편에서 다섯 개의 봉우리를 비추고 있고 붉은 줄기의 소나무와 양쪽 계곡에서 쏟아지는 내리꽂히듯 힘찬 폭포가 물보라를 만들고 산 아래 넘실대는 파도가 펼쳐져 있다. 일월은 해와 달은 의미하고 양과 음의 개념으로 왕이 다스리는 우주 전체로 확대 해석할 수도 있다. 오봉산은 오악을 상징하는데 곤륜산(崑崙山)으로 왕이 다스리는 전 국토를 의미한다. 우리나라 한반도 동악의 금강산, 남악의 지리산, 서악의 묘향산, 북악의 백두산, 중악의 삼각산이다. 일월오악도에는 파도를 그려서 정사를 펼치는 조정을 의미했는데 바다의 파도 조(潮)와 조정(朝廷)의 조(朝)의 발음이 같은 데서 유래한다.

즉 일월오악도는 한국 전래의 오악신앙(산신신앙)에 그 배경을 두고 있으며 왕의 절대적 권위에 대한 칭송과 왕조의 무궁한 번영을 기원하는 그림이다. 일월오악도에서 왕을 달, 해 산, 소나무에 비유하여 변함이 없으며, 이지러짐이 없고 영원무궁토록 왕조가 번창할 것을 기원하고 있다. 왕권을 상징하는 일월오봉병은 법전의 어좌 뒤에만 설치되는 것이 아니고 왕의 집무실인 편전이나 창덕궁의 신선원전 감실 등 왕을 모시는 전각에 늘 설치되었고 왕이 궁 밖으로 거둥(행차) 할 때도 따라다녔다.

조각가 theore_creator@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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